7대 명절(레위기 7대 절기) /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절, 초막절 <유무초오나속장>




*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jeus1988/5720877


1. 유월절

애굽에서 나오기 전 기념한 것이다.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른다. 
이스라엘의 시작이 되는 분기점 역할을 하는 절기이며 가장 중요한 절기이다. 
이스라엘에는 두 가지 절기가 있다. 
출애굽 이전에는 민간력을 따랐고, 출애굽 이후는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기점으로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 종교력을 생겨난다. 
종교력은 구속사적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유월절은 민간력 3월 중후반에서 4월 초에 해당 된다.

2. 무교절

무교절은 유월절과 함께 드리는 절기이다.
무교절은 니산월 15부터 일주일(7일)간 지킨다.
현재 달력으로 3-4월경이다.
칠칠철 초막절과 함게 유대인의 3대 절기에 속한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누룩을 쓰지 않고 곧바로 먹을 수 있는 빵을 준비하게 하셨다.
이것은 구원의 긴박성을 말한다.

3. 초실절(初實節, Feast of Firstfruits)

첫 열매의 이삭을 제단에 드리는 날이다. 
유월절, 무교절 다음으로 오는 세 번째 절기이다. 
무교절 이후 처음 오는 안식일 다음 날이다.
즉 오늘 날의 일요일이며, 신약적으로 '주의 날'에 해당 된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첫 열매'로 표현한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4. 오순절(칠칠절)

첫 열매를 드린 후 오십 일이 지난 안식일이다.
오순절은 추수의 날이며 성령 강림의 날이다.
모세가 오순절날 율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신약은 칠철절이 아닌 오순절로 표현하며, 성령 강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가운데 드러났음을 선포한다.
성령 강림은 신약교회의 탄생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5. 나팔절(욤 테루아)

나팔절은 나팔을 분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로는 The Feast of Trumpets로 표기한다.
히브리어 역시 '나팔을 불는 날'을 뜻하는 '욤 테루아'이다.
나팔을 불어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레 23:24

민 29:1

유대력 7월이며, 디스리 월이며, 태양력으로는 9-10월이다.  
유대월 7일 1일에 지키는 날이다.
유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 달에는 10일 대속죄일이 있고, 15일부터 1주일간 초막절을 지킨다. 

숫야의 뿔(양각) 나팔을 불어 한 해를 시작한다.
모든 백성들(종들까지)이 하루를 쉬면서 성회를 즐긴다.
희생제사를 드리고 새해 첫날을 맞이한다.(레 23:14, 민 29:1-6)
이후 유대가 획립되면서 AD 1세기 경부터는 나팔절을 신년제로 더 성대하게 지켰다고 한다.

[성경의 절기] 나팔절(The Feast of Trumpets) 로슈 하사냐 / 로슈(머리) 

6. 속죄일(욤 키푸르) / 욤(날), 키푸르(덮는다, 죄를 사한다)

일년에 한 번 있는 대 속죄일이다.
제사장이 지성소까지 들어가 속죄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대속죄일을 예수님의 속죄 사역과 연결시켜 해석하며, 한 번의 구속 사역으로 모든 죄를 사하셨다고 선포한다. 
첫해 10일이다.
히브리어로 욤 기푸르로 부른다. 욤은 날이고, 기푸르는 덮는다. 죄를 사한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9:7-12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7. 장막절(초막절,수장절)

곡식을 거두는 날이다. 장막절은 초막절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지낼 때를 기억하도록 정한 절기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장막절이 지나면 가을비(이른비)가 내린다.
이스라엘은 겨울이 우기다.
여름은 건기다.
봄에 내리는 비는 늦은 비다.
이른 비는 곡식이 잘 자라도록 수분을 제공하고, 늦은 비는 결실기에 알곡이 잘 차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른 비과 늦은 비가 잘못되면 그 해 농사는 망치게 된다.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강수량이 적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 그리고 이슬은 생명과 같은 존재이다.




7대 명절

- 레위기 7대 절기

유월절(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무교절(무덤에 안장되신 예수)
초실절(부활하신 예수)
칠칠절(성령으로 임재하신 예수)
나팔절(재림하실 예수)
속죄절(심판의 주가 되실 예수)
초막절(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오실 예수)





유월절(Passover) 


재앙이 넘어간다
Passover(패스오버), פֶּסַח(페사흐), πασχα(파스카)

유월절 - 이렇게 죽으리라! / 그리스도와 피, 구원

레위기 23:4-5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유월절 :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 어린양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속죄양, 희생양으로 오심을 기념하라.
예수가 유월절 희생양으로 오셔서 이렇게 죽으리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오시면 우리의 죄를 위해 이렇게 죽으리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설 명하기 위해 생겨난 명절(복음의 첫단추)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 그리 스도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심
-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고 마귀의 참소를 이기고 내 양심을 이긴다.
- 예수의 피는 완전한 구원, 영원한 속죄.
- 예수의 피가 날마다 우리에게 뿌려지는 의식을 행하 는 분이 성령이고 예수의 피가 날마다 우리의 마음속 에 뿌려지는 의식을 행하여 날마다 유월절이 내게 임 하는 것이다

죄가 내 안에 남아있지 않고 나를 깨끗하게 해주는 의식을 성령이 행하는 것

유월절의 정의 - 유월절의 기원과 역사, 히브리어와 역어 명칭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재앙이 넘어갔다.(출애굽기 12:23~30)

유월절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성경의 최대 명절로서 독립기념일에 비유할 수 있다.
BC 1498년경 이집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을 위해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이 제정한 절기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집은 유월절 밤에 벌어진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고, 유대인들은 이집트에서 극적으로 해방되었다.
출애굽기 12장에는 전반에 걸쳐 유월절과 엑소더스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이후 유월절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여 자유를 찾게 해준 하나님의 권능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토라에 따르면, 유월절은 해마다 지켜야 할 하나님의 연간절기 중 첫 번째 절기다.
유월절을 지키지 않을 경우 백성에서 제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유월절 날짜는 유대력(종교력) 1월 14일과 2월 14일 저녁이다.
계절상으로 이른 봄에 들어 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유월절을 지키는 방법이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예수는 유월절 저녁에 제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게 했다.

유월절은 초기 기독교에서 지켜져 내려오다가 2세기경 동〮서방 교회의 파스카 논쟁 끝에 325년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소집한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전면 폐지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현재 가톨릭과 개신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독교는 유월절을 기념하지 않는다.
유대교는 나름의 유월절 전통을 이어 가정을 중심으로 지키고 있으며, 구약시대 율법대로 양을 잡아 지키는 단체는 팔레스타인의 사마리아인 공동체가 유일하다.

유월절은 히브리어로 ‘פֶסַח(페사흐, peh'-sakh)’다. ‘지나가다’, ‘뛰어넘다’라는 의미의 동사 ‘פָסַח(파사흐, paw-sakh')에서 파생했다.
헬라어(고대그리스어, 희랍어) ‘πασκα(파스카, pas'-khah)’는 원어의 발음을 그대로 베낀 형태다.
한자 ‘逾越節(넘을 유, 건널 월, 절기 절)’,
영어 ‘Passover(패스오버)’도 동일하게 ‘지나다’, ‘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월절(지날 過, 넘을 越, 절기 節)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이 유월절을 제정하실 때 유월절을 지킨 자들은 재앙이 넘어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실제로 출애굽기 12장에는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가정의 장자들은 죽음의 재앙에서 보호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유월절’을 각 언어별로 살펴보면, 대부분 ‘넘어가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פֶּסַח(페사흐)’, 또는 헬라어 ‘πασκα(파스카)’에서 파생된 형태를 띠고, 한자 문화권에서도 ‘넘어가다’는 의미를 포함하여 번역했다.
다만,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가 유월절을 지키지 않기 때문인지 ‘유대인의 절기’라는 단서가 붙기도 하고, ‘부활절’과 혼용하여 쓰이기도 한다.

성경이 말하는 유월절의 뜻

유월절(逾越節. PassOver. 페사흐)이란 단어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 수차례 등장한다.

특히 출애굽기 12장 13절에서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된 말씀을 통해 유월절이 가진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공동번역에는 “내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보면 너희를 넘어가겠다. 내가 이집트를 벌할 때에 너희에게는 아무 해가 미치지 않을 것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월절이란 한마디로 ‘재앙이 넘어간다’라는 뜻으로 정의할 수 있다. 영어로는 Passover(패스오버), 히브리어로는 פֶּסַח(페사흐), 헬라어로는 πασχα(파스카)라고 하며 모두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다.

주전 1498년경 애굽 전역에 통곡과 비명소리가 가득했던 날, 오직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무서운 재앙이 넘어갔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에서 넘김’을 받는 유월절의 참뜻을 체감하며 그 중요성을 마음 깊이 새겼을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유월절의 유래

세계 고대역사를 살펴보면, 강국이 약국을 지배하여 포로로 삼은 후 온갖 학대와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이스라엘은 애굽의 식민지가 되어 무려 43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박해와 서러움을 당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모세를 택하셨다.
당시 모세의 나이는 80세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바로는 모세의 요구를 거절했고, 오히려 마음이 강퍅해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욱 고된 노동을 시켰다.
이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갖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첫 번째 재앙은 모든 물을 피로 변하게 한 재앙이었다.
이어서 개구리, 이, 파리, 가축 돌림병, 악성종기, 우박, 메뚜기, 흑암에 이르기까지 아홉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셨다.
애굽은 순식간에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강퍅하여 이스라엘의 해방을 허락하지 않았다.

열 번째 재앙이 애굽에 내렸다. 
모든 장자들과 가축의 초태생이 일시에 죽음을 당했다.
애굽 왕 바로의 첫째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퍅했던 바로의 마음이 맥없이 무너져내렸다(출애굽기 12:29~30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 
           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하나님의 능력에 놀란 그는 실성한 듯 패물과 의복까지 내어주며 모세에게 애굽을 떠나라고 재촉했다.

신기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만큼은 장자를 멸하는 재앙에서 모두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열 번째 재앙이 내리기 전, 특별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1~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1년 된 어린양의 고기를 구워먹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였기 때문에 재앙을 내리는 천사들이 보고서 그 집을 넘어간 것이다.

열 번째 재앙이 내리던 날, 애굽의 온 나라는 통곡과 애곡으로 가득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에서 보호받았고 애굽에서의 완전한 해방을 누릴 수 있었다.
유월절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 역사는 이스라엘이 최초로 지켰던 유월절이었으며, 성경이 증거하는 유월절의 유래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이란 기쁨의 절기이자 희망의 절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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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절(Feast of Unleavened)

무교절 - 무덤에 있으리라!
자아의 파쇄, 죽음

레위기 23:6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무교절(無酵節) - 그리스도의 고난(苦難)을 기념하는 하나님의 절기

무교절(無酵節, Feast of Unleavened Bread)은 유월절 다음 날로 성력 1월 15일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간 무교병(無酵餠), 즉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으며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기까지 겪었던 고난을 기념했다(출애굽기 23:14~15).
이는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표상하는 사건이다.

구약시대의 무교절

무교절의 유래는 이러하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다(출애굽기 12:40).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파라오)의 강압으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일에 강제 동원됐다.
그들의 노역은 고되고 괴로웠다(출애굽기 1:13~14).
그들은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질고의 땅 애굽에서 인도하시려고 선지자 모세를 보내셨다(출애굽기 2:23, 3:7~10).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애굽 전역에 물이 피로 변하는 첫 번째 재앙을 시작으로 개구리, 이, 파리, 전염병,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등의 아홉까지 재앙을 내리셨다(출애굽기 7:14~10:23).
연이어 모든 맏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열 번째 재앙을 내리셨다.
이 재앙으로 애굽 왕 바로의 맏아들과 애굽 사람들의 맏아들,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모두 죽었다(출애굽기 12:29~30).
그제서야 바로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선포했다.

애굽에서의 해방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최초의 유월절을 지낸 다음 날 애굽을 떠났다.
애굽 사람들은 여태까지 있었던 재앙들과 맏아들을 잃은 재앙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속히 내보내고 싶어했다(출애굽기 12:33).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히 나오느라 누룩을 넣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그릇에 담은 채 옷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나섰다(출애굽기 12:34).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길로 인도하셔서 바다와 만나게 하셨다.
한편 애굽 왕 바로는 마음이 돌변하여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추격했다(출애굽기 14:6~8).
백성 앞에는 홍해 바다가,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있었다.
사면초가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애굽 왕) 바로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개를 들고 보니,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추격하여 오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은 크게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었다. (새번역 출애굽기 14:10)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으로 애굽 군대가 있는 쪽은 어둡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쪽은 환하게 밝혀 주셨다.
그래서 밤새도록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잡지 못했다(출애굽기 14:20).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들자 바닷물이 갈라졌다.
이스라엘은 마른 땅같이 변한 홍해 한가운데를 밟으며 지나갔다(출애굽기 14:21~22).
뒤이어 애굽 군대가 백성들을 쫓아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애굽 군대를 어수선하게 만들어 추격을 지연시키셨다(출애굽기 14:23~24).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홍해를 건너 육지에 상륙했을 때, 홍해가 다시 합수되어 애굽 군대는 수장(水葬)되었다(출애굽기 14:27~28).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력 1월 15일 애굽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기까지 두려움, 초조함, 불안함, 무서움 등의 감정을 겪으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 무교절을 제정하셨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라. ··· 이날에 내가 너희 무리들을 이집트(애굽) 땅에서 인도해내었으므로 ··· 이날을 기념하여라.(쉬운성경 출애굽기 12:17)

너희는 ··· 절기의 때 거룩한 모임을 갖고 지켜라. 여호와의 유월절은 첫째 달 십사일인데, 유월절은 해 질 무렵부터 시작된다. 무교절은 같은 달 십오일에 시작된다. 너희는 칠일 동안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떡)인 무교병을 먹어라. (쉬운성경 레위기 23:4~6)

무교병은 누룩이나 다른 효모를 넣지 않고 구운 떡으로 ‘고난의 떡’이라고도 불렀다(신명기 16:3).
무교병을 먹는 절기인 무교절은 ‘고난의 절기’라는 의미를 갖는다.

신약시대의 무교절

구약시대에 지킨 무교절이 출애굽 당시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한 절기라면, 신약시대의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한 절기이다.

예수께서 ··· “혼인 잔치의 손님들이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이니, 그 때에는 ··· 금식할 것이다.” (새번역 마태복음 9:15)

혼인잔치의 신랑은 예수님을, 손님은 성도들을 가리킨다(마태복음 22:1~10, 마가복음 2:18~20).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성력 1월 14일 저녁)에 열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잡수시고, 다음 날(성력 1월 15일)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때는 아침 9시였습니다. ··· 오후 3시에 ···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쉬운성경 마가복음 15:25, 34, 37)

리먼 의과대학교의 한 교수는 예수님의 손(손목)에 대못이 관통했을 때 그 뼈는 산산조각 부서지고, 근육은 찢어지고, 신경은 파열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고통은 펜치로 척골(팔굽뼈) 신경을 잡고 비틀어 뭉갤 때의 고통과 비슷하다.
국내의 한 전문의는 대못이 양손에 박힌 상태에서 십자가가 세워졌을 때, 예수께서 느끼신 통증은 어마어마하게 컸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더구나 머리에 가시관도 쓰셨기 때문에 머리와 손에서 피가 계속 새어 나와, 결국 저혈량성 쇼크로 숨을 거두셨을 거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6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출혈, 두통, 고열, 탈진, 배고픔, 한기, 창상 등의 고통을 당하셨다.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온몸으로 감당하신 십자가 고난은 1분 1초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의 순간이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신랑을 빼앗긴 날에 금식 할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금식으로 무교절을 기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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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실절(初實節, Feast of First fruits)

초실절 - 부활하리라!
부활, 성화, 잘 될 것이다.

레위기 23:10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초실절(初實節, Feast of Firstfruits). 신약시대의 부활절을 일컫는 용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절의 의미가 갖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에게 구원과 부활의 소망을 대변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동서양 모든 교회들은 부활절 절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부활절이 그 날짜와 명칭 등에서 성경과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무교절 후에 오는 안식일 다음날’에 부활절을 지킨다. 구약시대 명칭은 초실절에 해당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초실)로 부활하실 것을 알려준 예언이라 할 수 있다.

구약시대의 초실절

초실절은 하나님의 7개 절기 중 유월절, 무교절 다음으로 오는 세 번째 절기다. 초실(처음 初, 열매 實)이란 첫 열매를 말한다. 날짜는 ‘무교절 후에 오는 안식일 이튿날(다음 날)’이다. 요일상으로 ‘무교절 후 첫 일요일’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유월절은 첫째 달 십사일인데, 유월절은 해 질 무렵부터 시작된다. 무교절은 같은 달 십오일에 시작된다. ··· 너희는 ··· 추수를 할 때, 너희가 거둔 것 가운데서 첫 곡식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가거라. 제사장은 ··· 그 단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바쳐라. 제사장은 그 단을 안식일 다음 날에 흔들어서 드려라

(쉬운성경 레위기 23:5~11)

구약시대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킨 후 맞이한 안식일 다음 날, 첫 열매를 흔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을 행했다.

신약시대의 부활절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누가복음 18:32~33)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에 희생하신 지 삼 일 만에 살아나심으로 당신의 약속을 확증하셨다. 유월절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신 후 잡히셔서 무교절에 운명하시고 돌아온 안식일 이튿날이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마가복음 16: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15:20)

마가와 사도 바울의 이 증언은 예수님께서 첫 열매의 예언을 성취하셨음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시고 부활하신 그 역사적인 날은, 구약시대 무교절 후 첫 안식일 이튿날에 거행됐던 초실절이 그 전형(前形)인 것이다. 이에 따라 사도들도 매년 무교절 후 첫 안식일 이튿날에 부활절을 지켰다.

우리는 무교절이 지난 뒤에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 안식일 다음 날 우리가 교제의 식사를 나누기 위해 모였을 때에 바울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쉬운성경 사도행전 20:6~7)

구약의 초실절은 신약의 부활절이 틀림없다. 구약의 절기는 십자가 이후 폐지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완성해주신 것이다(마태복음 5:17). 예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부활절의 의미를 온전히 새기며 ‘무교절 후 안식일 다음 날’에 부활절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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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절


칠칠절 - 성령을 부어 주리라!
성령 세례(체험), 요나가 토함을 받는다(물고기 배속)
오순절의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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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절

칠칠절 - 성령을 부어 주리라!
성령 세례(체험), 요나가 토함을 받는다(물고기 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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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절

속죄절 - 심판(審判), 심판하리라!
알곡과 죽정이로 구분할 것이다. 신부(거룩한 세마포 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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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초막절 - 새 하늘과 새 땅(新天地), 새 예루살렘, 천년왕국이 임하리라!

초막절(Sukkot)은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과 함께 구약성경에 나오는 3대 절기 중 하나이다.
가을절기의 대표 절기이자 1년 중 마지막에 당하는 절기로 가을 농작물을 거두는 시기에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도 담고 있는 절기이다.

추수절, 장막절, 수장절, 구려절로도 불린다.

초막절의 의미는 이름처럼 “풀로 집(장막)을 짓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초막절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은 레위기 23:33-44과 신명기 16:13-15에 나온다.
민수기 29:12-39에는 초막절이라는 이름이 빠진 채로 초막절 절기에 드릴 제사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레위기에 23:34, 39에 따르면, 히브리력 7월 15일 첫 날과 8일째 되는 7월 22일 마지막 날에 큰 성회를 열었으며, 그 사이 7일 동안 절기를 지킨다.
레 23:39과 신 16:13에 따르면 토지의 소산 거두기를 마치고 추수한 것을 저장하는 것을 마치는 때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초막절을 수콧이라 부르며, 추분과 가까운 음력 대보름 저녁부터 초막절을 시작한다.
시기적으로 우리나라 추석과 격년으로 날짜가 거의 겹친다.
다른 격년에는 1달 차이가 난다.
즉 양력으로 9월 말~10월 말 사이에 온다.

레위기 23:43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막절을 지키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후 광야 생활 중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이스라엘 대대로 알게하려는 것이었다.
풍성한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광야 40년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자손 대대로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신명기 16:15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풍성한 수확을 감사하며 즐거워하도록 초막절을 지키게 하셨다.

초막절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나 신약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절기이다.
스가랴서에서는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재앙을 받고 비를 받지 못한다는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즉 초막절을 지키면 재앙에서 신이 보호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요한복음에 예수가 초막절을 지킨 기록이 있으며, 생명수의 축복을 약속하였다.
즉 초막절을 지켜야 영혼이 영적 갈증에서 해소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 생명수는 성령을 의미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초막절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도인들에게나 구원의 여부가 걸려있는 중요한 절기인 것이다.

초막절에 대해 기독교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4가지

1. 초막절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어로 숙곳(sukkot)이라고 이라고 불리는 초막절은 유대인들의 절기 중 가장 기쁜 절기로서 속죄일(Day of Atonement) 이후 5일이 지나서 시작된다.

초막절은 일주일 동안 진행되며, 전 세계의 유대인들은 초막을 짓고 그 안에 살면서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의 역사와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섭리를 기념한다.

2. 초막절의 성경적 기원은? 

레위기 23장 34~4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추수의 마지막에 절기를 정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첫째날과 마지막날에 일상적인 업무를 쉰다.
그리고 일주일 간을 초막에서 지내며 음식으로 제사를 드린다.

절기를 정하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이스라엘 자손대대로 알게 하려하심이다.

3. 초막절을 어떻게 기념하는가? 

유대인 복음화를 위한 단체인 '예수를 위한 유대인'(Jews for Jesus)에 따르면, 고대에 행해졌던 3가지 의식은 물 긷고 따르기, 등 밝히기, 장막 짓기 등이다.

처음 2가지는 성전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성전이 무너진 후 이러한 전통들은 더 이상 관찰되지 않는다.
그 이후 장막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탈무드 전권이 일시적인 장소인 초막을 짓기 위한 구상을 담고 있다.

'예수를 위한 유대인'의 데이비드 브릭너는 "(숙곳)과 관련된 이같은 구상은 이 땅의 집과 고향으로서 가진 숙곳의 일시적 속성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많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초막을 짓고, 최소한 그 안에서 식사를 하면서 숙곳을 기념하고 있다. 나뭇가지나 과일, 예술품 등으로 이곳을 꾸미는 것도 유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전통 중 하나이다.

4. 초막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초막절의 이면에 놓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숙곳은 기쁨의 절기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떠돌 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위한 유대인 측은 "숙곳은 언제나 우리의 연약한 체질과 하나님을 향한 의존성을 일깨워준다"면서 "광야에서 떠돌면서 초막을 짓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초막절이 되면 우리는 조상들의 입장이 되어,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를 다시 기억한다"고 전했다.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존성과 그분의 신실하심에 관한 동일한 진리를 기억하면서 초막절의 정신에 참여할 수 있다.

사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보다 더 큰 기쁨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 있는 그분의 궁극적인 섭리를 받아들인 자들이기 때문이다.

카리스마뉴스에 따르면, 올해 10월 6일부터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초막절에는 약 6,000명의 기독교인들이 함께 동참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막절이라고도 알려진 수코트의 신성한 전통을 탐구하면서 역사, 신앙, 공동체적 유대감의 풍부한 태피스트리를 발견해 보세요. 토라에 깊이 뿌리를 둔 이 7일간의 축제는 모세의 인도로 40년 동안 하나님의 인도 아래 사막을 방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오한 여정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유대인 공동체가 조상들을 보호해 준 임시 피난처인 수코트를 기념하며 그들의 정신적 유산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입니다. 본질적으로 수코트는 이중 기념일입니다. 농업적으로는 추수 시즌의 즐거운 절정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경적으로는 광야에서 깊은 의존과 연약함의 시기에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를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역사를 통틀어 이 축제는 감사의 구체화이자 인내하는 신실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신학적 토대를 반영하여 수코트는 신성한 생계와 인간의 의존이라는 주제를 강조합니다. 수코트의 일시적인 특성은 우리의 일시적인 존재와 하나님의 영원한 피난처에 대한 의존에 대한 물리적 은유로 작용합니다. 솔로몬 랍비가 지적했듯이, 이 연약한 구조물에 집을 짓고 거하는 것은 겸손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에 대해 더 깊이 감사하도록 장려합니다. 이 날은 과거를 기리고 현재를 조명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의식과 관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화합과 축복을 상징하는 룰라브와 에트로그를 흔드는 것부터 수카 안에서 공동 식사를 하는 것까지, 모든 행위에는 깊은 의미와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 수코트는 이스라엘 민족의 40년 광야 여정을 기념하는 일주일간의 축제입니다.
  • 농업적으로는 추수 시즌의 끝을 축하하며 추수감사절을 상징합니다.
  • 신학적으로는 신의 섭리, 인간의 의존성, 우리의 일시적인 존재를 상징합니다.
  • 의식에는 임시 대피소(수코트)에 거주하고 룰라브와 에트로그를 사용하는 의식이 포함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막절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초막절은 수코트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깊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대부터 시작된 이 일주일간의 축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광야를 통과한 40년간의 여정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이 유목 기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코트라고 하는 임시 쉼터 또는 장막에서 살았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의존을 겸손하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열악한 사막 환경에서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수코트는 단순히 과거의 구원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심오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믿음과 신뢰 하나님의 지속적인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절기는 3대 성지 순례 축제 중 하나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축복을 축하하라는 명령을 받은 기간입니다. 레위기 23:34-43에 기록된 대로 7일 동안 주님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하나님의 공급을 상징하는 풍성한 수확에 대한 압도적인 기쁨과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지어진 수카의 일시적인 특성은 인간 삶의 덧없는 본질과 신의 섭리에 의지해야 할 필요성을 상징합니다. 이 연약한 구조물 안에 거하라는 명령은 물질적 안정의 덧없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보호에 집중하라는 요청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탱해 주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모든 생계와 안전의 원천이 되신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초막절은 신적 임재 또는 "쉐키나"라는 개념과 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초막절은 성경적 내러티브 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방황하는 백성들 가운데 어떻게 성막에 거하셨는지 묘사합니다(출애굽기 25:8). 따라서 수코트는 역사와 현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묵상하는 시간이 됩니다. 이러한 연관성은 예언서에서 더욱 증폭되어 하나님의 임재가 인류 가운데 온전히 실현될 미래의 시간을 상상합니다(스가랴 14:16~19). 

이스라엘 민족에게 수코트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 40년간의 광야 여정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에 대한 의존을 기념합니다.
  • 신성한 축복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강조하며 농작물 수확을 축하하는 축제입니다.
  • 인생의 일시적인 본질과 신의 임재와 공급의 영속적인 본질을 상기시켜 줍니다.
  • 인류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에 대한 예언자적 성찰.

수코트와 관련된 주요 의식과 관습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수코트를 정의하는 의식과 관습을 살펴보면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거슬러 올라가는 영적 의미와 유서 깊은 전통을 만나게 됩니다. 초막절은 수많은 관습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다방면으로 반영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존의 공급과 공동 축하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수코트 준수의 중심에는 건물과 주거지가 있습니다. sukkah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냈던 임시 피난처로, 일시적인 삶의 본질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최소 세 개의 벽과 야자수 잎이나 나뭇가지와 같은 유기 재료로 지붕을 구성한 sukkah 는 비바람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하면서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별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개방성은 물리적인 측면에서 신성한 보호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여되었습니다. 

또 다른 심오한 관행은 수집 및 흔들기입니다. 네 가지 종-더 lulav (손바닥 가지), etrog (유자), hadas (머틀), 그리고 아라바 (버드나무). 네 가지 종의 각 구성 요소는 창조와 인간 표현의 다양한 부분을 상징하며, 다음을 인정하는 역동적인 예배 행위로 결합됩니다. 하나님의 주권 삶의 모든 측면에 걸쳐 있습니다. 동서남북, 위, 아래 여섯 방향으로 네 가지 종을 흔드는 의식은 하나님의 편재하심과 축복의 보편적 도달 범위를 상징합니다. 

또한, 수코트에는 즐거운 공동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sukkah는 축제의 추수 뿌리와 하나님이 주신 풍요로움을 반영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음식과 노래, 기도를 나누며 깊은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일체감 그리고 공동의 추수감사절. 

환영의 실천 ushpizin-이스라엘의 족장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게스트는 또 다른 풍성한 전통입니다. 매일 밤 수코트에는 다른

 성경 속 인물이 초대됩니다. sukkah 기도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유산을 연결합니다. 신앙 여정 그리고 이 인물들이 구현하는 미덕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초대합니다. 

또한, 수코트 7일째 되는 날에는 호샤나 라바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날은 신성한 축복과 용서를 구하는 예배자들이 네 가지 종을 들고 회당 주변을 엄숙하게 행진하는 등 기도와 청원을 집중적으로 하는 날입니다. 

수코트의 정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심챗 토라는 연례 토라 읽기 주기의 마무리와 재개를 알리는 활기찬 축하 행사입니다. 이 날은 다음과 같은 선물로 기뻐합니다. 신성한 가르침는 유대교 신앙에서 토라를 존중하는 기쁨과 경건함을 상징합니다. 

  • 건물 및 거주지 sukkah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과 하나님의 보호를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 하나님의 주권과 창조세계의 상호 연결성을 인정하는 의미로 네 가지 종을 흔들고 있습니다.
  • 공동 식사 공유 sukkah 추수와 하나님의 공급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입니다.
  • 성경의 상징적인 손님 초대하기, 또는 ushpizin를 통해 미덕과 과거의 유산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 관찰 호샤나 라바는 열렬히 기도하며 신성한 축복을 구하는 날입니다.
  • 축하 심챗 토라를 통해 토라 읽기 주기의 즐거운 갱신을 기념합니다.

수카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유대교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은 수카를 만들 때 세심한 장인 정신과 심오한 신앙이 결합된 행위를 수행합니다. 영적 상징주의. 임시 대피소인 수카는 일반적으로 나무나 캔버스로 된 최소 세 개의 벽으로 구성됩니다. 수카의 결정적인 요소는 지붕 또는 sechach야자수 잎, 대나무 갈대 등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식물로 만들어 낮에는 햇빛을 받지만 밤에는 별을 볼 수 있어 신의 보호와 신앙의 개방성을 상징합니다. 

수카의 각 측면에는 깊은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수카의 일시적인 특성. 다른 지붕보다 더 많은 그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소유의 덧없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의 안전이 아닌 믿음과 신뢰의 하나님 안에 거하는 집을 말합니다. 수카를 짓고 거주하는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사막을 방황하며 살았던 것을 기념하는 것으로, 그 기간 동안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둘러싸여 살았던 쉼터였습니다. 

신학적으로 수카는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를 상징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했던 '영광의 구름'을 떠올리게 하며, 광야를 통과하는 여정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합니다. 더 넓은 영적 맥락에서 보면 수카는 겸손과 은혜의 공간으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상징합니다. 수카를 짓는 물리적 행위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불변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신성한 지원

더 깊이 생각해보면, 수카는 하늘의 실재를 지상에 표현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류와 함께 온전히 장막을 치실 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수카에서 다음과 같은 성육신 신학을 반영하는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요한복음 1:14) 분입니다. 따라서 수카는 유대인의 전통과 기독교의 희망이 융합되는 지점이 됩니다.

  • 수카는 최소 세 개의 벽과 천연 소재로 된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지붕은 하늘을 볼 수 있어야 하며, 신을 향한 개방성을 상징합니다.
  • 이스라엘 민족의 40년 광야 여정과 하나님의 보호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 수카는 인생의 덧없음과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를 상징합니다.
  • 영적 성찰의 장소이자 신성한 존재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 기독교인들은 수카가 인류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개념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초막절에서 룰라브와 에트로그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수코트의 풍성한 태피스트리에서 룰라브와 에트로그는 여러 겹의 영적, 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는 심오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템들은 정확히 무엇이며 왜 초막절에 필수적인 요소일까요? 

룰라브는 세 가지 유형의 브랜치로 구성된 번들입니다: 야자(룰라브), 머틀(하다스), 그리고 버드나무(아라바). 이 나뭇가지를 유자 열매인 에트로그와 함께 들고 수코트 기간 내내 기도할 때 의식적으로 흔듭니다. 이 행위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헌신과 순종을 함축하는 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려나무, 머틀, 버드나무, 에트로그의 네 종의 상호 연결성은 척추(룰라브), 눈(머틀), 입술(버드나무), 심장(에트로그)이라는 인체의 여러 부분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모든 부분이 영적 봉사에 헌신하는 전인적인 예배 참여를 반영합니다. 또한 이 종들은 공동체 내에서 학문과 행위에 모두 뛰어난 사람(에트로그), 행위에 뛰어나지만 학문에는 뛰어나지 않은 사람(종려나무), 학문에는 뛰어나지만 행위에 뛰어나지 않은 사람(머틀), 둘 다 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필수 부품 커뮤니티(버드나무)의 

이 심오한 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영성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치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요소가 모여 하나의 응집력을 형성하는 것처럼, 다양한 계층이 하나님 앞에서 통일된 예배로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의 여러 부문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는 일치를 위한 기도의 표현이며, 집단적 변화와 영적 고양에 대한 요청을 반영합니다. 

또한, 룰라브와 에트로그를 동서남북, 위, 아래 여섯 방향으로 흔드는 의식은 하나님의 편재성 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이 행위는 수코트의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측면을 반영하여 지구촌 곳곳에 축복을 기원하는 간구이기도 합니다. 

  • 룰라브는 야자수, 머틀, 버드나무 가지로 구성되며 에트로그는 유자 열매입니다.
  •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개인과 공동체의 헌신을 상징합니다.
  • 인체의 여러 부위와 커뮤니티 내의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 공동체의 단합과 사회의 다양한 부문을 하나로 모으는 것을 의미합니다.
  • 여섯 방향으로 손을 흔들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주적 축복을 기원합니다.

전 세계 현대 유대인 커뮤니티에서는 수코트를 어떻게 기념하나요?


초막절인 수코트는 전 세계 현대 유대인 공동체에서 활기차고 즐거운 축제로 남아 있습니다. 농업적, 역사적 의미가 담긴 이 축제는 참가자들에게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에 대해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고대 전통과 현대적 관습이 어우러져 신앙과 공동체의 풍요로운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내는 현대의 기념일입니다. 

수코트의 핵심 의식은 수카 건설입니다.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사용했던 장막을 연상시키는 임시 쉼터입니다. 도시에서는 발코니, 옥상 또는 파티오에 세워져 일상적인 공간을 기억과 성찰의 성역으로 변화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카의 상징성은 물리적 형태를 넘어 생명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상징합니다. 

수코트 기간 동안에는 수카 안에서 식사와 모임이 이루어지며 축제의 공동체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축제 음식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며 신앙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러한 공동체적 측면은 참가자들이 공동의 유산을 기념하는 데 함께 참여함으로써 깊은 일체감과 소속감을 조성합니다. 

또 다른 핵심 구성 요소는 룰라브와 에트로그 의식입니다. 룰라브는 야자수 가지, 머틀 나뭇가지, 버드나무 가지가 서로 묶여 있고 에트로그는 유자 열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다음과 같은 동안 여섯 방향으로 흔들립니다. 구체적인 기도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합니다. 현대 회당에서는 이 의식이 매우 엄숙하고 기쁨으로 행해지며, 종종 시편과 기타 전례 찬송가를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현대의 유대인 공동체는 수카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 수코트의 정신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문화적 표현과 전통적인 의식을 통합하는 퍼레이드, 축제, 공동 이벤트가 있습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다음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사회 정의는 노숙자와 식량 불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옹호하기 위해 쉼터와 식량 제공이라는 페스티벌의 주제를 활용합니다. 

수코트의 신학적 차원은 현대에도 똑같이 심오합니다. 이 기간은 개인과 공동체가 영적 성찰을 심화하고자 하는 강렬한 영적 성찰의 시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 축제는 신뢰, 신의 섭리, 인간 존재의 덧없는 본질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으며, 신자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피난처에 대한 믿음과 의존을 새롭게 하도록 독려합니다. 

  • 임시 거주지로서 수카의 건설 및 장식
  • 수카 내에서의 공동 식사 및 모임
  • 의식 의식에서 룰라브와 에트로그의 사용
  • 현대 문화 축제 및 사회 정의 이니셔티브 포함
  • 신성한 보호, 신뢰, 영적 성찰이라는 주제에 중점을 둡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수코트가 갖는 예언자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기독교 신학에서 수코트의 예언적 의미는 농업적, 역사적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종말론적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새롭고 심오한 방식으로 인류와 함께 거하게 될 미래의 메시아 시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이해는 성경의 예언과 신약 성경 하나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궁극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그분의 백성 가운데 '장막'을 치는 미래를 상상하는 글들입니다. 

스가랴서는 모든 민족이 초막절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 때를 예언합니다(스가랴 14:16~19).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를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는 미래의 세계 평화와 신적 통치의 시대인 천년 왕국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수코트는 즉각적인 역사적 맥락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과 그분의 영원하심을 기념하는 보편적인 축제가 됩니다.

또한 요한복음은 잔치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거하심'을 뜻하는 헬라어는 'σκηνόω'(스키누)로, 이는 성육신과 관련된 히브리어 단어 '장막'(수카)을 뜻합니다. 이러한 언어적 연결은 예수님의 성육신이 새로운 형태의 신성한 장막이며, 수코트가 의미하는 더 깊은 영적 실재를 성취한다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구원의 큰 이야기 속에서 수코트는 신자들이 궁극적으로 모이는 날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이 절기는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기독교인들은 이 절기를 하나님의 백성의 궁극적인 모임인 영혼의 마지막 추수를 기대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임시 쉼터 또는 부스의 이미지는 또한 삶의 현세적 본질에 대한 기독교적 믿음과 공명합니다. 영원한 집 하나님의 면전에서 약속된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1). 

따라서 수콧의 기독교 신학 는 과거의 방황이나 농업의 축복을 회상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약속,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고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 가운데 영원히 거하실 메시아 시대를 기대하는 미래 지향적인 기념일입니다. 

  • 수코트는 하나님의 임재가 인류 가운데 거하는 미래의 메시아 시대를 상징합니다.
  • 스가랴는 천년 왕국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수코트를 준수할 것을 예언합니다.
  •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축제의 주제인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장막을 치신다'를 연결합니다.
  • 수장절은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수확과 모임을 기대하는 절기입니다.
  • 이 축제는 지상 생활의 덧없는 본질과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본향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초막절을 어떻게 지키셨나요?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실제로 초막절, 즉 수코트라고도 알려진 장막절을 지키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절기 준수는 요한복음에 가장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2~14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처음에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위험 때문에 공개적인 축제에 참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축제가 진행되는 도중에 예수님은 성전 뜰에 올라가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참석자들 사이에서 놀라움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순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중요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이 절기에 참석하기로 결정하신 것은 당시 유대인의 관습과 전통에 부합하는 것으로, 율법의 신실한 준수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 절기 동안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은 그분의 사역의 필수 요소를 요약한 심오한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38절에는 그분의 가장 신랄한 선포 중 하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잔치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시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축제에 참여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는 신앙의 관점에서 영적 생계를 재정의하고 계셨습니다. 

초막절에 내재된 상징적 의미에 정통한 청중들은 그분의 말씀에 담긴 예언자적 어조를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축제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 동안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것을 기념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메시아적 소망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생수"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분은 하느님의 공급과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유대인의 깊은 이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의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구절은 임시 피난처에 거하는 것을 묘사하는 수코트의 주제를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서. 

초막절 기간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요한복음 8장 12절)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상징적인 의미가 풍부한 또 다른 심오한 말씀입니다. 수코트 기간에는 하나님의 빛과 영광을 상징하는 대형 메노라(등잔대)가 예루살렘의 성전 마당을 비추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빛이라고 선포함으로써 자신을 빛과 직접적으로 동일시하셨습니다. 신성한 존재 잔치에서 축하합니다. 

  • 예수님은 유대인의 관습과 전통에 따라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 예수님은 절기 동안 성전 뜰에서 가르치셨고, 그분의 신성한 본성을 강조하는 영적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 '생수'와 '세상의 빛'에 대한 그의 선포는 축제의 주제인 신의 공급과 임재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 이러한 행동과 가르침은 메시아 예언의 성취자로서 예수님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수코트와 메시아 시대는 어떤 관련이 있나요?


수코트와 메시아 시대의 연관성을 탐구하다 보면 예언, 희망, 영적 성취의 깊은 교차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초막절이라고도 알려진 수코트는 단순한 고대 의식이 아니라 메시아 시대에 대한 예언적 그림, 즉 지상에 평화와 신이 임재하는 미래의 시간입니다. 예언자 스가랴는 모든 민족이 초막절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메시아의 통치 아래 전 세계의 통합을 상징하는 시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스가랴 14:16). 이 비전은 메시아 시대에 대한 기대, 즉 신의 뜻이 우리 안에 나타나는 시기에 대한 기대를 뒷받침합니다. 인류의 역사 가시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지원합니다. 

이 성스러운 축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방황하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념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분의 백성 가운데 거하실 미래의 희망을 투영합니다. 물리적 수카는 연약함으로 가득 찬 임시 거처로, 지상에 존재하는 우리 존재의 일시적인 본질과 신의 섭리에 의존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메시아 시대에는 이러한 의존이 영구적인 신적 존재로 전환되어 "하나님의 거처가 사람들과 함께 있다"(요한계시록 21:3)는 예언적

 성경 구절을 구체화합니다. 

수코트의 메시아적 의미는 축제의 의식에도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수코트 기간 동안 매일 물을 길어 올리는 의식, 즉 "심찻 베이트 하쇼바"는 비와 신의 축복을 기원하는 메시아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수코트를 지키시면서 요한복음 7:37-38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축제의 약속과 자신을 일치시키십니다. 영적 갱신 그리고 생명을 주는 생계수단으로서, 수코트의 메시아적 희망을 성취하는 데 있어 그분의 역할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 절기는 기독교 신학에서 종말론적 희망을 조명하며, 신자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 영혼이 모일 것을 기대하는 궁극적인 추수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로마서 8장 22~23절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묵상은 메시아 시대에 약속된 변화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고난에서 미래의 영광으로의 전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 수코트는 미래의 메시아 시대를 상징하며, 신이 임재하고 전 세계가 하나가 되는 시기입니다.
  • 예언자 스가랴는 수코트 축제를 메시아 시대와 연결시킵니다.
  • 임시 수카는 지상의 연약함과 미래의 신성한 영속성을 상징합니다.
  • 예수님이 수코트에 참여하신 것은 메시아적 성취를 강조합니다.
  • 수코트는 종말론적 모임과 궁극적인 영적 쇄신을 예고합니다.

수코트의 심리적 해석은 무엇인가요?


초막절 또는 수코트는 인생의 덧없는 자연을 통과하는 인간의 여정에 대한 심오한 은유로 작용하는 심리적 깊이가 풍부한 절기입니다. 연약하고 일시적인 피난처인 초막에 거하는 행위는 물질적 존재의 무상함과 신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의존을 상징합니다. 이 연례적인 취약성에 대한 몰입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신뢰를 키우고, 우리의 실존적 유한성과 그분의 영원한 불변성에 대한 가슴 아픈 인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고안된 영적 훈련입니다.

심리적 관점에서 볼 때, 수코트는 우리 삶의 불확실성과 무상함을 직시하고 포용하도록 초대합니다. 하늘을 볼 수 있어야 하는 수카의 열린 지붕은 신과 광활한 우주에 대한 개방성의 필요성을 상징합니다. 이는 내적 믿음의 외적 표현이며, 삶의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통제권을 포기하고 평화를 찾는 연습이 됩니다.

이 축제의 의식은 또한 공동체와 가족의 유대를 강조하며 더 깊은 관계적 유대감과 기쁨을 공유하도록 장려합니다. 이러한 수코트의 공동체적 측면은 현대인의 삶에 만연한 고립감과 외로움에 대한 심리적 해독제로 볼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공동의 축하 행사, 식사, 기도에 참여함으로써 정서적, 정신적 웰빙에 필수적인 소속감과 상호 지원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코트의 수확이 상징하는 풍요로움은 감사와 풍요라는 심리적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농업의 풍요로움을 되돌아보며 일 년 내내 받은 축복과 생계를 인식하고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기르도록 권장됩니다. 이러한 관행은 긍정적인 시각과 정신적 회복력에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코트의 광야 방랑을 기념하는 행사는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을 위한 강력한 심리적 우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여정은 고난의 변화 가능성과 시련의 시기에 신의 인도하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황량하고 불확실한 시기에도 근본적인 목적이 있고 결국에는 약속과 성취의 장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 수카는 인생의 일시적인 본질과 신의 섭리에 대한 의존을 상징합니다.
  • 심리적으로 수코트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평화를 찾도록 장려합니다.
  • 수코트의 공동체적 측면은 더 깊은 관계적 연결을 촉진하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이 축제는 한 해 동안 받은 풍요와 축복을 되돌아보며 감사하는 마음을 키우는 행사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은 고난의 시기에 성장과 영적 인도를 위한 우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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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하그”와 “모에드” 라고 합니다.

2282. 하그(châg)  חָג

1. 축제,  2. 희생 제물

발음 / 하그(châg) 

어원 / 2287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절기(출 10:9, 왕상 12:32, 말 2:3), 절일(출 32:5, 민 28:17, 시 81:3), 희생(시 118:27)
구약 성경 / 62회 사용

* 2287. חָגַג 
1. 선회하다,  2. 춤을 추다,  3. 절기를 지키다

발음 / 하가그(châgag) 
관련 성경 / 지키다(출 12:14, 나 1:15, 슥 14:16), 구르다(시 107:27), 춤추다(삼상 30:16).
[명] 성일(시 42:4), 절기(출 5:1, 23:14, 신 16:15).
구약 성경 / 16회 사용

“하그”는 “춤춘다” “순환한다”는 의미다.
매년 그맘때가 되면 예외 없이 절기가 돌아오며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속성을 두고 불리는 명칭이다.
축제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축제의 기본 요소인 춤춘다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4150 모에드(môwʽêd) מוֹעֵד

1. 정한 때,  2. 시간의 한 점,  3.시간의 공간

발음 / 모에드(môwʽêd)
어원 / 3259에서 유래
관련 성경 / 계절(창 1:14), 기한(삼상 13:8, 시 102:13), 때(출 23:15, 수 8:14, 습 3:18), 회막(출 27:21, 레 24:3, 왕상 8:4), 성막(출 35:21, 40:2), 회막문(출 40:12, 민 16:18, 27:2), 성회(레 23:2,37, 겔 46:11), 절기(레 23:37, 민 29:39, 대하 8:13, 호 2:11), 절기제(민 15:3), 회중(민 16:2, 시 74: 4), 시기(민 28:2, 렘 46:17), 군호(삿 20:38), 날(삼상 13:11), 시간(삼상 20:35), 한 해(왕하 4:16), 회당(시 74:8), 기약(시75:2), 절기의 날(애 2:7, 호 9:5).
[동] 돌아오다(왕하 4:17), 정하다(욥 30:23, 시 104:19).
구약 성경 / 223회 사용

* 3259.  יָעַד 
1. 지적하다, 2. 예레미야 47:7,  3. 사무엘하 20:5

발음 / 야드(yâʽad)
관련 성경 / 상관하지 아니하다(출 21:8), 정하다(렘 47:7, 미 6:9), 주다(출 21:9), 만나다(출 25:22, 29:42, 느 6:2), 모이다(민10:3, 왕상8:5, 시48:4), 뜻이 같다(암3:3), 가다(느6:10), 서로약속하다(욥2:11), 거역하다(민14:35), 소환하다(욥9:19), 다투다(렘49:19, 50:44), 놓이다(렘24 : 1).
구약 성경 / 29회 사용




“하그”는 “춤춘다” “순환한다”는 의미다.
매년 그맘때가 되면 예외 없이 절기가 돌아오며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속성을 두고 불리는 명칭이다. 축제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축제의 기본 요소인 춤춘다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모에드”는 “특별하게 정해진 시간”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하신 “모에드”에 따라 공생애 사역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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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절이 어떻게 새해(로쉬 하샤나)로 바뀌었나요?

로쉬 하샤나(ראש השנה)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12월 31일이 1월 1일로 바뀔 때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축하하는 반면에 유대인들은 나팔절에 새해를 축하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새해는 “첫째 달 초하루”부터 시작됩니다.
첫째 달은 봄에 유월절을 기념하는 달이며, 초승달은 매 달의 시작을 나타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여러 가지 새로운 시작, 새로운 계절, 새로운 출발의 하나님이십니다!

1년에 한 번 기념하는 대신, 하나님께서는 매달 초하루, 즉 매 초승달을 기념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한 번이 아닌 열두 번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것을 "로쉬 호데쉬(ראש חודש)" 또는 "달의 머리"라고 부릅니다.
흥미로운 점은 달을 뜻하는 단어 “호데쉬(חודש)”가 새로운 것을 뜻하는 어근 “하다쉬(חדש)”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므로 새해(로쉬 하샤나)를 알일 수 있는 나팔을 불 수 있는 거룩한 성전이 없어졌기 때문에
나팔절(나팔을 불어. 쇼파르 테루아)과 연합하여 마치 나팔절이 새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팔절과 새해는 분명히 다른 절기를 의미합니다.

성경적 명령

민수기 10:10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더 나아가 민수기 28장 11-15절은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초하루에는……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되” 나팔을 불고 다양한 제물을 드렸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절기였습니다 - 곧 정규적인 일을 쉬는 날이였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 보면 이러한 월삭 축제는 종종 잊혀지고 중도에서 밀려나게 되었는데 어떤 때에는 기쁨으로 회복되기도 했고, 어떤 때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무미건조하고 공허한 방식으로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매월의 시작을 주목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은 흥미롭지 않은가요? 달은 가장 얇고 신선하게 새로운 가운데 새로운 주기와 새로운 한 달을 시작했습니다.

유대력은 어떻게 발전했나요?

유대력은 태양보다는 달에 의해 더 많이 규정되고(계절에 맞춰 약간의 변경이 있기는 하지만) 한 날이 자정에서 자정까지가 아닌 해질녘부터 해질녘까지 간다는 점에서 그레고리력과 다릅니다. 그 이유는 창세기에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는 말씀에서 하루가 저녁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위에서 언급한 니산월과 같은 유대력 월명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그 순서에 따라 달을 부르셨습니다(첫 번째 달, 두 번째 달 등). 그런데 그분은 또한 같은 방식으로 한 주의 날들을 부르셨습니다. 첫째 날, 둘째 날, 그리고 그렇게 여섯째 날까지, 그리고 안식일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요일명은 사실 우상숭배에 근거한 것입니다! (태양-일요일, 달-월요일, 토르-목요일 등). 마찬가지로, 유대력 월명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포로 생활을 하던 때에 가져온 것입니다.


1. 니산 נִיסָן 2. 이야르 אִיָּר 3. 시반 סִיוָן 4. 탐무즈 תַּמּוּז 5. 아브 אָב 6. 엘룰 אֱלוּל 7. 티쉬리 תִּשׁרִי 8. 헤시반 חֶשְׁוָן 9. 키슬레브 כִּסְלֵו 10. 테벳 טֵבֵת 11. 쉬바트 שְׁבָט 12. 아다르 אֲדָר

유대 민족이 새해를 축하하기 시작하고 이를 나팔절에 행하게 된 것도 바벨론의 영향이었습니다. “로쉬 하샤나”(한 해의 머리/시작)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에스겔이 단 한 번 언급합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로쉬 하샤나]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겔 40:1)

그러나 문맥을 보면 그가 새해 축하에 관해 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지 날짜 계산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계 재설정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기원전 1446년으로 추정됨) 이 달력을 모세에게 제시하셨는데, 그 이전에는 그들이 어떻게 시간을 측정했을까요?

성경에서 '달'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여러분은 과거 시간이 노아의 나이로 측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가 육백세 되는 해 둘째 달에 홍수가 닥쳤다고 읽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해서 노아의 나이에 의한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이하도록 극적인 출애굽의 기적을 행하시고 시간을 재설정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달력은 지상의 민족들이 따르는 방식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열왕기와 예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은 왕의 생애나 통치에 따라 시간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도를 쓸 때마다 선포하는 메시아의 오심으로 인해(AD) 시계는 다시 한 번 극적으로 재설정 됩니다.
지금은 메시아가 오신 지 2023년이 되는 해입니다.

5784년이 되는 유대인의 연도는 창조 이후의 연수를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올해가 2023년이라는 개념 자체는 예수님의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BC"(Before Christ) 또는 "AD"(Anno Domini – 우리 주님의 해)라고 말하는 대신에 "연도 계산 전"과 "연도 계산 후"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제 전 세계적으로는 "CE"(서력 기원) 및 "BCE"(서력 기원전) 이렇게 쓰는 것이 더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연도 계산과 시대 구분이 지향하는 예수님 중심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시간을 둘로 나누신 분을 부인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거부됩니다.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고 그 분이 주님이심을 고백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매일, 매주, 매달, 매해마다 계속적으로 우리의 삶을 그분께 산 제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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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성경은 이 절기를 ‘여호와의 절기’라고 밝힌다(레위기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Speak to the Israelites and say to them: 'These are my appointed feasts, the appointed feasts of the LORD, which you are to proclaim as sacred assemblies.)   

이스라엘 민족의 절기가 각 민족의 절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 그럴까요?

첫째, 이스라엘의 절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셨다.
따라서 과장이나 꾸밈, 조작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둘째, 사건과 절기의 순서가 다르다.

즉, 다른 민족의 절기는 사건이 발생한 뒤 그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기념해 생겨났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 먼저 절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에 맞춰 사건이 발생했다. 이스라엘 최대 절기인 유월절을 예를 들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애급에 대한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죽임’이 임할 날짜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미리 알려주셨다. 그리고 재앙을 피할 수 있도록 집집마다 양을 잡아 그 피를 인방과 설주에 바르도록 하셨다. 죽음의 신이 이스라엘의 집에 넘어가도록 정하셨고 이를 유월절로 제정하신 것이다.


레위기 23장엔 이스라엘의 7개 절기가 언급돼 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절(대속일), 초막절 등.
이는 하나님이 진행하실 인류 구속사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절기에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과 프로그램이 암호화돼 있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친교를,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칠칠절(오순절)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임무 교대를,
나팔절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대속죄일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 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4.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6.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 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7.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8. 너희는 칠 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레위기 23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의 문화 명령을 하셨다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절기를 지키라는 말로 되어 있지만은 그 안에는 사람이 살아갈 때 어떠한 문화에 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대체로 어느 민족 없이 종교가 그 나라의 문화의 틀을 만들게 됩니다.


문화의 틀 안에서 그 문화에 젖어서 하나님을 배우면서 또 감사하면서 살게 하셨는데 23장에는 여러 가지 절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맨 첫 번째 언급하신 절기를 엿새를 일하고 제 칠일에는 안식한다. 안식의 명령을 말씀하셨는데 제가 세상 모든 종교를 비교하거나 연구하기 어렵습니다만 어느 종교에서 쉬는 것을 계명으로 정한 그런 종교가 없어요.


아시는 데로 불교나 유교나 이런 것은 사실 철학이나 윤리라 할 수 있는데 쉬는 게 명령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만이 사람에게 휴식이 필요하다 안식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놀라운 일이죠. 엿새도 일하고 이레도 일하고 여드레도 일하고 계속 일하게 되면 잘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온 세계를 돌아볼 때 엿새일하고 하루 쉬는 그런 국민들이 대체로 선진국이고 또 잘 살고 있어요. 또 건강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안식할 것이라.”


그런데 우리사회는 어떻게 된 게 일거리나 일자리가 모자라서 엿새 일할게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주5일째가 그의 상식화 돼가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불행해요. 지금 프랑스 같은 곳은 주4일 근무를 해서라도 일을 나누자. 아시는 데로 지금 우리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가지고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나 일거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므로 소득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프랑스는 가장 일찍이 주 5일 근무하다가 주 4일 근무로 프랑스가 빨리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일을 할 때 일을 너무 가리지 않으면 일이 있을 텐데 우리나라 청년들이 너무 일을 편안일, 쉬운 일 너무 가려서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사실 일손이 모자라서 외국에서 일손을 데려오고 하잖습니까.


가까운 일본만 가도 청년들이 딱 알아서 깨끗하고 쉬운 일자리라는 게 제한된다 해서 이것저것 안 가리고 일이 있으면 일을 하는 입장인데 한국 젊은이들은 좀 안 그런 것 같아요. 전부 거의 대학을 다 나왔고, 그런 입장에서 네가 그런 일을 하겠나? 부모도 그런 일을 안 시키려고 하고 본인도 안하려고 하고 그리고 아주 쉬운 일, 편안한 일, 깨끗한 일만 찾다 보니까 일자리가 모자라는 것 같아요.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안식도 안식이지만 안식보다 더 중요한 게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일 한 사람에게만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 일도 안하고 빈둥빈둥 논 사람은 안식을 누릴 권한도 없는 거죠. 그래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제7일은 쉬어라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절기가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명령인데 4절 이하입니다.


4.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그날 정월 14일 저녁에 애급에 있을 때 죽음에 사자가 애급에 집들을 쭉 지나가다가 그 문 인방과 설주에 유월절 양에 피가 있는 곳은 넘어갔다. 죽음에 사자가 그 집에 장자를 건드리지 않고 넘어갔다는 걸 기념하는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달력으로 1월 14일 이죠.


그리고 그 이튿날 14일에 이튿날 먹을 빵을 반죽을 했는데 새벽같이 나오다 보니까 발효가 안 된 빵을 먹었다 해가지고 무교병을 먹는 절기가 15부터 한 주간 동안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도록 그렇게 규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은 사실은 14일 하루고, 그 이튿날이 바로 무교절로 접어들어서 일주일간 이어집니다. 6절


6.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 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7.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8. 너희는 칠 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화제는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운 빵 굽는 냄새가 올라가는 그런 제사를 화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월절 쉬고 또 그 이튿날 무교절 쉬고 그 다음에 주중에 일하고 또 제7일에도 쉬게 하는데 단, 그 기간에는 일은 하되 빵을 무교병을 먹도록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런데 명절하면 우리는 맛있는 것 해먹어야 되는데 그 맛없는 빵을 먹어라 하니까 일주일 동안. 제가 93년도 처음 시내산 밑에 가서 호텔에서 나오는 빵이 나오는데 내 평생에 그렇게 맛없는 빵을 안 먹어 본 것 같아요.


나중에 알았는데 무교병이라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 못살고 가난해 가지고 개떡이라는 걸 해 먹었어요. 개떡이 뭐냐 하면 정미소에서 보리를 정미하는데 겉껍데기를 도정해 내고 그 조금 안쪽에 맨 겉껍데기 안에 있는 그래도 꺼걸하고 맛이 없습니다.


보리쌀 속을 가지고 빵을 해도 별로 맛이 없는데 곁 껍데기 비슷한 것을 갈아서 하니까 보리등겨 같은 게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걸 소다를 넣어 가지고 소다를 얼마나 많이 넣는지 갈색이 될 때까지 소다를 넣어요. 거기다가 사카린을 넣어서 쪄서 먹는데 안 먹을 수도 없고 먹자니 맛도 없고 그래서 깨작깨작 먹다가 다 못 먹고 남은 수가 있어요. 뭐든지 조금 남으면 먹기 싫은 개떡만큼 남았다고 그래요.


얼마나 맛이 없는지, 그것을 또 개떡을 납작하게 해서 숭숭 썰어 가지고 손가락만큼 해서 그걸 개떡제비라는 것을 합니다. 수제비는 굉장히 고급에 속하고 개떡제비하고 호박잎을 비벼 넣어가지고 개떡 제비를 여름 내도록 먹는데 어른들은 호박잎하고 넣어가지고 “어~ 시원하다.”하는데 나는 시원하지도 않고 뜨겁기만 하고 어떻게 그렇게 맛이 없는지 목에서 꺼걸꺼걸한 게 안 넘어가려고 해요.


그런데 개떡만큼이나 맛이 없더라고요 시내산 밑에서 먹었던 무교병이란 게 그렇게 맛이 없어요.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 먹는 게 아니고 일주일씩 먹으려면 힘들어서 그렇게 하면서 애들이 분명히 물을 거든요. “왜 이렇게 맛없는 것을 주는데?” 하고 물으면 이제 역사교육을 하는 겁니다.


역사교육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는 거예요. 절기라는 게 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또 감사하며 살게 하는 거죠. 안식일은 뭘 기념하는 거예요? 뭘 감사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기념하는 날이 엿새 동안에 창조하시고 제 이레 때에 쉬었다 하시면서 하나님의 창조가 다 되었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시고 안식을 허락하신 건데 안식일에 쉼을 주시는 하나님을 감사할 뿐 아니라 천지 우주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은혜를 감사하는 그런 점이죠.

우리가 안식일만 감사합니까, 매일 감사한 게 아닌가? 매일, 여러분 아침에 뭘 감사해요? 잠 잘 잔거 감사한 거죠. 여러분, 불면증 걸려봐, 저에게 지금 가끔 질문하는 분들 중에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성경을 보시오”그렇게 해놓고 미안 하더라고요 성경이 무슨 수면제도 아니고, 어려운 책을 보면 잠이 와요.


헤겔의 법철학이나 역사 철학 같은 것을 보면 금방 잠이 올 겁니다. 가까운 분들 중에 잠이 안와서 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런 분들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여러분 잠 잘 자는 것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저도 전에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잠이 안 들고 밤이 깊어서 잠을 자려고 애쓰면 더 잠이 안 오고 이런 고통을 겪어 봤는데 잠 잘 자는 거 너무 감사한 거예요.


저녁에는 뭘 감사하는 거예요? 하루 동안에 우리가 사고 나지 않고 하루 잘 지낸 것, 일 잘하는 것 감사한 거죠. 그러니까 매일 감사하고 안식일은 또 감사하고 또 이스라엘 사람들은 월삭도 감사해요. 매월 초하루도 모여서 감사하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 9절에 보면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13.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초실절이라고 하는 절긴데 초실절은 교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절기인데 교회에서는 유월절, 우리 같으면 부활절을 지키고 그 다음에 맥추절 지키고 그리고 가을에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에 이렇게 넘어가는데 초실절이 도대체 뭐냐? 초실절이 애매하게 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마치 오순절, 칠칠절을 초실절 처럼 기록한 것도 있고 다르게 보면 그게 아닙니다.


유월절 시작할 쯤에 초실절 처럼 기록된 것도 있어요. 날짜가 어느 날이 초실절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러 자료와 성경구절 다 뽑아 봐도 쾌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떻든 곡식을 심어서 이것이 첫 열매를 거두는데 첫 열매가 우리처럼 벼농사가 아니고 밀농사, 보리농사입니다.


그래서 밀, 보리를 거두는 시기가 우리나라하고 조금 달라요. 우리는 지금 이제 보리 겨두고 모내기 했죠. 그렇게 보면 모내기가 열흘 전부터 시작되었다 하면 보통 망종, 6월 5일경 되어서 보리 겨두기가 끝나지 않겠나 그래서 6월 25일 정도 안에 모내기가 다 끝나면 좋고 6월 25일 넘으면 모내기가 늦어져 간다. 이렇게 보통 생각해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이스라엘 땅에 가서 보리가 익어 밀이 익어서 거둘 때 보면 3월입니다. 3월말에 갔을 때 이미 어떤 밭은 밀, 보리를 거둔 곳도 있고 밀이 보리보다 조금 늦게 익습니다. 보리하고 밀이 익는 시기가 최소 닷새 내지 열흘 정도 차이가 나요.


그 만큼 차이도 농가 월력에는 너무 손해를 많이 본다. 밀을 심었다가는 밀을 거두려면 보리보다 열흘식이나 있다가 거두기 때문에 모내기를 만약에 보리 거두면 열흘 빨리 할 수 있고 밀을 심었다가는 열흘 모내기에 늦어지면 벼농사에 지장이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옛날부터 밀이 소출이 조금 덜 나기도 하고 거두는 기간이 보리보다 열흘 늦은 것 때문에 벼농사에 지장이 있다 이걸 계산을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리를 많이 심고 보리를 적게 심었어요. 아마 연세가 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한지 이해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에 가보니까 우리가 3월 10일경 되었는데 우리 달력으로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은 유월절 절기에 가깝거든요. 유월절 절기가 3중순에서 4월 중순 그 사이에 유월절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때 이미 보리, 밀 거두고 빈 밭이 많아요 가보니까. 아직 거두지 않은 밭도 있으나 일찍 된 것은 이미 거두었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본다면 그 뒤에 15절을 보시면


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요제가 뭐냐 하면 첫 이삭 한단을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를 요제라고 그래요.


16. 제 칠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이게 오순절이거든요. 맞죠. 오순절보다도 약 50일 앞서서 첫 열매를 드린 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것도 먹지 못하게 하셨어요. 하나님께 먼저 첫 열매 한단을 드리기 전에는 생밀 이삭 비벼 먹는 것도 못하게 한다고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14절에 봐요.


레위기 23: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우리에게 옛날에 보릿고개가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도 첫 열매 고개가 있는 거예요. 첫 열매 드리기 전에는 못 먹으니까 하나님께 먼저 첫 열매 한단을 흔들어서 요제를 드리기 전에는 먹지 못하게 하니까 그날이 빨리 와야 먹을 텐데 그래서 그것이 오순절이 아니고 오순절보다 50일 앞서 유월절 안식일 그때가 첫 열매 거예요.


여러분 아시는 데로 예수님이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안식일 날 무덤 속에 있다가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부활의 첫 열매로 부활하신 거죠. 맞아요? 그러니까 첫 열매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인 것처럼 첫 열매도 유월절, 무교절 그 다음날이 첫 열매 드리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맞아요.


그런데 출애굽기 34장 22절에 보면 맥추에 초실절이라 말을 하면서 맥추절에 마치 초실절인 것처럼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고요. 그래서 성도들이나 목회자나 성경학자들이 다소 혼란이 있지 않나 싶은데 여기 자세히 계산해보면 첫 열매 드린 날부터 7주를 계속 계산해가지고 50일 된 날이 오순절이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 보면 첫 열매 가져온 달이 예수님께서 부활한 그날 인 거예요. 집에 가서 여러분이 연구를 해보세요. 저도 연구 해볼 테니까 16절


16.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17.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에바라는 게 어느 정도 크냐하면 한 에바가 23리터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한말, 우리말로 할 때 한말 보다 좀 더 커요. 조금 더 많은 정도 23리터 정도가 에바입니다. 그리고 힌이라는 단위가 나오는데 힌은 3.7리터 그러니까 4리터가 체 안 되는 거예요. 1한 갈론 보다 조금 더 작은 그런 정도입니다. 17절


18.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19. 또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수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20.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지금은 사회 구조가 달라지면서 머슴 하는 게 거의 다 사라졌죠.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동네 이른바 양반이다 하고 에헴~하는 사람들은 일을 안 해요. 일은 머슴이 하는 것이지 주인은 일 안했습니다. 그리고 머슴들은 엿새일하고 하루 쉬는 게 아니고 한 달에 하루 정도 쉬는 절기가 있어요.


하루나 이틀 이렇게 정월에는 설은 다 쉬죠. 설 때는 머슴들도 주인이 명절 지킬 수 있도록 다 준비해 놓고 머슴도 자기 집으로 갔다 옵니다. 한 이틀, 사흘 쉬어가지고 오고 그 다음에 1월 달에 정월 대보름 하루 쉬어요. 대보름 보다 하루 더 쉬고 이틀 더 쉬고 합니다.


2월에 연등제라고 불교 명절인데 또 하루 쉽니다. 삼월 삼짇날도 산에 취사도구를 챙겨서 밥해먹으려 가요. 삼월 삼짇날 우리도 머슴 아니라도 우리는 어릴 때 다 갔어요. 삼월 삼짇날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면서 그때 산골짝에 가서 처녀 총각들이 모여가지고 밥해먹고 놀고 합니다.


굉장히 즐겁고 했어요. 밥 해먹는 게 집에서 해 먹는 것 보다 산에 가서 밥을 해먹으면 반찬 별로 없어도 맛이 있어요. 4월에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칠석, 8월 추석, 9월 달에는 못 놀아요. 9월 달에는 노는 날이 없고 10월도 바빠서 놀지 못하고 동짓달에는 팥죽 끊여먹는 정도 그의 그래도 머슴들이 한 달에 하루 정도는 놀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석 때는 사실 머슴들이 놀기는 노는데 추석에 며칠 놀기 위해서 미리 가축들이 먹을 소꼴하고 무진장 베 놓고 가야 돼요. 사실 머슴들이 쉰다 해도 쉬는 게 아니죠. 어떻든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거저 머슴들하고 노동자들이 한 달에 하루 정도 노는 정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최소한도 60일 정도를 쉬었다고 안식일 쉬죠. 그 다음에 몇 며칠 식 누이는 명절이 있어요. 그래서 365일 정도 중에 대체로 300일 정도 일하고 65일 정도는 쉰다. 이렇게 봐요. 이스라엘 달력이 365일 아니고 360일이기 때문에 한 60일 쉬는 걸로 보면 그의 틀림없을 겁니다. 그 다음에 22절 보면


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참 이것도 특별한 문화죠. 우리나라에는 감을 따다가 맨 꼭대기에 까치밥 몇 개 남겨두는 그런 문화는 있어도 곡식을 베다가 밭모퉁이에 귀퉁이에 얼마 남겨 놓는 그런 것 없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다 베지 말고 조금씩 남겨두라. 객이나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를 위해서 남겨두라 또 이삭을 주인이 다 줍지 말고 베다가 떨어지거든 두라는 겁니다.


그리고 곡식 짐을 한 짐 짊어지고 가는데 한단이 출렁하고 흘렀다 그러면 지게 세워놓고 그걸 줍지 말고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위해서 떼어 주시는 거 보다 하고 놔두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삭을 줍다가 세상에 이삭 하나 줍는 것도 큰 이삭을 보면 반가운데 한 단이 흘려있으니까 얼마나 놀라겠어요.


사람이 살다가 그런 즐거움이 있어야지 하면서 줍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제나 이런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서 약한 자,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베려하는 그런 법이 있었다는 거예요.


아시는 데로 여러분 보아스라는 사람이 룻기에 있잖아요. 보아스는 흘린 것을 줍지 말라든지 귀퉁이에 좀 남겨두라는 이런 게 아니고 일꾼들 보고 일부러 주우면서 뽑아서 흘려 놓아라. 줍는 사람을 위해서 더러 흘려주어라 하는 이런 장면이 나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아스 집에 복을 주신 거죠. 23절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나팔절이라고 하는 절기입니다. 7월 1일 이스라엘 달력으로 일곱 번째 달인데 그것이 우리는 1월 달이 새해라고 우리는 보통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7월 1일 나팔을 불면서 이게 새해가 돼요. 그리고 7월 1일이 나팔절이고 7월 10일 대속죄일이고 7월 15일이 초막절이예요.


7월 달이라고 하는 달은 우리나라 달력으로 하면 10월정도 됩니다. 우리 보다 3개월 늦어요. 달력이 늦게 가요. 우리가 3월에서 4월 될 그때가 이스라엘 겨우 1월입니다. 그러니까 7월하면 우리달력으로 10월 되는데 그때는 포도를 따서 다 포도즙을 짜서 포도주를 담그고 나면 1년 농사가 마무리 되는 땐데 그때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초막절 이런 절기가 몰아 있어서 7월은 그의 쉬는 날이 많은 거죠. 25절


25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7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28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29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날은 즐거운 행사를 하면 안 되고 마음속으로 1년 동안 지은 죄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괴롭게 하고 금식을 하던지 이렇게 스스로 괴롭게 하는 그런 날입니다. 30절


30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31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32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35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36 칠 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초막절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금 지키지 않지마는 우리로 하면 추수감사절과 같습니다. 초막절을 다른 이름으로는 장막절, 혹은 다른 이름으로 수장절, 수장절이라는 말은 거두어 저장했다. 1년 추수가 다 끝났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 정신을 기려서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는 겁니다.


초막절 규례 중에 나중에 신명기에 다소 나오기는 합니다마는 안식년 초막절 다는 말로 면제년 초막절 7년마다 도래하는 면제년 초막절에는 그냥 절기를 지키는 게 아니고 온 백성을 남자, 여자, 유치원생, 외국인 까지 다 불러 모우고 성경을 온 국민에게 읽어주고 다 설명해 주고 다 깨닫게 해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해라. 이렇게 명령한 게 신명기 31장 9절 13절에 또 기록되어 있습니다. 37절


37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번제와 소제와 희생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지니


전제라는 것은 술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제사에 가끔 술을 드리고 하는데 하나님의 제사에도 술이 있었어요. 그걸 전제 혹은 관제 이렇게 하는데 전제는 포도주를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38절


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그 사이는 일을 합니다.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에 칠 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유대인은 지금도 초막절을 지키는데 초막절에는 방에서 자지 않습니다. 반드시 초막을 짓는데 초막이 뭐냐 하면 막대기를 이렇게 세우고 그리고 또 그걸 세워서 이렇게 상낭처럼 걸쳐서 거기다 풀을 덮어 가지고 초막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소 먹이러 가서 초막을 많이 세웠어요. 나무 막대기를 이렇게 걸쳐서 움막 비슷하기도 한데 움막은 움막인데 풀을 덮었기 때문에 그걸 초막이라고 합니다. 거기 옹기종기 들어가서 소나기가 오면 피하기도 하고 그런 초막을 지어봤어요.


유대인들은 초막을 옥상에 짓거나 아니면 베란다나 발코니에 지어가지고 누워 천장을 보면 초막을 엉성하게 지어가지고 반드시 별이 보여야 돼.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방에서 자다가 갑자기 옥상에 올라가 자거나 초막을 짓고 자면 즐거워 한다는 겁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은 우리는 1년에 한번 이렇게 하지만 우리조상들은 광야에서 40년간 이렇게 하였단다 하고 역사교육은 하는 겁니다. 40절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에 칠 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칠월이 아까 말씀하신 데로 우리나라 같으면 10월경 되는데 그때 되면 춥지도 덥지도 않고 참 좋은 기후입니다. 그리고 온갖 과일이 풍성한 때죠. 42절


42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44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이것은 아주 원시절기 원래 초창기 이스라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시 말하면 40년 밖에 안됐잖아요. 애굽에서 나와서 역사를 시작하니까 그 짧은 기간에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절기를 지켜라 한 것이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아시는 데로 유대인 절기가 자꾸 늘어납니다.


12월 25일쯤 되면 수전절이라는 게 나와요. 그 다음에 푸림, 부림절이라는 게 또 나옵니다. 역사가 진행되다 보니까 기념하고 감사할 일이 많아지니까요. 우리 역사는 더 오래되었죠. 유대인들이 없는 성탄절도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절기를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과거에 은혜 베푸신 큰 은혜와 또 거기 담겨있는 진리를 백성들을 잊지 않게 교육하는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념하고 기억하고 기록해서 잊지 않게 항상 하나님께서 베푼 은혜를 대대로 자자손손 잊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 명령이고 그 문화 속에서 자라가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성탄절 12월 25일이 예수님 태어난 날이 아니다. 그래서 그걸 지키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태양의 신을 섬기는 로마의 절기를 본 따서 것이다 하면서 아주 길길이 뛰면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요.


대게 침례교 쪽이거나 안식교 같은 데에서는 성탄절을 대게 싫어합니다. 그런데 여기 여러분 중에 잘 모르겠는데 제가 볼 때 예수님이 12월 25일 탄생한 게 아니라는 것을 다 압니다. 아는데 그 태양신 섬기던 날을 하나의 문화를 바꾸어서 우리가 예수님 탄생한 날을 사실 잘 몰라요. 모른다고 우리는 모른다 이렇게 넘어가지 않고 로마사람들이 태양신을 섬기는 그날을 태양신 섬기는 것을 그만 두어 버리고 예수님 오는 날로 기념하면서 성탄절 문화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나온 지 몰라요.


성탄절에 교회 재미있단다 해서 왔다가 그것이 교회 첫발이 되어 신앙생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좋은 문화를 만들면 그 문화로 말미암아서 하나의 문화 선교가 이루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도 절기 때 마다 지역주민들이나 일가나 친척 이런 분들을 교회 모셔 와서 전도가 되는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 할 때부터 있었던 은혜의 역사를 백성들이 자자손손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념하며 감사하게 하는 문화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큰 은혜의 절기들이 많이 있어서 그 절기 때마다 감사하며 매일도 감사하며 안식일 마다 주일마다 주님의 부활과 하나님의 창조를 또 감사하며 자고 깰 때 단잠주신 것과 건강 주셔서 일하게 하신 것 늘 감사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며 항상 선을 쫒는 거룩한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 유앙겔리온(http://www.korbaea.com)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이끌어 내시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위한 방법으로서 제사법과 절기를 가르쳐 주셨다. 절기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정함을 받은 뒤 체험한 각종 구원사건을 정기적으로 기억하도록 하여 영적각성을 주기 위한 제도였다.


레위기 23장은 구약의 어떤 장보다도 훨씬 더 이스라엘을 향한 많은 예언과 하나님의 계획들을 잘 보여 준다.
이 절기들이 질서있게 그리고 완전하게 잘 배열 되어져 있다. 각 절기들은 그 절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 7대 절기를 연대적으로 나열해 보면 이 절기들이 앞날의 사건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 아래 제정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유대인들의 명절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넓게 성취되어진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 임을 보여준다. 그 달력 안에 있는 이 거룩한 날들은 장차 올 일의 그림자이며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다(골 2:17).

유월절 :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마지막 재앙으로 인하여 애굽인들의 장자가 죽임을 당한데 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바른 피에 의해서 구원함을 받음으로 재앙이 지난 것을 기념하는 축제이다(레23:5)(민28:16)(신16:1).

절기의 시작은 1월 14일 저녁부터 시작되었다(레23:5). 이 때 준비한 흠없고 1년된 어린 숫양을 14일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었다(출12:8).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말하며 이와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인들의 연합을 의미한다.

유월절 희생양은 흠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시하고 갈보리 십자가의 사건을 상징한다.


유월절 (Passover, Pesach)

(출 12:1~14) “여호와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에게 이 달은 일 년의 첫 달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모든 무리에게 알려라. 이 달 십 일에 집집마다 양 한 마리씩을 준비하도록 하여라. 한 가족이 한 마리씩 준비하도록 하여라. 만약 양 한 마리를 다 먹기에 가족이 너무 적거든, 가장 가까운 이웃을 불러 함께 먹도록 하여라.  양을 사람 수대로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너희들의 수를 계산하여라. 준비할 양은 일 년 된 수컷으로서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하며,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선택하여라.
이 달 십사 일까지 그 양을 잘 지켰다가 어두워질 무렵에 모든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것을 잡도록 하여라. 피는 받아 두었다가 양을 잡아먹는 집 문틀의 옆과 위에 발라라. 그 날 밤, 고기를 불에 구워 먹되 쓴 나물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인 무교병을 함께 먹어라. 고기를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 할 것 없이 양 전체를 불에 구워 먹어라.  그 어느 것도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되며 만약 아침까지 남은 것이 있거든 불에 태워라. 먹을 때에는 이렇게 먹어라.  금방 길을 떠날 사람처럼 옷을 다 입고 신발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든 채 서둘러서 음식을 먹어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다. 그 날 밤, 나는 이집트 온 나라로 다니며 짐승이든 사람이든 이집트 땅의 모든 처음 태어난 것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의 모든 신들에게도 벌을 내릴 것이다. 나는 여호와이다. 그러나 너희가 사는 집에 피가 발라져 있으면 그것이 표시가 될 것이니, 피가 발라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너희를 지나갈 것이다.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너희에게는 어떤 재앙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언제나 이 날을 기억하며 이 날을 나 여호와의 기념일로 지켜라. 너희는 대대로 이 날을 기념하여 지켜야 한다.”


유월절은 오순절, 초막절과 함께 성경에서 정하여 준 유대인들의 커다란 3가지 명절 중의 하나입니다. 커다란 명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유월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옮겼었던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유월절은 신약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언이며, 그분의 구속 사역에 대한 그 그림자입니다.  또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약 유월절의 실제적인 모습이며, 완성된 모습으로써 귀중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유월절이 특별하고 의미 있는 명절이라고 하여 지켜지고 있는 것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날이라는 것 이외에도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 있을 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켜지기 시작한 절기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원래부터 있던 두 가지의 전통적인 명절이 하나로 승화된 것입니다.


Feast of Unleavened Bread- Chag Ha Matzot

그 중 하나는 “학 하마쫕(Chag Ha-matzot,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의 축제)”로서 농업과 관련된 명절이고, 다른 하나는 “학 하페삭(Chag Ha-pesach, 어린양의 축제)”로서 유목 생활과 관련된 명절입니다. 이 두 명절은 “봄의 축제(Chag Ha-Aviv)”로서 유대력으로는 첫 번째 달인 니산 월(3월-4월)에 들어있는 명절이며,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해방된 날(Z’man Cheiruteinu, Season of our Freedom)”이기도 합니다.

“학 하페삭(Chag Ha-pesach, 어린 양의 축제)”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학 하마쫕(Chag Ha-matzot, 빵의 축제)” 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으로서 고대 이스라엘인(히브리인)들이 대부분 양을 치는 유목민이었던 것과 상관이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염소와 양을 치는 목축업에 종사하였는데, 봄이 와서 광야에 초목이 자라나게 된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축하하기 위해 동물(염소, 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며 제사를 드렸던 전통이 있었습니다.


농업 명절인 “학 하마쫕(Chag Ha-matzot)”은 고대 히브리 족장 시대부터 가나안 땅에서 목초지대를 찾아다니면서 목축을 하면서 생활하였던 히브리 사람들(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야곱의 시대에 이집트로 이주한 후에, 나일 강 하류의 삼각지 주변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히브리 사람들이 지켜왔던 명절로써 농부들이 추수기가 시작되는 것을 축하하던 봄 축제였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게 되면,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로부터 가나안으로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해 달라. (출 7:16)”고 요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러한 요청은 고대 히브리 민족의 백성들이 유목민으로써 염소와 양들을 치며 살아갈 때, 조상들이 대대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왔던 제사(예배)였던 “학 하페삭(Chag Ha-pesach)축제(어린 양의 축제)”가 관례적으로 행해져 왔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 축제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과정 중에서 이집트에서 있었던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었던 장자를 죽이는 재앙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을 기념하는 하나의 “절기(Pesach, 유월절, Pass-over)” 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페사흐(פסח, pesach)”란 단어는 “넘어가다(pass over)”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입니다.

유월절 축제 동안에 먹게 되는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은 빵, Leaven-free Bread)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급하게 이집트를 탈출해 나아올 때, 미처 발효되지 못한 반죽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고 나온 사건을 기억하면서 먹는 유월절의 상징적인 음식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출발하였던 날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이며, 약 3,500년 동안 지켜온 유대인들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니산(Nisan)월 15일부터 시작하여 7일 동안 지키는 명절입니다. 첫 날과 마지막 날을 특별히 “욤 토브(좋은 날)”이라고 하여 안식일처럼 지냅니다. 보통은 기독교의 부활절과 비슷한 시기에 유월절이 되는데, 이러한 이유는 예수님이 유월절 안식일 다음 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유월절을 지키는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 12:3-49), (레 23:4-8), (민 9:25, 28:16-25), (신 16:1-8), (시 81:35), (말 1:8~12)의 말씀들을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월 10일에 한 살이 안 된 어린양을 취하되 각각 가족들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택하고, 그것을 잡습니다. (출 12:34, 12:12).

2) 그 어린 양은 흠 없는 것이라야 하는데(출 12:5, 레 22:19-25, 신 17:1), 흠 없다고 하는 것은 양이 병들거나, 눈이 멀거나, 또는 다리가 절거나, 상처하나라도 없는 온전한 것이어야 하며, 또 살이 적당하게 찌고, 어리고 고기 맛이 연하고 좋은 양을 뜻합니다.

3) 어린 양이라 함은 1년이 아직 안 된 것을 말합니다.(출 12:5) 또 아직 무슨 일에도 사용되지 않은 순결한 것이어야 합니다.

4) 수컷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출 12:5) 이 수컷은 종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양떼나 소떼에는 암컷은 많으나 수컷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수컷은 귀중하고, 종자가 되는 것, 즉 소득의 근원이 되는 것을 상징하는 양의 수컷이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제물로 가져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5) 어린 수양을 니산 월 14일 될 때까지 잘 보호하고 간직하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제물을 택하여 따로 구분시킨 시킨 것을 말합니다. 다른 양과 같이 어울려 더럽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홀로 두어 괴로움을 더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레 23:5), (민 9:3, 28:16), (수 5:10). 이와 같은 규례는 사람에게서 나실인(Samson과 같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미리 택함을 받은 사람)의 규례와 같은 것도 됩니다.

6)  니산월 14일 저녁에 그 양을 잡는다. (출 12:6) 그리고 양의 피와 고기를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고기는 고기대로 사용하고, 피는 피대로 사용될 수 있게 합니다. 어린 양의 죽는 모습을 통하여 대속의 고통과 죽음의 대가를 크게 느끼게 하고, 또 그 대속의 죽음을 생각하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7) 어린 양의 피는 양을 먹는 집의 문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피를 바름으로 양을 잡은 집을 표시하고, 양의 피의 냄새를 풍기어 양의 희생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사자의 형벌을 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8) 그 양의 고기는 그날 밤에 불에 구어 먹되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어야 합니다. 이 때 몇 가지 주의할 것이 있는데, 그 양의 고기를 먹되,
(a) 날로 먹으면 안 됩니다.
(b) 물에 삶아 먹어도 안 됩니다.
(c) 아침까지 남기면 안 됩니다. 그날 밤으로 모두 먹어야 합니다. 남은 것이 있다면 그 날 불에 모두 태워버립니다.
(d) 뼈를 꺾어서는 안 됩니다.
(e) 머리 뿐 아니라 정강이와 내장도 남김없이 다 구어 먹어야 합니다. (출 12:8-10).
(f) 그것을 먹을 때의 자세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합니다.(출 12:11).

그 이외에도 또 주의 해아 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날 밤에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출12:22)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고 있는 그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이집트를 두루 다니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유월절의 어린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속됨을 보여주고 있는 절기입니다.
즉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유월절의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며, 또 유월절의 양의 피와 고기로 인하여 구속과 자유를 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속죄와 구속과 영생을 얻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 29~34) “다음 날, 요한은 자기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내가 ‘내 뒤에 오시지만, 그분이 나보다 더 위대하신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분입니다. 나도 이분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물로 세례를 주러 온 이유는 이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또 요한이 증언했습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물러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나 역시 그분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분이 ‘너는 그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와 그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바로 그분인 줄 알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보았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분명하게  예수님은 (출애굽기 12: 3)에서 말씀하셨던 양과 같이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이 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그리스도)임을 세례요한이 가르쳤던 것입니다. 또 (이사야 53: 7)에서 말씀하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음의 고난을 당하실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에도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습니다.”그는 도살장으로 가는 양처럼 끌려갔다. 털을 깎는 사람 앞에 있는 양처럼 잠잠했으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모욕을 당하고 바른 재판을 받지 못했으니, 누가 감히 그의 후손에 대해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땅 위에서 그의 삶은 끝났다.”

이 이외에도 수많은 말씀들을 통하여 보면, “그(예수님)는 1년이 안 된 유월절 어린양과 같이 흠도, 티도, 아무 죄도 없는, 절대적으로 순결하신 그리스도이시며(벧전 1:19), 또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여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대신 고난을 당하시고, 죄인들의 죄의 값을 완전히 지불하시기 위하여 자신을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게 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증언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고전 5:7)


유월절에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어 먹고 그 뼈를 꺾지 않으며, 다음날 아침 전에 남은 것은 전부 먹어야 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막 26:2), (막 14:1-2), (요 18:28).  그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십자가를 적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들의 구속의 절대적인 요소임도 보여 주는 것입니다(벧전 1:19-22).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를 구어 먹은 것은 그의 살이 우리의 영적 참 양식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요 6:32-59), (마 26:26-28), (눅 22:7-20).

또 쓴 나물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신 포도주를 입에 댈 때 사용된 우슬초와 같은 것입니다. (출 12;15-20), (막 14;12), (눅 22:7), (행 12:3), (고전 5:8). 유월절 어린 양의 뼈가 꺾이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 뼈가 상하지 아니하였던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요 19:33).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를 아침까지 두지 말라 함은 그리스도의 장사 지냄을 의미하는 것이고, 허리에 띠를 띠고, 신 들메를 매고, 지팡이를 잡고 서서 먹는 것은 결단과 용기로 전진하고,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과감히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7~8) “여러분은 새 반죽이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없애 버리셔야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므로, 사실 여러분은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새 반죽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악의와 악독으로 가득 찬 묵은 누룩이 아니라 성실함과 진리로 가득한,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빵으로 유월절을 지킵시다.”

(히브리 11:28) “믿음으로 모세는 유월절을 준비하고, 문마다 피를 발랐습니다. 이 피는 죽음의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의 맏아들을 죽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기념하는 고난과 구속의 절기이며 날입니다.

유월절에는 유월절 음식을 먹었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 기록되어 있는말씀을 보면, 유월절 음식을 먹는 특별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2:8~11) “그 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기는 불에 구워서,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함께 먹어야 한다. 너희는 고기를 결코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서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 할 것 없이 모두 불에 구원서 먹어야 한다. 그리고 너희는 그 어느 것도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이 있으면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너희가 그것을 먹을 때에는 이렇게 하여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서둘러서 먹어라. 유월절은 주 앞에서 이렇게 지켜야 한다.”


Super-market에 진열되어 있었던 누룩이 들어간 음식들을 팔지 못하도록 덮어 두었습니다.

유월절 전날 유대인들은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누룩을 넣고 만든 빵이나 과자들을 모두 없앱니다.의자 밑이나 침대 밑에 혹시라도 떨어져 있을 방이나 과자 가루도 모두 청소를 합니다.

특별히 부엌은 구석구석까지 청소하면서 혹시라도 누룩이 들어가 있는 빵부스러기나 과자 부스러기라도 남아 있지 않도록 청소를 합니다. 이렇게 누룩을 제거하는 일은 부정함을 제거하고 악을 없애는 것을 상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빵을 만들 때 사용되는 곡식, 즉 보리, 밀, 콩, 옥수수 등의 곡식을 모두 없애고 다만 “Matzah”라고 불리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무교병)만을 7일 동안 먹습니다. 유월절 기간 동안 마켓에서는 누룩이 들어간 식품, 제품들은 이렇게 가려놓고 팔지 않습니다.

누룩이 완전히 집안에서 제거되었다고 생각되면 특별히 유월절을 음식을 위한 식기, 그릇, 포크, 나이프 등을 준비합니다.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유월절을 위한 식기나 그릇을 별도로 준비하여 사용합니다. 가정에 따라 가장 좋은 그릇을 가보로 하여 대대로 물려가면서 유월절을 위한 그릇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의 일상 생활에서 먹었던 빵을 만들 수 있는 곡식이 있었는데 이 곡식들을 “키트니욧(kitniyot)”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누룩이 든 빵(Chametz)뿐만 아니라 “키트니욧”으로 규정되어진 곡식으로 만든 모든 음식을 금지하였습니다.

유월절에 먹을 수 없는 곡식들을 구분하는데 혼선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 “키트니욧”으로 규정되어진 곡식들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콩(Beans), 메밀(Buckwheat), 카놀라 기름(Canola oil), 캐러웨이 씨(Caraway), 소두구(小豆寇, Cardamom), 옥수수(Corn), 회향풀 열매(Fennel), 호로파(葫蘆巴, Fenugreek), 렌즈콩(Lentils), 아마인(亞麻仁, Linseed, Flaxseed), 기장(Millet), 겨자(Mustard), 완두콩(Peas, Chickpeas), 양귀비 씨(Poppy Seeds), 평지 씨(Rapeseed), 쌀(Rice), 땅콩(Peanut), 깨(Sesame Seeds), 메주 콩(Soybeans), 해바라기 씨(Sunflower Seeds), 강냉이(Popcorn), 살갈퀴 콩(Vetch), 강낭콩(String Bean), 대마 씨(Hemp), 감초(Licorice) 등입니다.

그러나 곡식들 중에서 “키트니욧”으로 규정되지 않은 곡식들도 있습니다. 아니스(Anise), 구주 콩(Carob, Locust bean), 치아 씨(Chia Seeds), 고수 열매(Coriander), 목화 씨(Cottonseed), 커민(Cumin), 잇꽃(Safflower), 사프란(Saffron) 등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기간에 “카메츠(Chametz)”를 먹거나 집안에 두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카메츠(Chametz)”란 인공적으로 또는 자연적으로 발효된 밀이나 호밀, 보리, 귀리, 맥아 등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집에 있는 모든 밀, 호밀, 보리, 귀리 등, “카메츠(Chametz)”로 규정되어진 음식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마다 이런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하여 랍비들은 새로운 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 날 “카메츠(Chametz)”를 이웃에 있는 이방인에게는 팔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유월절이 지나고 나면 다시 이방인으로부터 그것을 사들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회당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이 “카메츠(Chametz)”를 팔았다가 다시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중간 역할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밖에 곡식을 발효시키거나 발효를 돕는 이스트(Yeast)나 또는 비슷한 작용을 하는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하고 있습니다.(출 12:15) 그러나 이와 같이 발효시키는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곡식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예를 들면, 포도를 발효하여 만든 포도주는 그 자체가 발효된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금지되지 않은 식품입니다.

유월절 음식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에 매우 급하게 떠나야만 했기 때문에 반죽을 하였지만 미처 발효시키지 못한 채 들고 나왔다고 하는 긴박성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무교병(Matzah)”이라고 하는 누룩을 넣지 않고 반죽하여 구운 빵입니다.

그런가 하면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은 순수함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탈무드에서도 “효모가 들어간 음식(chametz)은 마음의 악한 충동을 상징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이 마짜(Matzah) 세 개를 포개어 접시에 올려놓고 수건으로 덮어놓습니다. 유월절의 무교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유월절 첫날 저녁에 먹는 유월절 식탁을 위한 마짜, 즉 “계약의 마짜(마짜 쉘 미쯔바)”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유월절이 끝나는 날까지 7일 동안 먹는 마짜(Matzah)입니다.

탈무드 기록에 보면 마짜의 두께가 네 손가락 두께를 넘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의 논쟁이 기록 되어 있을 정도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월절에 만들어 먹었던 마짜는 꽤 두꺼웠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당시에는 유월절 마짜를 만들기 위해서 한 사람은 반죽하고, 한 사람은 마짜의 모양을 만들고, 나머지 한 사람은 굽는 일을 담당하기 위해서 세 사람의 여자가 한 조가 되어서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마짜의 두께가 손가락 하나 정도 이하로 얇아졌으며 마침내 마짜는 얇아지고 바삭 바삭해져서 오늘날처럼 얇은 과자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월절 마짜를 기계로 대량 생산하게 되었으며 가정에서 만들기 보다는 마켓에서 사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마짜는 보통 밀가루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보수적인 정통파 유대인들은 보리 가루로 만든 마짜는 보통 밀가루로 만든 마짜보다도 더 맛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도 보리 가루를 반죽하여 만드는 것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상징하는 마짜를 부드러운 밀가루보다는 거친 보리 가루로 만드는 것이 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에는 유대인들이 평상시에 먹던 빵이나 발효된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을 장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돈이 부족하여 자칫하면 본의 아니게 유월절을 어기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유월절 전에 “마옷 히팀(maot chittim)”이라고 불리는 자선 모금 행사를 갖습니다.  “마옷 히팀(maot chittim)”이라는 단어는 유월절 무교병을 만드는데 필요한 “밀을 살 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이웃들을 위하여 자선기금을 모음으로서 “풍족한 사람은 내고, 부족한 사람은 가져감”이라는 탈무드의 법칙을 지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 만찬을 히브리어로 “쎄데르(Ceder)”라고 부르는데, 그 문자적 의미는 “순서, 질서”라는 뜻입니다.

유월절의 6 가지 특별한 메뉴 : 유월절에는 6 가지의 특별한 음식(Seder Meal)이 준비되었습니다.


❶  어린 양의 정강이 뼈 : 유월절에는 문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하나님께서 보낸 죽음의 사자가 어린 양의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 지나갔던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음식입니다.

❷  무교병(마짜): 이집트를 나올 당시 빵이 발효되는 것을 기다릴 수 없었을 정도로 긴박하였던 상황을 기억나게 하는 음식입니다. (출 12:39)

❸  삶은 달걀 : 정강이뼈와 함께 삶은 계란을 먹었는데 제 2 성전이 파괴된 것을 기억하며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렸던 것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❹  쓴 나물 : “מררים 메로림”이라고 불리는 쓴 나물(Bitter herbs)은 이집트에서 조상들이 고난과 같은 노예생활을 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것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입니다. 쓴 나물(Bitter Herbs)은 어떤 특정한 식물을 말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쓴 나물(מרר, 메로르)이므로 어떤 종류이든 그 맛이 쓰면 유월절 만찬에 사용할 수 있는 채소가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적인 상황에 맞추어서 주로 다섯 가지 정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구하기 쉬운 것은 상추(Lettuce)와 샐러리, 그리고 호스레데쉬(Horse Radish)입니다. 가정에 따라서는 쓴 나물을 소금물에 찍어 먹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건너 온 홍해의 짠 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소금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기 위함이고 파슬리나 샐러리, 양상추 등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봄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기쁨과 축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❺  소스 : “하로셋(Charoseth)”이라고 불리는 소스는 사과, 무화과, 대추야자, 건포도, 등의 견과류에 잣, 호두 등을 넣고 으깬 것에 꿀과 포도주를 넣고 계피를 넣어서 만든 단 맛이 나는 소스(양념장)입니다. 그 색깔이 짙은 진흙 색과 같습니다. 쓴 나물은 이 벽돌색의 하로셋 양념에 찍어 먹으면서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벽돌을 굽는 중노동을 하였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렇게 먹습니다.

❻  포도주 : 기쁨을 상징하는 포도주는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자유하게 되어 맞이하는 기쁨을 상징하는 식사였습니다. 또는 포도주 대신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 중에 흘렸던 눈물을 상징하는 소금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에는 전통적으로 비스듬히 편안하게 기대어 음식을 먹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모든 유대인들은 이렇게 비스듬히 누어서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로마 시대의 관습에 따르면 모든 자유인들은 식사를 할 때 언제나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랍비들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유월절 식사만큼은 모두가 비스듬히 기대어 음식을 먹음으로써 그들이 자유인이 된 것을 만끽하며 음식을 먹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던 그들이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자유인이 된 역사적인 사실을 축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월절에 무교병을 만드는 곡식의 가루는 일반 밀가루가 아닌 무교병가루입니다, 즉 무교병을 고운 가루로 만든 것, 무교병가루(matza-flour)를 사용하여 반죽하고 구워낸 빵이어야 합니다. 이 가루는 이미 한번 구운 무교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오래 두어도 발효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의 무교병을 반죽할 때 특별한 물을 사용하였는데, 랍비 유다의 말을 따르자면, 무교병은 “마임 쉐라누(ma-yim she-lanu)”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은 “묵힌 물” 또는 밤새 집안의 시원한 곳에 떠 놓았던 물을 말합니다.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지만, 밤에는 땅 속의 해의 열기가 우물물과 시냇물을 데워서 물이 미지근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랍비 유다는 이 미지근한 물을 사용할 경우 무교병 반죽의 발효가 촉진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교병에는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데 그 이유는 반죽을 펼쳐서 오븐에 넣기 직전에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드는 이유는 밀가루 반죽이 빨리 발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반죽 안의 공기가 빠져 나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이 구멍들은 반죽을 굽는 과정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무교병의 구멍을 아름다운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그렇게 만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멍을 만드는 목적이 발효를 늦추기 위함인데 비해 구멍을 만드는 시간이 길어질 경우 오히려 발효가 촉진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율법대로 하자면, 무교병은 발효가 일어나기 전에 요리를 마쳐야 하는데, 그 시간은 반죽을 만들고 나서 18분 이내여야 합니다. 요사이는 이 작은 구멍들을 빨리 만들기 위하여 바퀴처럼 생긴 “레이들(raydle)”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거나 자동으로 1 cm에서 1.5 cm 간격으로 점선을 만드는 기계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원래의 무교병은 모두 둥근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875년 영국에서 무교병 만드는 기계를 발명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정사각형 무교병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기계는 곧 미국에도 소개되었습니다.

한편에서는 무교병을 기계로 만드는 일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둥근 무교병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네모난 무교병을 둥글게 다듬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것이 수제이든, 기계로 만든 것이든 둥근 무교병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월절 축제(Seder) 전날에는 무교병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규례가 탈무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랍비 레비도 말하기를,  “축제 전날에 무교병을 먹어 버리면 유월절 축제에서 무교병을 먹는 진기한 맛과 기분이 줄어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유월절 전날에 무교병을 먹는 것은 장인이 될 사람의 집에서 예비 신부와 미리 육체적인 관계를 맺어 버리는 것과 같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유월절 밤 축제에서 오랜만에 무교병 먹는 맛과 기분을 더하기 위하여 한 달 전부터 무교병을 먹지 않는 유대인도 많이 있습니다.

안식일이나 다른 명절 때는 식탁에 빵(할라)을 두 덩이 올려놓아 성전의 성소에 뫃여 있었던 진설병 상 위에 두 줄로 진열되어 있던 진설병을 기념하기도 한다고 했는데, 유월절에는 무교병을 식탁에 놓을 때, 3 덩이에 Matzah Cover를 덮어 놓습니다. 한 덩이를 추가하는 이유는 유월절에 해방을 얻은 자유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월절 음식의 식사 순서

올리브기름 램프에 불을 켜면서 유월절 식사가 시작됩니다. 유월절 식사의 순서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됩니다. 지난 날에 이방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겪었던 고난과 슬픔을 기억하며, 현재의 축복에 대하여 감사하며, 미래의 소망을 기원하는 순서로 가족의 가장이 인도하면서 진행됩니다.

이러한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 약간은 복잡하지만 그 절차가 있습니다.

1) 전식 (포도주 첫 번째 잔)

유월절 식사는 일반적으로 그 가정의 가장이 인도를 합니다. 첫 번째의 잔에 포도주를 따른 후, 인도자가 유월절 음식(Seder)을 먹을 때 읽는 축복 문을 낭독하며, 유월절 식탁에 온 것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각자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은 다음에 쓴 나물인 파슬리, 양상추 등을 소금물에 찍어서 먹습니다. 유월절 만찬에서 채소(karpas)를 먹는 풍습은 AD 1~2세기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쓴 나물을 먹은 후, 세 개의 마짜를 포개어 손으로 가운데를 자른 다음에 접시 위에 놓습니다. 잘린 마짜 조각 가운데 가장 크게 잘라진 조각을 특별하게 “아피코만(Afikoman)”이라고 부르는데, 이 아피코만을 자녀들이 보물찾기를 하듯이 식후에 찾아내도록 숨겨둡니다. 첫 번째로 포도주가 담겨진 잔의 포도주를 마시고 다시 채워 놓습니다.

2) 과거를 기억하며 (포도주 두 번째 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이집트를 나올 때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축복의 기도를 하고 음식을 함께 먹습니다. 이야기는 아이들이 질문을 하고 아버지가 대답하여 주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전통에 따라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가 다음과 같은 4 가지의 질문을 합니다. 이렇게 네 번이나 반복하여 4 가지의 질문을 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나오게 되는 역사를 가르치라는 명령이 출애굽기에 3번(출 12:26, 13:8, 13:14), 신명기에 1번(신 6:20)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반드시 자녀에게 이집트를 탈출하여 나왔던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고 명령으로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 밤에 우리는 마짜를 먹습니까?
왜 이 밤에 우리는 쓴 나물을 먹습니까?
왜 이 밤에 우리는 쓴 나물(파슬리)을 두 번 소금물에 찍어 먹습니까? (또는 왜 쓴 나물을 하로셋에 찍어 먹습니까?)
왜 우리는 유월절 음식을 뒤로 비스듬히 기대어(누워서) 먹습니까?

아버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유월절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 줍니다. 아버지(인도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날 때 급하게 떠나므로 무교병을 먹을 수밖에 없었음을 설명합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서 쓴 나물을 먹는다고 설명합니다. 이집트에서 흘린 눈물을 기억하며 소금물에 쓴 나물이나 파슬리를 찍어 먹는다고 설명합니다. 이제는 자유로운 백성으로써 비스듬히 누워서 먹어도 될 만큼 여유와 기쁨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자세로 음식을 먹는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합니다.

이와 함께 재미있는 관습이 또 있는데 그것은 10 가지의 재앙에 관하여 이야기를 전하여 줄 때, 식사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재앙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약간의 포도주를 입에 머금고 있다가 준비된 그릇에 뱉어 내는 관습입니다. 이렇게 3,500년 전에 있었던 조상들의 이야기를 재연하여 들려주면서 현재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다시금 출애굽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제로아(zeroa)”로 불리는 정강이뼈는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신(자유롭게 하여 주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팔”을 상징합니다. 정강이뼈는 또한 성전시대에 유월절 희생 제물로 드려졌던 어린양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달걀은 예루살렘 성전에 드려졌던 번제의 희생 제물을 상징하기도 하며, 예루살렘에 우뚝 서 있었던 성전을 잃은 유대인들의 슬픔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모든 식구들은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에게 베풀어주신 기적과 기사들을 찬양하며 “다예누”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주님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불러내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충족한가!”라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노래가 끝나면 두 번째의 포도주 잔을 마십니다.

3) 현재를 축복하며 (포도주 세 번째 잔)

유월절 음식과 마짜(무교병)를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먼저 쓴 나물부터 먹습니다. 쓴 나물을 마짜 사이에 넣어서 만든 “힐렐 샌드위치”를 만들어 달콤하고 고소한 하로셋 소스에 찍어서 먹습니다. 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마짜에 쓴 나물을 넣어서 먹음으로써 힘들고 쓰디 쓴 이집트에서의 생활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이 쓴 나물을 먹을 때에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 하였던 것을 기억하며 먹는 것이기 때문에 비스듬히 누워서 먹지 않고 허리를 펴서 곧바로 앉아서 먹습니다. 이와 같은 관습은 과거에는 쓰디쓴 노예생활을 살았지만 오늘은 달콤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유월절의 메인 메뉴인 어린 양고기를 먹기 위해 축복의 글이 낭송되고 식사가 진행됩니다. 이렇게 맛이 전혀 없는 “힐렐 샌드위치”를 먹고 나면 유월절 음식을 먹은 다음에는 처음 유월절 식사가 시작될 때
부러뜨렸던 마짜 조각 중에서 가장 커다란 조각을 아이들이 찾아내도록 숨겨 두었었는데, 그때 숨겨두었던 마짜 조각인 아피코만(Afikoman)을 찾는 시간을 갖습니다. 숨겨진 아피코만(Afikoman)을 찾은 아이는 돈으로 보상을 받게 되고 찾아낸 아피코만(Afikoman)을 잘게 부수어 모든 사람들이 한 조각씩 후식으로 먹습니다.

“미쉬나”의 기록에 보면 유월절 식사 후에 아피코만을 남기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밤에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유월절의 희생 제물로 바쳐진 어린 양의 고기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2 성전이 파괴된 이후로는 유월절 희생 제사를 드렸던 어린 양이 없었으므로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아피코만을 먹으며 성전의 희생 제물로 바쳐졌었던 유월절 어린 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주 3 번째의 잔을 마시게 됩니다. 이 3 번째로 마시게 되는 포도주 잔을 “구원 잔”이라고 부릅니다.

“아피코만(Afikoman)”에 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하자면, 유월절 식사가 시작 될 때, 무교병(Matzah)을 3 개로 포개어 부러뜨렸습니다. 이때 부러진 조각 중에서 가장 큰 조각을 아람어로 “아피코만(Afikoman)”이라고 부릅니다. 이 아피코만을 유월절 식사의 Main course가 끝났을 때 후식으로 먹습니다.

유대인의 전통 관습에 의하면 이 아피코만(마짜의 큰 조각)을 가지고 어린 아이들이 유월절 만찬에 대하여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게임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유월절 식사 인도자)는 이 아피코만을 아이들이 찾기 힘들게 감추고 아이들로 하여금 그 아피코만 조각을 찾도록 하는 게임입니다. 아피코만을 찾게 되면 선물이나 돈을 약속받게 되어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유월절 식사 시간에 아이들이 흥미를 돋게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밖에도 아피코만에 관련된 관습들이 많이 있는데, 유월절이 지나게 되면 이 아피코만 조각에 구멍을 뚫어 집이나 회당에 걸어 놓기도 하고, 이 아피코만이 행운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보관하여 두었다가 여행을 할 때 가져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 아피코만 조각을 냅킨에 싸서 어깨에 얹어 출애굽 당시의 모습을 재연하기도 합니다. 집 주인이 이 아피코만 조각을 어깨에 얹고 약 4 m 정도 걸어 나오게 되면, 사람들이 집 주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디로부터 오는 길입니까?” 그러면 집 주인은 대답합니다. “이집트로부터 오는 길입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라고 물으면, 집 주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때에 모든 사람들은 “내년에는 모두 예루살렘에서 축하하도록 합시다.” 라고 대답합니다. 오랫동안 디아스포라로서 흩어져 살아온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관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아피코만을 먹으면서 유월절 식사는 마치게 됩니다. 인도자는 음식에 대한 감사 기도와 축복의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세 번째의 포도주를 마십니다.

4) 미래를 바라보며 (포도주 네 번째 잔)

식사를 마치게 되면 인도자는 문을 열어 놓으면서 준비된 “엘리야의 잔”에 포도주를 채웁니다. 그러고 나면 모든 사람들은 “이 일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그(엘리야)가 결정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들어 와서 이제 메시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선포되기를 기다립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미리 와서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서 “메시야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관습 중에, 어떤 문제를 논의하다가도 해결책이 없게 되면 “엘리야의 결정에 맡깁시다.”라고 말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엘리야 선지자(엘리야후 하나비)”라는 노래를 부르며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심으로 평화와 자유가 오기를 기도합니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우리는 노예였다네….그러나 지금은 자유롭다네…”하는 “아바딤 하이누(우리들은 노예였다네)”라는 유대인의 노래를 부르고,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레샤나 하바아 예루사라아임)”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유월절 식사를 마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유월절의 식사를 마치는 시간은 대략 밤 12경이 됩니다. 만찬을 마친 사람들은 저마다 지붕위에 올라가서 감사의 찬송, 시편 113 ~ 118편을 부릅니다.



왜 유월절에 4 잔의 포도주를 마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출애굽기 6: 6~8)의 말씀에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하는 말을 전하여라. 나는 여호와이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이 너희에게 강제로 시키는 힘겨운 일에서 너희를 구해 줄 것이다. 큰 능력으로 너희를 이집트 사람들의 노예 생활에서 풀어 주어 자유로운 몸이 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벌을 내릴 것이다.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며, 너희는 내가 너희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이 너희에게 강제로 시키는 힘든 일에서 너희를 구해 낼 너희의 하나님이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손을 들어 약속했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리니, 나는 그 땅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나는 여호와이다.”

이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나오게 하신 하나님은 “너희를 빼내며”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너희를 속량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라는 말씀과 같이 4 가지의 동사를 점진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파괴되기 이전인 AD 70년까지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의식이 예루살렘성 안의 모든 가정들과 모든 유대 땅의 작은 공동체에서 준수되었으며, 어린양들이 제물로 예루살렘 성전의 주변에서 도살되었습니다.

그러나 AD 70년경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성전의 돌 위에 돌 하나라도 올려있지 않을 정도로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파괴되었으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없어지게 되자 불가피하게 지금까지도 유월절 의식의 절정이 되는 번제 제사 즉,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의 번제가 빠져 있는 “가정 의식” 형태로 지켜져 내려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종교적 핵심이었던 희생 제사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서부터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유대교는 희생의 제사가 없는 새로운 종교로 발전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수천 년 전에 드렸던 희생 제사의식을 그대로 드리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아직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심 산을 중심으로 살아왔던 사마리아 지방에 살고 있는 유대인(사마리아 사람들)들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전 시대에는 매일같이 희생양들을 제물로 하여 제사를 드려왔지만, 사마리아의 유대인들은 니싼(Nisan) 월 14일, 유월절에만 희생 제물로 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점입니다.

*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 (유월절 만찬)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에 걸쳐서 하신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만찬(Ceder)을드시면서 하신 말씀들입니다. 이 말씀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월절의 만찬의 순서를 알아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드시면서 여러 가지의 말씀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가졌던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만찬이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을 드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유월절 만찬의 “전식(前食)”의 과정인 포도주 첫 잔을 따르고 축복문을 낭송하면서 유월절 만찬이 시작됩니다.  첫 잔을 마시고 손을 씻는 예식이 거행되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것은 바로 이때였을 것입니다.

(요 13:4~5) “그래서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시면서 여러 가지의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죽게 될 하나님의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자 중에서 하나가 주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시면서 빵(마짜)을 가룟 사람인 유다에게 주셨을 때, 마침내 사탄이 그에게로 들어갔는데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세 번째 잔에 따르시고 현재를 축복하면서 유월절 마짜를 먹기 위해 축복문이 읽으시고 마짜를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이 마짜를 자신의 몸(Fresh)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드시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곧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와 ‘포도주’를 연결시키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목음 26:26~28) “식사 때에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잔을 들어 감사드리신 후,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해 붓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이후 마짜를 받아 든 사람들은 쓴 나물을 마짜 사이에 넣어서 “힐렐 샌드위치”를 만들어 하로셋 소스에 찍어서 먹었는데 이때에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배반을 예언하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3:21~2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뒤에 마음이 무척 괴로우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증언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으나, 예수님께서 누구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3:26~27)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 빵을 접시에 찍어 주는 자가 나를 배반할 자이다” 하시면서 빵 조각을 집어서 접시에 찍어 가룟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유다가 빵 조각을 받자마자, 사탄이 그에게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빨리 하여라!””

유월절 만찬 (Ceder)을 하시면서 주님께서 주의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유언을 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면서 죽음까지라도 따라가겠다고 맹세하는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신 때도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드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 밖에 없는 길이며, 완전한 진리이시고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앞으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시게 되면 예수님의 영이시고 거룩한 영인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영원히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가지시면서 유명한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 포도 나무의 비유는 유월절 만찬의 4 번째 포도주 잔을 마시고 나서 말씀하여 주신 비유였습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 그러나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유월절 만찬을 마치는 시간은 대략 자정 즈음이 됩니다. 유월절 만찬을 마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집 지붕에 올라가 감사의 찬송인 시편 113-118편(할렐 송)을 불렀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불러대는 할렐 송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주변의 산들이 흔들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할렐 송(시편 113~118편)”으로 찬미하면서 감람산으로 올 라가셨습니다.

(마 26:30)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의 자리 배치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으로서는 15세기 말경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인데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church) 성당의 식당 벽화로 그려진 작품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 그림에는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제자들이 양쪽으로 6명씩 자리 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림을 보면 제자들은 3명씩 모여서 4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렸습니다.

직사각형으로 된 식탁에 예수님의 제자 12명이 3명씩 모여 앉아 4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림의 보이는 대로 왼쪽에서부터 앉아 있는 제자들의 얼굴들은, 바돌로메, 작은 야고보, 안드레, 가룟 유다, 베드로, 요한, 도마, 큰 야고보, 빌립, 마태, 다데오 유다, 그리고 맨 오른쪽에 앉은 제자가 시몬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의 모습은 요한복음 13장 22절부터 30절에 이르는 내용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난 직후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을 듣고 나서 취하였던 제자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는 요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그 제자가 누구냐고 묻고 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베드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를 향하여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안드레는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두 손을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도마는 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마태와 다데오 유다는 예수님에게 등을 돌려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가룟 유다는 같은 접시로 손을 뻗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안드레와 베드로는 형제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 그림에서도 서로 닮게 그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과 작은 야고보는 형제로 알려져 있었던 만큼 서로 닮게 그려 놓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등을 돌려 앉아 있는 사람 중에 다데오 유다의 모델은 이 그림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톨릭 성화에는 성인들의 머리 뒤에 성인임을 나타내는 후광이 그려져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최후의 만찬”에는 그런 후광이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그러나 성서학자들은 이 그림에서 보이듯이 최후의 만찬 식탁은 직사각형의 식탁이라기보다는 당시 로마식 식탁이었던 “ㄷ”자 형태의 식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로마에서 사용되었던 “ㄷ”자 형태의 3면 식탁은 사회적인 계급 구조에 따른 것으로써 특별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즉, 로마 사회의 상위층에 속하였던 원로원 멤버를 시작으로 귀족, 시민, 노예로 이어지는 사회적 계급구조가 엄격하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공적인 모임에 참석했을 때 각자의 신분에 맞는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관례에 따라 자리가 배치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3면 식탁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상석”과 “말석”의 확실한 구분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로마의 사회적 계급에 맞게 고안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셨던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에 관련된 말씀들도 이와 같은 관례에 따른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 14:8-11) “예수님께서 초대받은 손님들이 서로가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의 결혼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윗자리에 앉지 마라. 혹시 너보다 귀한 손님이 초대받았을 경우, 너희를 잔치에 초대한 주인이 와서 말할 것이다. ‘자리를 이분에게 내주십시오.’ 그러면 너희는 부끄러워하면서 끝자리로 내려가야 할 것이다. 너희가 초대를 받으면 끝자리로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주인이 와서 말할 것이다. ‘친구여, 윗자리로 올라앉으시오.’ 그러면 다른 모든 잔치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을 얻을 것이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이었던 유월절 만찬의 자리가 이러한 로마식 3면 식탁이었는데 그 식탁에 앉을 때,제자들의 관심꺼리는 온통 누가 과연 상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앉느냐 하는 것이었음이 누가복음 22장에 기록된 유월절 만찬 식탁에서 있었던 상황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눅 22:24~27) “제자들 사이에 누가 가장 큰 사람으로 여김을 받을 것인가를 놓고 서로 말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의 왕은 백성들 위에서 왕 노릇 한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들에게 은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너희가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중에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종처럼 되어야 한다. 식사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과 그를 시중드는 사람 가운데 누가 더 큰 사람이냐?  식사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일반적으로 3면 식탁의 상석은 왼쪽 날개 부분에 있는데 3 명 정도가 그곳에 앉습니다. 그리고 중앙의 자리에는 초대된 사람들 가운데 주인공이 앉게 되며 그 옆으로 주인공과 함께 초대된 사람들이 앉게 됩니다.

최후의 만찬 식탁에서는 상석인 왼쪽 날개의 중앙에 예수님이 앉았을 것이므로 결국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에 누가 앉느냐 하는 문제로 제자들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다툼은 전에도 제자들 사이에 있었던 문제였습니다.

(마태 20:20~21) “그 때, 세베대의 아들들을 데리고 그 어머니가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께 절하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어머니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제 한 아들은 주님의 오른쪽에, 또 다른 한 명은 주님의 왼쪽에 앉으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유월절 식탁인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 식탁의 자리배치를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ㄷ” 식탁의 왼쪽 날개부분인 상석의 자리에는 스승님이셨던 예수님이 앉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석의 오른쪽 자리에는 요한이 자신에 대하여 “예수의 사랑하는 자”라고 늘 표현하였듯이 요한이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한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비스듬히 누워 있을 수 있었습니다.

(요 13: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개역성경)
(요 13:23)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 가까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였습니다.(쉬운성경)

그리고 상석의 왼쪽 자리에는 가룟 유다가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예수님이 떡을 찍어다가 유다의 입에 넣어준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른 손으로 떡(마짜 빵)을 왼쪽에 앉아 있는 유다의 입에 넣어 주신 것입니다.

(요 13:2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 빵을 접시에 찍어 주는 자가 나를 배반할 자이다” 하시면서 빵 조각을 집어서 접시에 찍어 가룟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이렇게 요한과 가룟 유다가 상석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된 이때에 예수님께서 떡(마짜 빵)을 떼어서 가룟 유다에게 주시면서 “예수님을 팔 자”라고 말씀하셨으니, 가룟 유다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 13:30) “유다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을 받고, 곧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때는 밤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월절

사마리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인 집단 중의 하나이며, 현재는 약 800명 정도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사마리아 사람들은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Ephraim)과 므낫세(Manasseh)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West Bank의 세겜(Shechem, Nablus) 옆에 있는, 아랍어로 Jarzim이라고 불리는 그리심 산(Gerizim Mount) 주위에서 그들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대부분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승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가장 먼저 만드신 산이 그리심 산이라고 하여 그 이름을  “Har Hakedem(the First Mountain)”라고 하며, 또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도 이 산의 흙으로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의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하여 번제를 드리려고 하였던 산도 이 그리심 산이라고 하여 매해마다 유월절 번제 제사를 이곳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을 중심으로 세겜 땅에서 살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지난 2000년 동안 사마리아 성전에서 제사도 지내고 유월절 절기를 성대히 지켜온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원래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인 세겜 땅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의 그리심산과 에발 산에서 매해  유월절에 거행되는 유월절 행사의 참관만은 유일하게 허락되어져 감격적으로 수백 마리의 양을 잡는 의식을 참관하고 있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현장에서 양을 잡아 참관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피 뿌림의 속죄의식도 행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종교는 유대교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근래에 와서는 약간 달라졌습니다. 사마리아 경전은 토라(Torah, 모세 5경), 사마리아 예배 의식서, Memar Markah(Teaching of Markah), 그리고 사마리아 율법과 성경적인 해석 등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종교적인 전통 이외에도 아랍 팔레스타인의 전통도 함께 지켜오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단지 4 Family (Cohen, Tsedakah, Danfi and Marhib)가 있을 뿐인데, 이런 사마리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는 매우 적은 인구입니다.

그들은 다른 족속들이 사마리아 집단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으며 그들의 종족 안에서만 혼인을 하기 때문에 유전적인 문제(유전병)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하여 근래에는 사마리아 남자가 사마리아 여성이 아닌 다른 종족의 여자와 사마리아의 모든 전통과 규례를 따르겠다고 하는 서약을 한 후에 결혼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지만 그 여성은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남편과 같은 집에서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혼인들은 “바꾸어 치기”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사마리아 남성이 결혼을 할 때 그의 여동생이나 그의 딸을 신부의 아버지나 신부의 오빠 또는 남동생에게 내어 주는 형태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것처럼 유월절이 되기 전날에 집안에 남아 있는 누룩이 들어가서 만든 빵이나 과자 등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없앴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모든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심(Gerizim) 산은 해발 890m로서 건너편에 있는 에발산보다 50m 정도 낮습니다.
이 두개의 산(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세겜(Shechem) 유적지가 있습니다.

그리심 산의 정상에 사마리아의 성전이 서 있었던 곳(Tel er-Ras)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채로 발굴된 유적들은 대부분 헬라시대에 건설된 것이고, 다만 정상의 큰 사각형(83m X 100m)유적과 그 안에 있는 육각형 건물터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Church of Mary”의 유적지입니다.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성전이 있었던 성전터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바와는 조금 다르게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곳(모리아 산)이라고 믿고 있으며, 로마 시대에는 이곳에 제우스신전이 서 있었던 유적도 있습니다.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5세기 때만 하더라도 약 120만 명이 있었지만, 1917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터키 민족을 물리치고 들어 왔을 때에는 불과 106 명가량의 사마리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약 600~800명의 사마리아 유대인들이 Tel Aviv 근교와 사마리아에 살고 있으며 세계에서 수가 가장 적은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그리심” 산과 오른 쪽의 “에발”산

사마리아 유대인의 대제사장은 제사장 가족의 최고연장자이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공동체에서의 정신적인 지도자이며, 모든 종교생활을 지도하는 사람입니다. 모세 오경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과 수천 년 동안 대대로 내려왔던 율법 해석 기록들, 그리고 대제사장 자신의 율법 해석을 기준으로 하여 삶의 기준을 결정하여 줍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서 2 개월 정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의하면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여야 하는데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에게 할례의식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대제사장은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있는 것을 엄마의 뱃속에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후부터 8일 만에 할례의식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1 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그리스(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그리심 산에 성전을 세울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총독인 자신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여 유대인들이 유대인으로써 인정하여 주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자 앙심을 품고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 별도의 성전을 세우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본 떠서 성전을 세웠는데 이때 세워진 사마리아 성전은 BC 129년, 마카비 전쟁 때 시몬의 아들 요한 하르카누스에 의하여 세워진 지 2 세기만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요 4:20)”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성전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은 성전이 부서져 예배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이곳에서 유월절 양으로 제사를 올려 드렸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의 성전이 무너지고 난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그리심 산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자, 사마리아(세바스티아)로 장소를 옮겨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 행사를 매년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는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유월절과 같은 절기 의식을 구약 성서에 그 뿌리를 철저히 두고 있기 때문에 구약 성서에 기준하여 어긋나는 전통은 전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구약 시대의 전통을 2,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은 일반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유월절 보다 약 한 달가량이 늦습니다.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인들의 유월절 의식은 구약 시대에 행하여졌던 것과 많이 바뀌게 되었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 의식은 제 2 성전 시대 이전의 전통을 거의 그대로 이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지금의 유대인들이 행하고 있는 유월절 의식(포도주를 마신다거나 아피코만 게임과 같은 전통)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이러한 전통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분리되어 나간 후에 유대인들 가운데 생겨난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마리아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흰옷을 입고 유월절 희생 제사를 준비합니다. 희생양을 고기를 굽기 위하여 커다란 웅덩이를 파놓고 불을 지펴놓고, 또 그 옆에 희생양의 내장 등을 태우기 위하여 웅덩이를 파고 불을 지펴 준비하여 놓습니다. 이렇게 희생 제사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나면 그들은 해가 지기를 기다립니다.

희생 제사는 해가 지기 약 10분 전쯤부터 시작됩니다. 대제사장이 제사가 시작됨을 알리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한 때 그들의 성전이 서 있었던 그리심 산의 정상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대제사장은 기도문을 낭송하고 정확하게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그는 해가 지는 서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유월절 희생양을 잡으라는 말씀이 있는 구약 성서를 읽기 시작합니다.


젊고 힘이 센 사마리아 사람들이 타오르는 불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서서 약 40마리의 희생양을 잡아 다리 사이에 놓고  “모든 이스라엘은 땅거미가 지는 시간에 양을 잡으라.”고 하는 대제사장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대제사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사마리아의 젊은이들은 일제히 양을 도살합니다.

그리고 양의 피를 자신의 얼굴에 찍어 바릅니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상대의 왼쪽 어깨와 맞대어 끌어안은 다음 또 다시 자신의 왼쪽 어깨를 상대의 오른쪽 어깨에 맞대고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는 특이한 방식의  유대인식 인사를 서로 나눕니다.

양의 내장을 쉽게 분리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양의 항문에 펌프질을 하여 바람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힘 센 사마리아 젊은이들은 끓는 물에 양을 잠시 넣었다가 꺼낸 후 양의 가죽을 벗겨 냅니다. 그리고 내장을 분리하여 따로 마련된 불구덩이에서 태웁니다. 성서에서 내장을 먹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장을 제거한 양을 깨끗한 물에 씻은 후, 소금물에 약 2 시간 동안 담가두어 피를 완전히 뺍니다. 피가 완전히 빠지게 된 것이 확인되면 대제사장은 양고기를 구우라고 명령하는데 젊은이들은 양을 나뭇잎과 풀잎 등으로 싼 다음 진흙을 바른 뒤 약 3 시간 정도 양을 굽기 시작합니다. 유월절 의식 행사는 잘 구워진 양고기를 출애굽 당시처럼 급하게 먹으면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유월절 식사는 희생양의 피로 인하여 모든 죄를 용서 받은 후 하나님과 화해된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서 먹는 거룩한 식탁이기 때문에 친밀한 교제를 나타내는 식탁입니다.


깊은 밤 1 시 가량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손과 발을 씻고 흰 옷을 입은 후 유월절 식사를 준비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뜯어온 쓴 나물과 양고기를 무교병(마짜) 위에 올려놓습니다. 대제사장의 축복의 기도가 끝나면 이 음식을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에게도 나누어 준 다음,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급하게 떠나면서 서둘러서 음식을 먹었던 것을 회상하며 급하게 먹습니다. 양고기가 주류를 이루게 되는 유월절 음식을 사마리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는 절대로 음식을 나누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기도하며, 이야기하며, 찬양하며 아침 해가 솟을 때까지 밤을 새웁니다.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구약 성서의 모세 5경,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레위기, 그리고 신명기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유대인들만 사용하는 경전을 “사마리아 5경”이라고 부릅니다. 사마리아 5경은 BC 5세기경, 유대교 분파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면서 오직 구약 성서의 모세 5경만을 경전으로 삼는 사마리아 유대인들의 경전입니다.

사마리아 오경은 단편까지 합쳐서 150여개의 두루마리들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데, 가장 오래된 성서의 사본은 AD 9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대부분은 14~15세기에 기록된 것들입니다. 특히 이 사본들 중에서 오늘날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꼽히는 사마리아 5경의 사본은 그리심 산 기슭에 위치한 세겜(나블로스)의 사마리아 회당에 보관되어 있던 것으로서 모세의 형인 아론의 증손자 이름을 붙여서 “아비샤 두루마리(Abisha Scroll)”로 불리는 사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중한 사마리아 5경의 사본인 “아비샤”가 보관되어 있었던 사마리아 그리심 산의 회당에서 1995년 3월 관광객으로 보이는 3명의 정체불명의 남자에 의해서 도난을 당한 것입니다. 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아비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자존심으로써 값으로는 정할 수 없는 최고의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도둑들이 회당 바닥에 튼튼한 놋으로 만든 상자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빼어 가기 위해 부순 후에 버리고 갔는데, 그 상자만을 가격으로 환산한다고 해도 수백만 불에 달하는 것이었는데 사마리아 5경의 가치는 Priceless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부에 호소하여 “아비샤”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그 많은 노력은 허사였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요르단으로 흘러들어 간 “아비샤”는 7백만 불에 매물로 나왔다는 정보가 흘러들어 왔습니다. 당시의 팔레스타인 정부 수반이었던 아라파트가 중재에 나서서 7백만 불에서 2백만 불로 조정이 되었지만 누구도 그 금액을 지불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만한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흥정에 끌려 다니다가 보면 또 다시 이러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997년에 백만 불까지 흥정되어 가격이 내려갔지만 지불되지 않자, 그 후로는 “아비샤”의 행방이 알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또 다른 나라로 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사마리아 오경(Samaritan Torah)은 사마리아인들이 경전으로 여기는 구약성서 오경을 말합니다. 사마리아인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사르곤 2세가 침입하여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이후, 이방인과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결합하면서 생긴 혼혈인으로, 자연스럽게 신앙이 변질되어 일종의 혼합교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들의 정경으로서 구약성서의 모세 오경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오경은 BC 108년에 하스모네 왕조의 히르카누스 왕이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성전을 파괴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기존의 오경과 신학적 차이를 반영하는 독자적 경전으로 발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오경은 약 1,900군데에서 마소라 사본보다 70인 역 성서와 유사한 면을 보여 주고 있어서 많은 학자들은 칠십인 역 성서와 사마리아 오경이 같은 히브리어 성서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사마리아 오경은 마소라 사본과 주로 철자 등에서 6천여 곳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복수형인 “엘로힘” 대신 단수형 “엘라”를 사용하거나 의인화한 표현들을 고쳐서 절대적 유일신론을 강조한 것이며,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 조상들의 권위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들의 인간적인 약점들이 언급된 구절들을 고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사마리아 오경에서는 하나님이 지정한 거룩한 장소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바로 세겜(Shechem)의 그리심 산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서의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된 십계명 끝부분에 그리심 산에 제단을 쌓고 그곳에서만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별도의 규정을 첨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안식일 (Sabbath)

유대인의 안식일은 정확하게 금요일(여섯 째날) 해가 지는 시각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지역과 계절에 따라 안식일의 그 시작하는 시각과 끝나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종교적인 유대인은 안식일 새벽이 되면 회당으로 나아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예배를 드립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의식은 각 가정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킵니다. 안식일 전날(금요일)저녁 해가 지기 전에 집안의 안주인(아내)가 안식일 초불을 켜면서부터 안식일의 의식이 시작됩니다. 안식일은 그 전날 저녁 해질녘부터 시작되어 2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그러므로 해가 지는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하면 본의 아니게 안식일을 어기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안식일 초를 미리 켜놓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안식일에는 불 켜는 행위가 철저하게 금지되기 때문에 만약 금요일 저녁 해가 지기 전에 초불(조명)을 켜 놓지 못하였다면, 깜깜한 밤이라고 할지라도 어둡게 지내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해지기 18분 전 또는 어두워지기 40분 전에 초(조명)를 켭니다.

때로는 화려하게 장식된 “하브달라 촛대”를 사용하여 안식일에는 2 개 이상의 초불을 밝혀 놓으며, 주로 안식일 만찬이 마련되어 있는 식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안식일 만찬은 “키두쉬(Kiddush Cup) 컵”에 포도주를 따르면서 시작이 됩니다. 안식일 포도주를 따를 때 사용되는 은으로 만든 “키두쉬 컵”은 잔을 받히는 접시와 Set를 이루는데 이 키두쉬 컵 셋트(Kiddush Cup set)는 가보로 전해내려 갈 정도로 소중하게 취급되는 귀중품입니다.

“하브달라”의 포도주 잔에는 포도주가 넘칠 때까지 붓게 되는데, 이와 같은 풍습은 앞으로 일주일 동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망을 담은 하나의 풍습입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으로는 포도주를 잔에 넘치게 쏟아 부으면 악령들이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관습은 포도주를 뇌물로 삼아 악령들을 매수하면 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하브달라” 포도주는 남자들만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속담이 있는데 그것은 “여자가 하브달라 포도주를 마시면 수염이 자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아담의 아내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온 인류가 타락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선악과는 포도나무였다고도 하는데 하와는 포도를 짜서 포도주를 만들었으나, 그녀의 죄 때문에 모든 여자들이 하브달라 포도주를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전통입니다.




카두쉬 컵에 담겨진 포도주를 마시면서 집안의 가장이 먼저 잔을 들면 가족들이 따라서 잔을 들면서 포도주에 대한 축복 문을 함께 낭독하면서 조금씩 마십니다.

같은 방법으로 할라 빵(Challah Bread)을 들고 축복 문을 낭독하면서 한 조각씩 떼어 먹습니다. 할라 빵을 덮어 놓는 천은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만들었으며, 빵을 자르는 칼의 자루에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하는 문구가 새겨있습니다.

안식일의 해가 지고 약 20분쯤 지났을 때 “하브달라(Havdalah) 의식”라는 행사를 갖습니다. 히브리어 “하브달라(Havdalah)”라는 말은 “분리” 또는 “구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전통적으로는 하늘에 별이 세 개 떴을 때 하는 구별의 행사를 말합니다. 이제 보통의 날들과 안식일을 구분하는 간단한 예식(길고 꼬불꼬불하게 꽈진 초에 타고 있는 초불 위에서 축복을 하고 향이 담겨있는 향료 상자에 냄새를 들여 마시는 의식)인 “하브달라(Havdalah) 의식”과 함께 안식일이 끝납니다.



“하브달라” 의식 행사에는 서로 다른 심지 두 개가 꼬인 초를 사용하여 초불을 밝히는데, 원래에는 두 개의 초에 불을 붙여서 높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낭송하는 기도문에 빛이라는 단어가 복수형으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빛들을 창조하신 자를 송축하나이다(…boray me’oray ha-aysh)”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초를 2 개 쓰는 대신 두 개의 초가 꼬여 있는 모양의 초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초는 푸른색과 흰색 초가 꼬여있는 것과 붉은색과 흰색이 꼬여있는 초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하브달라” 행사 때 향신료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전통적으로 집안 곳곳에 향신료를 내어 놓는 것은 식사 중에 생기게 되는 음식냄새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 동안에는 향료를 사용할 수 없었는데 안식일이 끝난 하브달라 행사에서는 다시 향신료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유대인들은 이를 아예 하브달라 행사에 포함시켜 버렸습니다.

즐거운 안식일이 끝나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이런 우울한 마음을 떨쳐 버리고 기운을 내어 다시 일주일 동안 승리하면서 살자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행사는 거룩한 안식일과 나머지 세속적인 6일을 구별하는 것으로서 포도주, 촛불, 향신료 위에 축복기도를 하는 순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4~5세기경에 산헤드린공회 회원들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안식일 행사입니다.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과 여러 절기에 촛불을 켜는 관습은 성서의 에스더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스더 8:16)에 보면, 하만의 계략을 물리친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영광(빛, light)과 즐거움(joy)”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이 명절뿐만 아니라 안식일과 결혼식 등 모든 즐거운 행사가 있을 때마다 촛불을 켜게 되는 관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탈무드 시대에는 전통적으로 집집마다 매일 저녁 촛불을 켜 놓았습니다. 한 집에 방이 보통 두 개씩 있었으나 초는 하나만 켜서 들고 다니면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부터는 초를 들고 다니는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방마다 초불을 켜 두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안식일 촛불은 두 개를 동시에 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안식일에 켜는 두 개의 초는 성경의 두 구절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나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는 명령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신 5:12)“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안식일 전날에 안식일 초불을 켜는 것은 여자들의 책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여자들의 책임에 대하여 탈무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자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만든 것은 여자이며, 이로 인해 세상의 빛이 어두워졌다.
이 여자는 뱀에게 속은 하와였지만, 그의 후손들은 촛불을 켜서 빛이 돌아오도록 할 책임이 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출 35:3) “안식일에는 누구의 집에서든 불을 피우지 마라.”는 말씀에 따라 절대로 안식일에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불(전깃불일지라도)을 켜지 않습니다. 심지어 캄캄한 밤이 되어 어두워도 조명을 켜기 위해서 전기 스위치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기 전에 미리 초불(또는 전깃불)을 켜놓습니다.

이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정통파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절대로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차의 시동을 거는 자체가 전기 스파크(spark)가 발생하는 일, 즉 불을 켜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어서 종파에 따라 “안식일의 휴식(Sabbath rest)”과 “안식일의 거룩함(Sabbath holiness)”을 다르게 해석하므로 일부 개혁파와 보수파 유대인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기 위해 차타는 것을
허락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유대인들은 친목을 위해 가족이나 친지를 방문하거나 병문안을 갈 경우에는 차를 타도되지만, 일하기 위해 차를 타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호텔에도 “안식일 엘리베이터”라는 것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때마다 층수를 알려주는 불이 켜지거나 올라가려고 하는 층수의 버튼을 누를 때 불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 층마다 자동으로 서도록 고안되어 있는 엘리베이터(승강기)를 말합니다.

냉장고를 열 때에도 냉장고 안의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 문을 열 때마다 자동으로 켜지도록 만들어 놓은 작은 전구조차도 안식일이 되기 전에 미리 뽑아놓아 냉장고를 열 때마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물론 안식일에는 요리를 할 수 없습니다. 안식일 전인 금요일에 미리 음식을 만들어 놓고 미리 켜놓은 은근한 불에 음식을 올려놓고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그 음식으로 식사를 합니다.


안식일 빵을 “할라(Challah Bread)”라고 부르는 안식일 빵이 있습니다. (레위기 24: 5)에는 성소의 떡 상에 진설병(히브리어 lechem ha-panim)을 올려놓는 내용이 나오는데,  “할라(challah)”라는 말은 여기에서 처음 등장하는 말입니다. 빵 열 두 덩어리(히브리어 challot)를 여섯 개씩 두 줄로 진설해 놓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것이 안식일과 명절에 “할라”를 먹게 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라(challah, Cake, Loaf)’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민수기 15: 20)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빵의 반죽 일부분을 떼어 제사장에게 양식으로 주라”고 명령하는 부분에서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따라서 반죽을 떼어내는 의식은 “할라 떼기(taking challah)”로 불립니다.

할라를 떼는 풍습은 제2 성전이 무너진 직후까지 존재해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무너진 후로는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일을 하지 않으므로 떼어낸 반죽을 처분할 방법이 없어서 불에 태워 버렸습니다.


안식일 식탁 위에는 2 개의 할라를 올려놓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광야에서 40년을 지낼 때 시작된 것으로써 먹을 음식이 부족할 때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켜서 하늘에서 이슬과 같은 만나를 땅에 내리셨으므로 백성들은 매일 하루치의 만나를 거두어 들임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만나를 거두는 것도 일종의 노동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섯째 날(안식일 전날)에 두 배의 만나를 내리셨고, 사람들도 안식일 전날에는 평소의 두 배의 만나를 거두었습니다(출 16:22). 이 말씀으로부터 “두 배의 할당량”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레헴 미쉬네(lechem mishneh)”라는 말이 생겼는데,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안식일과 명절 식탁에는 두 덩이의 할라 빵을 내놓게 된 것입니다.

할라(카알라) 빵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물 : 물 1 1/4 컵
이스트(효소) 1 1/2 티스푼
꿀 1/4 컵
기름(올리브기름) 2 티스푼
계란 2 개
소금 1 1/2 티스푼
밀가루 4 컵

만드는 방법 : 커다란 그릇에 이스트(효소), 더운 물, 기름과 꿀, 계란 1개와 소금을 넣고 밀가루 1 컵을 넣은 다음 반죽이 부드럽게 될 때까지 남은 밀가루를 조금씩 넣어가면서 반죽합니다.  반죽(dough)이 적당히 잘 되었을 때 젖은 천을 반죽 위에 덮고 이스트가 부풀어 오를 때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 놓아두고 기다립니다. 밀가루를 뿌려 놓은 판 위에 반죽을 올려놓고 약 5 분정도 더 반죽을 합니다. 반죽을 3 등분하여 1인치 반 정도 두께의 뱀처럼 길게 만듭니다. 그리고 3 개의 뱀처럼 생긴 반죽을 서로 엮어 가면서 땋습니다. 다시 젖은 천으로 덮은 다음에 약 1 시간 정도 기다립니다. 남아 있던 계란 1개를 깨어서 빵 반죽 위를 부드럽게 발라준 다음에 화씨 375도 정도의 불로 약 30 분정도 구워냅니다.


안식일 할라(challah)빵의 모양과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명절을 사랑한다는 애정의 표시로서 전 세계에 흩어져 오랜 세월을 사는 동안 직사각형, 타원형, 납작한 모양, 땋은 모양, 둥근 모양 등 여러 종류의 할라(challah)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속에 건포도를 채우거나 빵 위에 참깨 등의 씨앗을 뿌린 것도 있는데 빵 위에 뿌려진 씨앗은 이집트를 탈출 할 때 유대인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먹었던 만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할라 빵을 먹을 때에는 소금에 찍어서 먹었는데, 유대인들의 관습에 의하면 식탁은 제단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성전시대에 모든 제물에 소금을 뿌렸던 것처럼 할라 빵을 소금에 찍어 먹는 풍습은 바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던 구약시대의 제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안식일에 먹는 음식 중에 생선이 있는데, 안식일에 먹는 생선요리는 창조 이야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미드라쉬(Midrash, 주석서)”에 보면, 물고기는 다섯 번째 날에 창조되었고 사람은 여섯 번째 날에 창조되었으며 일곱 번째 날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사람이 물고기를 먹음으로써 질서를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도 다른 날들처럼 세 번 식사하는 것이 유대인의 전통입니다. 첫 번째 식사는 금요일 밤에, 두 번째는 안식일 아침 예배를 마치는 정오쯤에, 그리고 마지막 식사는 일반적으로 오후 예배의식을 마치고 먹는 식사입니다.


안식일에 마지막으로 먹는 식사는, “세우다 쉘리쉿(Se’uda Shelishit)”라고 불리는데 “세 번째 식사”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에 세 번 식사를 하는 풍습은 (출애굽기 16: 25)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경은 만나의 기적을 설명하는 내용에서 “오늘(ha-yom)”이라는 단어를 세 번 기록하였는데,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만나)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라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세우다 쉘리쉿”은 일반적으로 간단한 식사로 끝납니다. 할라 빵이라고 불리는 빵과 청어 또는 청어 샐러드, 간단한 케이크 몇 조각, 그리고 음료수 등입니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생명을 구하거나 건강을 보호하는 일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금지된 행동일지라도 생명을 구하는 일은 안식일에도 할 수 있습니다.

“샤보스 고이(Shabbos goy)”는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유대인 가정에서 안식일에는 할 수 없는 금지된 일들을 유대인 대신에 해주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안식일에 불을 켜거나 끄는 일 등을 “샤보스 고이”가 율법을 엄격하게 지켜야만 하는 유대인들을 대신하여 해주었는데 만약 그들이 이러한 일들을 해 주지 않는 다면 어려운 처지에 놓이기 되었으므로 유대인 공동체에서 “샤보스 고이”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속죄일 전날 오후 정통파 회당에 가면 현관 앞에 여러 개의 기부금 접시들을 놓아두었는데, 그 중에는 “샤브스 고이”를 돕기 위한 기부금 접시가 있는 경우가 종종 많이 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나와서 광야에 있을 때 흰 만나가 땅을 덮었으므로
이를 기념하여 안식일 식탁은 흰 천으로 덮는 풍습이 생겼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막 안에 두 줄로 진열되어 있던 진설병이 “순결한 상”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안식일에는 흰 식탁보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흰색은 순결을 상징합니다.


안식일 오후에 “민하(Mincha)” 예배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토라를 읽습니다. 안식일 오후 예배의식에서 공식적으로 토라를 처음 낭독한 사람은 학사 에스라였습니다. 그는 안식일뿐만 아니라 월요일과 목요일에도 공식적으로 토라를 낭독하였습니다.

에스라가 월요일과 목요일에 토라를 공식적으로 읽은 이유는 예루살렘 시장에 장보러 오는 사람들이 그동안 토라 낭독을 제대로 들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장보러 오는 유대인에게도 토라 낭독을 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러한 토라읽기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학사 에스라는 안식일 오후에 열리는 민하(Mincha)에서도 자연스럽게 토라를 낭독하게 되었으며,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무교절 : 애굽으로부터 급히 빠져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이 누룩없는 무교병을 먹으며 고생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이다(출23:15)(레23:6).

무교병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희생과 봉사를 의미한다(출12:16-20).

절기의 시작은 1월 15 - 21일까지 7일간 번제와 속죄제를 드린다(민28:19-24). 7일간 무교병을 먹고 2일간은 곡식단을 흔들고 매일 번제를 드렸다. 그리고 첫날 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금했다(출12:15-20).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도들을 위해 찢기심과 그의 부활에 대한 상징이며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생명과 부활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주는 것으로 나타낸다(엡1:21-22).

초실절 : 첫 곡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첫 곡식단을 봉헌하는 축제이다(레23:10)(출23:16).

이 절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에야 지켜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았으므로 수확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식일 다음 날에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로서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심을 나타낸다(롬8:23). 하나님께 바쳐진 첫 이삭단은 성도와 교회를 암시한다.

절기의 시작은 무교절 후에 곡식의 단을 거두어 흔들고 번제와 소제를 드리며 예물을 드리기 전에는 먹지 말아야 한다(레23:13-14). 이는 신약교회의 이방인의 추수를 상징한다.

오순절 : 초실절을 드린 후 7주(50일째) 되는 날의 절기이다. 구약의 맥추절 또는 칠칠절인 절기가 신약적 의미로 변화되어 완성된 것이 오순절이다. 곡물 수확의 마지막 날로 지정하였고 곡식의 첫 열매를 바치는 축제이다(출34:22)(레23:15)(신16:8).

절기의 시작은 안식일 다음날 초실절 후에 50일 째에 소제로서 떡을 흔들고 번제, 속죄제, 화목제와 요제를 드렸다. 이 날은 성회로 공포되고 노동을 못하게 하고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은총만을 사모할 수 있도록 하였다(레23:21).

신약에서는 성령강림절이라고 불리운다. 예루살렘 회심의 유형이며 갈보리 십자가의 첫 열매를 의미하며 마지막 때의 대추수를 상징한다.

나팔절 : 역사적으로 이 축제는 시나이 반도를 기념하며 나팔을 불어 성회에 모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제이다(레23:24)(민29:1).

절기의 시작은 유대교 일력으로 7월 1일 시행되었는데 이 날은 안식일이었고 그들은 성회로 모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렸다. 이스라엘의 재결합에 의미를 두고 있다. 7 이라는 숫자의 신성에 의한 인간력 새해 시작을 기념하는 날이다.

절차는 일반 월삭보다 더 큰 규모의 희생제사를 거행했다(민29:6). 나팔을 불어 알리고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드렸다. 이 절기의 나팔소리는 마지막 날에 공중강림과 휴거를 상징한다.

속죄일 : 이스라엘의 죄들이 사함받은 날로 그날은 금식하며 일년 중 가장 기쁜 날의 축제이다(레16:3)(레23:27)(민29:7).

절기의 시작은 유대인 일력의 7월 10일 안식일날로 성회에 모이고 노동을 금했다. 이 속죄일의 집행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레16:34). 이스라엘의 현재의 비애와 미래의 기쁨을 말하며 온 백성의 죄를 속죄하며 성소를 정결하게 하였다(히9:12-14).

절차는 모든 백성은 금식하고 쉬며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속죄를 위한 염소를 잡아 피를 뿌리고 아사셀 염소는 광야로 보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예표하며 마지막 때 남은 자들의 대속죄와 지상재림을 상징한다.

초막절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인도하고 보호하신 은혜를 기념하는 축제이다(출23:16)(레23:34)(민29:12)(신16:13).

절기의 시작은 7월 15 - 21까지 칠 일간 계속되었고 그 다음날은 안식일이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려나무나 감람나무 가지를 취하여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했다(레23:40). 토지 소산의 추수를 마칠 때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새벽에는 해맞이와 관련된 의식과 아침에는 현수의식 그리고 밤에는 축제의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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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 해리슨(Harrison)
기독교 선악과 교리의 기초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말씀.

- 레위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 생각, 기억나는 것들을 나눠봅시다.

Ⅰ. 장 절 ; 27장, 859절

Ⅱ. 히브리 이름 ; 바이크라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
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게 일러 가라사대.

Ⅲ. 레위기의 목표 ;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Ⅳ. 구성
1∼16장 - 성소를 중심한 제사 법전(거룩한 길, 하나님께 나가는 방법)

1∼7, 제사 규례
8∼10, 제사장 규례
11∼16, 결례 규례

17∼27장 - 공동체 생활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성결 법전(거룩한 삶,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법, 삶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17, 제사를 통한 거룩
18∼22, 가정, 사회를 통한 거룩
23∼25, 절기를 통한 거룩
26, 축복과 저주를 통한 거룩
27, 서원을 통한 거룩

Ⅴ. 거룩(카도쉬) - 구별하는 것

소극적 의미 ; 정결, 죄를 멀리하는 것
적극적 의미 ;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할 줄 아는 삶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레위기의 주제 ; 거룩(聖)


성(聖)과 속(俗) - 거룩과 비거룩(더러움, 추함)

성(聖) : 귀 이(耳), 입 구(口), 임금 왕(王), 북방 임(壬)

- 듣는 것을 왕처럼 말하는 것은 왕처럼 크게 하라(壬)


속(俗) : 사람 인(亻), 굴곡 곡(谷)
- 거룩과 비거룩(더러움, 추함)

거룩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

1. 신분의 거룩 ; 중생, 거듭남
2. 심판의 거룩 ; 마지막 날 그리스도와 함께
3. 일상의 거룩 ; 경험적 거룩,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새롭게 되는 것

Ⅵ. 모세 오경의 주제
* 토라(Torah) - 1. 가르치다, 2. 지시하다

오경

주제

중심구절

참조

창세기

선택

12:1∼2

 

출애굽기

구원

3:10
19:5∼6

 

레위기

성화

11:44∼45

베드로전서 1:15∼16

민수기

연단

21:8

 

신명기

경고

6:4∼5

 

창세기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출애굽기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레위기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참조 베드로전서 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민수기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Ⅶ. 다섯 가지 거룩

1. 거룩한 하나님(레위기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참조 하나님은 빛(요한일서 1:5) - 어둠은 죄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2. 거룩한 제사장직(레위기 21:4)
제사장은 그의 백성의 어른인즉 자신을 더럽혀 속되게 하지 말지니라. 

3. 거룩한 땅(레위기 18:27, 20:24)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내가 그 땅 곧 젖과 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하였노라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 거룩한 백성(레위기 10:9∼10)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례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5. 거룩한 구세주(히브리서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Ⅷ. 레위기의 목적(출애굽기 19:5∼6)
-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참조 / Ⅳ. 구성
1∼16장 - 성소를 중심한 제사 법전(거룩한 길, 하나님께 나가는 방법)

1∼7, 제사 규례
8∼10, 제사장 규례
11∼16, 결례 규례

17∼27장 - 공동체 생활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성결 법전(거룩한 삶,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법, 삶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

17, 제사를 통한 거룩
18∼22, 가정, 사회를 통한 거룩
23∼25, 절기를 통한 거룩
26, 축복과 저주를 통한 거룩
27, 서원을 통한 거룩

Ⅸ. 예물(禮物)

1. 레위기 1:2(7133) - 코르반
코르반이란 “제단 가까이 가져온 것” “제물” “희생 제물”

2. 출애굽기 25:2(8641) - 테루마
테루마란 “선물(올려바친 것)” “요제” “봉헌물” “바친”

Ⅹ. 안수(按手)


안수하다(레위기 1: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3027 야드(손)
5564 싸마크(단단히 세우다, 버티다, 세우다, 의지하다)
- 죄의 전가, 온전히 하나가 되다.


https://ktst.co.kr/forum/view/21297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7429 


Ⅺ. 5대 제사법

- 레위기는 제사와 거룩

레위기는 흔히 구약의 수면제라 부른다. 그 이유는 다양한 제사들과 복잡한 제사의 절차와 용어들 그리고 아무런 구체적인 의미와 교훈이 설명되지 않은 여러 가지 따분한 법들과 규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그로인해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레위기는 마치 넘기 어려운 높은 담이나 거대한 산과 같이 느껴진다.

레위기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다섯 살 즈음 자녀에게 가르치기 시작하는 오경(토라)의 첫 번째 책이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가 아닌 레위기로 자녀의 성경 교육을 시작했다는 것은 레위기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실제로 레위기는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 그리고 예배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 구체적으로 교육하는 교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기는 오래도록 교회로부터 홀대를 받아왔고 혹은 잘못된 풍유적 해석으로 설교되고 교육되어 왔다. 레위기는 이제 재평가되고 본래의 위상을 되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레위기는 그야말로 복음의 진수를 담고 있으며 설교의 보물창고이자 마르지 않는 신학적 샘물이다. 특히 신약을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위기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국내에 좋은 레위기 주석들이 있지만 레위기 전공자인 필자는 마침 지난 5월 말에 “레위기의 신학과 해석” 라는 책을 출간했다(새물결플러스).


레위기가 기록된 정황과 목적


레위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바이크라(wayyiqra)’로 뜻은 “그가 부르셨다”이다. 이것은 레위기의 첫 번째 단어인데, 히브리어 성경의 각 책들은 첫 번째 단어를 제목으로 삼는다. 그래서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셔서 레위기 말씀을 주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레 1:1). 여기서 “회막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레위기 앞의 책인 출애굽기는 성막(회막) 완성에 대한 보고와 더불어 마무리 된다(출 40:33~38). 이때 성막에는 여호와의 구름 기둥이 강림하고 성막 전체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찬다. 하나님의 구름은 그 전에는 시내산 꼭대기에 내려와 있었다. 이것은 시내산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 예배의 장소, 곧 성전이었음을 말해준다. 시내산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암시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시내산에 백성들이 모일 때, 삼중으로 배치된다(출 24장). 산 정상 가까이(모세), 산중턱(백성의 대표), 산기슭(백성들). 이것은 성막의 삼중 배치와 동일하다. 지성소(대제사장), 내성소(제사장), 마당(백성들). 그 시내산 성전 위에 임한 구름이 이제 회막으로 이동해 왔다. 쉽게 말해 성막이 완성된 후, 여호와께서는 그곳을 자신의 거처로 삼고자 이동해 오신 것이다. 그래서 레위기에서 신탁의 장소가 바뀌었다. 이제 시내산 정상이 아닌 “회막에서”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선포될 레위기의 율법이 주어진다.


요컨대, 출애굽기에서 성막이 완성되었다(출 25~40장). 그리고 논리적으로 이제 성막의 운용에 대한 문제와 성막을 중심한 생활 규칙이 주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것은 성막에서의 제사 규범과 진영 (그리고 땅)에서의 생활 규범이다. 그 내용들을 담은 책이 바로 레위기다. 시내산 아래에서 예배와 삶에 대한 규범을 전수받은 후, 백성들은 이제 인구 조사와 더불어 진영을 재정비한 뒤 민수기 10장 11절에서 비로소 시내산을 떠난다. 민수기는 그 후의 광야에서의 기록이다.


앞서 말한대로 레위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봐이크라’인데, 영어 제목 ‘Leviticus’와 이를 따른 우리 말 성경 ‘레위기’는 이 책의 내용에 걸 맞는 제목이 아니다. 헬라어 구약성경(70인경)이 이 책의 제목으로 레위띠꼰(leuitikon Leuitikon)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레위기에는 레위인과 관련된 내용이 거의 나오지 않으므로(레 25:32~34) 다소 엉뚱한 제목이다.


레위기는 제사장들을 위한 지침들로 가득 차 있으며 사실은 제사장들보다는 평민을 위해 쓰인 책이다. 이 책은 곳곳에서 모든 법들이 제사장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숙지해야할 중대한 법들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상세한 제의적 절차와 거룩한 삶의 기준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레위기 법의 준수를 통해 세상 민족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구현해야할 사명을 안고 선택되고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제사법 및 율법을 공부해야 하는가?


예수님 이후 신약 시대에 제사는 폐지되어 더 이상 드리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으로 모든 희생 제사가 단번에 영원히 성취되었기 때문이다(히 9:11~12).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그렇다면, 왜 우리는 레위기, 특히 제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레위기의 제사법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의미의 핵심이 담겨 있고, 또한 예배의 본질이 담겨 있다. 구약의 율법은 형식과 틀 속에 본질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 형식과 틀 자체도 어떤 중요한 신학적 영적 메시지를 전해준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 완전하게 하려 함이다”고 말씀하셨다(마 5:17). 혹자는 이것을 오해하여 구약 율법이 폐지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예수님의 이 말은 율법의 형식(껍데기)은 폐기되고 율법의 본질(알맹이)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율법의 완성적 폐지라 할 수 있다. 율법의 형식인 제사와 제의, 음식법, 정결법, 제사장 제도, 성전 제도, 이 모든 것들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제사의 본질인 ‘헌신과 예배,’ 음식법의 본질인 ‘거룩한 구별’ 정결법의 본질인 ‘도덕적 순결’ 제사장과 성전의 본질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요컨대, 신약과 구약의 관계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다. 형식과 껍데기는 철폐되었기에 신약과 불연속적이고, 그 정신과 본질은 신약에서 완성되어 이어지므로 연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율법의 완성적 폐지, 즉 형식의 폐기와 본질의 성취는 구약 율법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


정돈해야 할 제사 용어들


레위기 독서를 어렵게 하는 것은 많은 전문적인 용어들과 더불어 여러 가지 제사와 의식들, 그리고 법들에 대한 복잡한 설명이다. 특히 제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사 용어들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제사의 종류 : 5대 제사


레위기는 먼저 1~7장에서 다섯 가지 제사를 규정한다. 이것을 소위 ‘오대 제사’라 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번제 : 전체를 태워 모두 바치는 수직적 헌신의 제사다.

소제 : 유일한 곡식의 제사로 주로 감사의 제사다.

화목제 : 기본적으로 감사와 찬양, 수평적 나눔을 위한 제사다.

속죄제 : 도덕적 죄와 신체적 부정결을 해결하기 위한 제사다.

속건제 : 재산상의 피해를 준 죄를 위한 배상의 제사다.


제사법을 다루는 레위기 1~7장은 내용과 주제에 의해 대략 1~5장과 6~7장으로 양분된다. 전자는 각각의 다섯 가지 제사의 절차와 방법에 대한 규정이고, 후자는 그 다섯 가지 제사의 추가 규정들로 각 제물들을 태운 뒤의 후속조치, 곧, 재와 잔존물의 처리, 그리고 남은 고기의 분배 및 먹는 방법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2. 제사의 방식


한편, 제사의 방식이나 제물을 바치는 동작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들이 나타난다. 거제, 요제, 그리고 전제(관제)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제사 종류가 아닌 제사 방식에 대한 용어들이다. 거제와 요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거제 : 히브리어로 테루마(teruma)

이것은 흔히 들어 올리는 제사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단순히 여호와를 위해 “성전에 바쳐진 제물”(contribution)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 25장에서 백성들이 “자원하여 가져온 것”의 히브리어가 ‘테루마’다(출 25:2). 엄밀히 이것은 제사 드리는 방식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글에서 기존 용어 ‘거제’를 그대로 사용한다.


요제 : 히브리어 테누파(tenupa)
흔히 이것은 흔들어 바치는 제사의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동사 ‘누프’는 “흔들다”는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이것은 단순히 제단 앞에서 제물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말할 수 있다.

예컨대, 제사장들을 위임할 때 일단 그들의 손에 많은 제물들을 들어 올린 동작을 한 뒤, 그것들을 제단에 바친다(레 8장). 이때 그 제물의 막대한 양을 고려해 볼 때 손에 쌓은 뒤 흔들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단순히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여러 학자들이 오히려 이것을 ‘거제’(heave offering)로 번역하는데 우리는 혼동을 피하고자 전통적 번역 그대로 ‘요제’(wave offering)를 따른다.


전제(관제) : 히브리어로 네세크(neseq)
이것은 ‘붓는 제사’로서 주로 포도주나 독주(아마 맥주), 혹은 기름을 제단에 붓는다(창 35:14; 출 29:40; 레 23:13; 민 28:7 “독주의 전제”). 전제는 구약에서 60여 차례 나타나지만, 어떤 방식으로 제단에 부었는지는 구약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3. 기타 제사 용어


예물(고르반) : 짐승의 제물들은 모두 ‘예물’로 불린다(레 1:2).
‘예물’의 히브리어는 코르반(qorban)으로 ‘가져온 것, 바친 것’이라는 의미이다. 제단에 올리는 희생 제물들 외에도(레 1-7장) 제단에 올리지는 않으나 성전에 바치는 모든 예물(레 27장)은 고르반이라 부른다.


화제 : 히브리어로 이쉐(isshe)
흔히 불로 태우는 제사로 이해된다(레 1:9; 2:2). 이 단어가 ‘불’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에쉬(esh)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은 불과 상관없는 제사 용어로서 ‘봉헌물, 음식 예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어원으로 따지면 이쉐의 어원은 ‘불’이 아닌 ‘선물, 공물’을 의미하는 우가릿어나 ‘소유물’을 의미하는 아랍어 일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문맥에서 “화제”가 어울리지 않은 사례들이 많다. 특히 태우지 않는 제물도 이쉐(isshe)라 칭하는데(레 2:10, 6:17) 예를 들어 결코 태우지 않는 진설병 상에 놓은 떡도 이쉐라 칭한다(레 24:6~7, 9). 심지어 붓는 술의 전제도 이쉐로 칭한다(민 15:10). 따라서 이쉐는 ‘화제’라기 보다는 ‘음식 봉헌물’(food offering) 혹은 ‘헌물’(gift offering)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통적 견해를 따라 그대로 ‘화제’를 사용할 것이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레위기 5대 제사

레위기에 나오는 5대 제사가 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나하고 친하려면 이렇게 하라” 또 “나는 이런것을 싫어하니 하지마라” 라고 하나님 쪽에서 프로포즈해 온 것이 레위기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해지려면 자기 힘으로 하면 안 된다.

결혼예비학교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사랑의 5가지 언어”라는 책이 있다. 심플한 책인데 수백만 이혼가정을 살렸다. 그 내용은 결혼할 배우자가 무엇을 제일 좋아하는지를 다섯 가지를 찾으라는 것이다. 배우자의 일 순위를 상대가 맞추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선물을 좋아한다고 선물을 싫어하는 배우자에게 선물을 자꾸 사다주면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것은 문제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마찬가지이다. 예배는 절대 우리식으로 하면 안 된다. 시대가 음악을 좋아하니 예배를 음악중심으로 간다는 것은 착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도의 방법이지 예배의 방법은 아니다. 문화를 따라가는 것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가는 것이고, 사람을 얻었으면 다시 하나님께 가야 한다. 문화는 연구하는데 하나님을 연구하지 않으니 문제가 생긴다. 교회에 사람들이 오는데 안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가야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다섯 가지 제사의 순서를 보면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이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제사는 번제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접근 할 때는 속건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배의 정신이 여기 5대 제사 안에 다 들어가 있다.


5대 제사와 3대 절기

- 5대 제사 ;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 3대 절기 ;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 제사 방법 ; 화제, 전제, 요제, 거제

1. 율법시대의 특징

 

율법시대에는 동물의 피로 죄를 속죄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짐승의 제사를 통해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는 짐승이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사람들의 죄가 용서되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제물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매일 희생 제사를 드려야 하는 그들의 제사는 일상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드리는 제사의 종류에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 안식일 제사, 속죄일, 초하루 월삭과 하나님께 반드시 드려야 하는 3대절기와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까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3대 절기로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이 있으며, 5대 제사로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로 나눌 수 있으며, 제사방법으로는 화제, 전제, 요제, 거제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제사의 규례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복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구분한 제사법으로 단순히 행하는 의식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서 그 의미를 부여하시고, 제사법뿐만 아니라, 제물까지도 직접 정해주시는 데로 행하여야 하는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2. 5대 제사

 

번제(燔祭, 올라)(레위기 1:1∼17)
- 구을 번(燔), 사를 번(燔), 제사 제(祭)
- 번제(the burnt offering), 전번제(whole burnt offering)

* 번제의 규례(레위기 6:8∼13)

번제(燔祭)는 우리말로 ‘태우는 제사’를 뜻하며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에서도 마찬가지로 ‘the burnt offering’이다. 그러나 번제의 히브리어 ‘올라(ola)’는 단순히 ‘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올라가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알라(ala)’에서 기원한 명사다. 번제(燔祭)의 이름 ‘올라’는 우연하게도 우리 말 ‘올라가다’와 발음이 일치한다. 이런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번제(燔祭)의 짐승의 모든 부위가 제단 위에 ‘올려 바쳐져’ 불에 타면서 짐승 전체가 연기되어 향기로 하나님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를 태워 드린다는 의미를 반영하여 어떤 영어 성경들은 ‘전번제(whole burnt offering)로 번역하기도 한다.


번제(燔祭)를 드리기 위해 양과 염소, 또는 소의 가죽은 벗겨지고 몸 안의 오물들이 제거됐다. 또 가죽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태웠다. 번제(燔祭)는 이처럼 누구나 드릴 수 있었지만 드리는 자의 전적인 헌신을 필요로 했다.

다른 제사와는 다르게 희생제물 전부를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자원하여 자신을 드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뜻으로 완전한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가 생명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번제(燔祭)에는 아침과 저녁으로 매일 드리는 상번제(常燔祭)와 절기제사마다 드리는 번제(燔祭)는 단 위에서 불로 제사하므로 제단 위 불은 항상 꺼지지 않아야 되었습니다. 이 제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구별하여 세우시고 온전한 번제로 주의 단 위에 드리는 직무를 수행하게 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온전한 헌신을 드리는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세우신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장자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다 거룩히 구별하시고 그들은 다 내 것이라 구분하신 초 태생이며 첫 열매를 뜻합니다(민수기 3장 12∼13절). 제사제물은 생축의 초 태생의 수컷입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급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상번제(常燔祭)는 무흠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다는 의미의 소제와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하는 전제와 함께 드려야 하였습니다.

요아킴은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하여 자신의 가축 중에 양 한 마리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평소 상품의 물건으로 찜해 둔 녀석을 골라 몸 상태를 잘 살핀 후 아무런 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성소로 가져갔다. 성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크고 작은 짐승을 바치려고 올라와 있었고 제사장들은 제사를 집행하느라 분주했다. 제단은 피로 흥건히 얼룩져 있었고, 제단 주변에는 짐승의 흘린 피 자국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잠시 기다리다 자신의 순서가 되자 요아킴은 양을 끌고 자신의 번제를 담당할 제사장 앞에 섰다. 제사장은 양의 몸을 다시 면밀히 검사하여 흠이 있는지 살폈다. 합격 판정이 내려지자 요아킴의 번제 바치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제사장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손을 양의 머리에 얹고서 이 번제를 통해 비천한 자신을 받아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왜 이 번제를 바치는지 말씀드렸다. 그는 시편의 감사시를 낭송하여 부르면서 하나님께 찬송을 올린 뒤 도살용 칼로 그 짐승의 고통이 최대한 빨리 끝나도록 목의 급소를 찔러 짐승을 도살했다. 요아킴과 제사장은 번제의 절차를 따라 신중히 그 제물을 마지막 순서까지 무사히 잘 드렸고 정성을 다해 바친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다는 약속을 기억했다. 요아킴은 기쁨으로 충만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은혜가 집안에도 가득히 들어차 있음이 느껴졌다. 요아킴은 매일 자신이 받은 축복을 감사하며 지냈고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에는 번제를 드린 순간의 결심과 감격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인내했다.


명칭에서 살펴 본 번제의 의미


요아킴이 드린 제물은 번제였다. 이때 그 제물은 전체를 모두 제단 위에 올려서 태웠다. 번제는 우리말로 ‘태우는 제사’를 뜻하며 대부분의 영어 성경들에서도 마찬가지로 ‘the burnt offering’이다. 그러나 번제의 히브리어 ‘올라(ola)’는 단순히 ‘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올라가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알라(ala)’에서 기원한 명사다. 번제의 이름 ‘올라’는 우연하게도 우리 말 ‘올라가다’와 발음이 일치한다. 이런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번제의 짐승의 모든 부위가 제단 위에 ‘올려 바쳐져’ 불에 타면서 짐승 전체가 연기되어 향기로 하나님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를 태워 드린다는 의미를 반영하여 어떤 영어 성경들은 ‘전번제’(whole burnt offering)로 번역하기도 한다.


번제를 드리기 위해 양과 염소, 또는 소의 가죽은 벗겨지고 몸 안의 오물들이 제거됐다. 또 가죽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태웠다. 번제는 이처럼 누구나 드릴 수 있었지만 드리는 자의 전적인 헌신을 필요로 했다.

번제의 특징


희생 짐승은 마당의 제단 근처에서 잡는데, 작은 가축인 양과 염소의 경우 “제단 북편”으로 도살 장소가 정확히 명시된다(레 1:11).

그가 제단 북쪽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것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그러나 대형 가축인 소의 경우 위치가 정해지지 않는데, 아마 그 이유는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소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하고 다 태운다. 가죽은 제사장의 수고비로 돌아간다(레 7:8).

사람을 위하여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 곧 그 제사장은 그 드린 번제물의 가죽을 자기가 가질 것이며. 

가죽을 벗기는 행위는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속사람의 온전한 헌신을 상징한다.
둘째는 가죽의 특성상 잘 타지 않고 다른 부위도 덩달아 잘 타지 않게 되며 또한 향기로운 냄새가 아닌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가죽을 벗겼을 것이다.


가죽을 벗겨내고 짐승으로부터 더러운 똥과 오물들을 다 깨끗하게 제거한 뒤 모든 부위를 다 드렸다(레 1: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몸통, 머리, 정강이, 창자. 번제는 다른 제사들과 달리 인간의 몫이 없이 모두 하나님께 태워져 바쳐진 이유로 랍비들은 번제가 다른 희생 제사들보다 우월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적어도 감사의 목적으로 바친 목축하는 사람의 짐승의 번제와 농사꾼의 곡식의 소제 사이에 우열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번제가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감사와 헌신의 제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드리는 때


오대 제사 중 처음 세 가지, 번제와 소제, 그리고 화목제는 자발적인 제사로 ‘감사’가 그 기본적 동기라 할 수 있다. 물론 각 제사의 용도는 그 외에도 다양했다. 예를 들어 소제의 제물은 감사의 예물로만 바치지 않고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한 속죄제로 바쳐질 수 있었다. 번제 또한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었고 중대한 일을 앞두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자 바치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번제의 취지는 “감사와 봉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번제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때에 성전에 올라가 번제를 드릴 수 있었다.


성경에는 노아가 홍수 후에 감사의 번제를 드릴 때 처음 등장한다(창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는 그 번제의 향기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의 악한 본성으로 인해 물로 땅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다(창 8:21, 9:1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이처럼 번제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완화하고 태도를 바꾸시게 하는 기능이 있었다. 어린 양을 바친 아벨의 제사 역시 번제의 속성을 가졌다(창 4:2~4).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영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성경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담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주신 제사법이 후손에게 전수된 것이 번제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번제에 드린 짐승의 가죽이 제사장에게 돌아간 것은 에덴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가죽옷을 입혔던 것을 연상시킨다(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것은 분명 신학적 암시를 담은 구절이다. 에덴이 일종의 성전이었다고 가정하면 아담은 그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담이 최초로 번제 드리는 법을 전수받은 인물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성경에서 번제는 대부분 공적인 행사에서 기본 제사로 드려진다. 의외로 지극히 사적인 번제는 구약성경에서 드물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면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을 표시하기 위해 아낌없이 모두 드릴 때(삼상 6:13~14),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완전한 헌신을 다짐할 때(창 22:2; 삿 11:3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고난 중에 하나님께 탄원하며 의지하고자 할 때(삿 21:2~4, 미 6:6)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때로는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화목제와 더불어(레 22:21) 번제를 함께 올리기도 했다(레 22:18).

만일 누구든지 서원한 것을 갚으려 하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거류하는 자가 서원제물이나 자원제물로 번제와 더불어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그러나 번제를 의무적으로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

크게 다음 세 가지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상번제 : 상번제란 항상 드리는 번제를 의미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제사장이 일년 생 숫양을 드리곤 했는데(민 28:3~4)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침에는 처소에서, 저녁에는 각자의 일터에서 마음으로나마 번제에 동참했을 것이다.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안식일과 절기 : 상번제 외에 안식일에는 소제와 전제와 더불어 일년 생 숫양 두 마리를 함께 드렸다(민 28:9).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 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절기마다 번제에 요구되는 짐승과 그 숫자가 달랐다(민 28~29장 외).

기타 : 경우에 따라 속죄제를 드릴 때 번제가 요구되기도 했다. 일례로 레위기 12장에서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부정해졌는데 이때 그녀는 일정 기간의 자연 정화 과정을 거친 뒤 성전에서 속죄제와 더불어 번제를 바쳐야 했다. 그 외에도 다시 정결한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흔히 속죄제와 번제를 함께 드렸으며(레 14:13, 15:15),

그 어린 숫양은 거룩한 장소 곧 속죄제와 번제물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며 속건제물은 속죄제물과 마찬가지로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이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제사장은 그 한 마리는 속죄제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드려 그의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서 속죄할지니라.  

나실인 서약을 할 때도 속죄제 및 화목제와 더불어 번제가 요구되었다(민 6장). 출산한 여인의 경우 속죄제는 부정결한 산혈로 인한 제단의 오염을 씻어내기 위해 바쳐지나 번제에는 자녀를 얻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부정한 자를 깨끗케 하는 속죄제에 번제가 동반되는 것도 다시 정결해진 것을 감사하기 위해서일 수 있다.


기능과 목적 


번제의 일차적 목적은 감사로 드리는 헌신과 봉헌이다.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면 그분이 기쁘게 받으신다는 진술이 그 증거다(레 1:2~3). 즉 번제는 여호와께 전적인 기쁨이 되는 제사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신 하나님의 요구는 곧 아브라함의 완전한 섬김과 헌신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창 22:2). 자주 번제는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께 바쳤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때 화목제가 동반될 수 있는데 번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드리고 화목제는 사람들을 초청해 그 고기를 먹으며 감사와 기쁨을 나누었다(출 18:9~10).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급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급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급 사람의 손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제물에는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어야 한다. 정성스러운 번제를 바치면 하나님께서 ‘그를 기쁘게 받으신다’고 말한다. 미드라쉬 레위기 주석에서 랍비들은 희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께 올리는 희생 제물은 부서진 마음이다. 오 하나님, 부서지고 회개한 마음을 멸시하지 마소서.”

번제에 의한 속죄는 전적인 헌신의 표시에 뒤따른 부수적 효과라 할 수 있다(레 1:4).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발생한다. 이미 죄를 위한 속죄제와 속건제라는 제사가 별도로 존재하는데 그렇다면 번제는 이런 제사들과 어떤 기능적 차이가 있는가? 속죄제와 속건제는 쌍둥이 제사로서 구체적인 죄의 문제를 다룬다. 그렇다면 번제를 드린 목적은 인간의 기본적 죄성(sinfulness) 즉 원죄의 속죄를 위해서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에 모든 죄를 영원히 속죄하시기 전까지는 원죄 역시 거듭해서 속죄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레위기에서 속죄제 속건제가 신설되기 전에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번제를 드렸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욥 1:5). 즉 번제는 본래 구체적인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기도 했으나 속죄제 속건제가 생긴 이후로는 원죄를 속죄하는 제한적 기능만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참조. Milgrom 1991, 175~176).


물론 레위기에서 제사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잘못을 저지른 뒤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번제를 드리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다윗이 자신의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야욕에서 인구조사를 벌이자 그 결과가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여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다. 다윗이 황급히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자 하나님의 진노가 가라앉고, 재앙이 멎었다(삼하 24:25; 대상 21:26). 자기 의를 드러내는 교만은 인간의 원죄의 근원적 뿌리다. 따라서 번제는 원래 하나님께 기쁨의 표시로 바쳐지곤 했지만 때로는 자신의 죄된 본성을 용서받고 욥처럼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죄를 사함받기 위해 드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번제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봉헌물이자 감사의 표시로서 전적인 헌신과 아낌없는 드림을 보여주는 제사였다.

 

번제의 종류와 비둘기 번제가 주는 의미


번제의 짐승은 다음과 같이 등급이 나뉘었다. 본문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새나 곡식을 바치는 것을 허용했다는 사실에서(레 5:7, 11) 신분과 경제력에 따라 각기 다른 등급의 제물이 권장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제물의 크기나 종류와 상관없이 번제의 효력은 동일했다는 사실이다. 9절과 13절, 그리고 17절 끝에서 소와 염소(양), 그리고 비둘기의 번제 각각의 효과에 대한 최종적 진술이 나타난다.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와 비둘기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차이가 나지만, 여호와는 모든 제물을 동등하게 평가하셨다. 겉모양과 크기를 보는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중심과 태도를 보시기 때문이다. 신약에는 두 렙돈 밖에 바치지 못하는 과부의 헌금에도 동일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대목이 있다(막 12장, 눅 21장). 번제의 정신은 차별 없는 제사에 있다. 누구에게나 여호와 앞에 나와 예배할 자격이 있다. 따라서 교회 안에 신분이나 빈부, 인종, 지역에 따른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나. 소제(素祭)(민하)

짐승의 피가 아닌 곡식과 고운 가루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드리는 제사로 소제라는 원어의 뜻은 선물 혹은 제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자원제로서 번제 또는 화목제와 함께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제사장이 고운 기름 한 줌과 모든 유향을 취하여 제단에서 화제로 드려지는 소제는 고운 가루처럼 죄가 없으신 순결한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시고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가운데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 화목제나 번제를 드릴 때 함께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소제는 그 제물에 누룩을 넣을 수 없으며,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합니다(레위기 2장 11∼13).


- 누룩의 의미 : 빵을 빨리 부풀게 하는 누룩은 죄의 상징입니다.

- 소금의 의미 : 죄를 방지하는 방부제로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언약의 상징인 소금을 소제의 예물에 치게 하신 것은 예언하신 말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키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곡식으로 드리는 감사의 제사’였다


극빈층 위한 ‘속죄 제물’로 허용, 기름과 향 추가하지 않은 밀가루 바쳐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요아킴은 양 500마리를 키우는 목축업자 였다. 약간의 논밭에서 농사도 겸하여 지으며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산적 떼들이 쳐들어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양 500마리를 모두 훔쳐갔고 요아킴의 가족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요아킴은 너무나도 큰 상실감 속에 매일 눈물이 났지만 결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기쁘게 바칠 양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예배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이 비탄한 형편을 돌아보아주시도록 하나님께 울부짖고 싶었던 요아킴, 또한 그분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하나님께 번제물 대신 소제의 예물을 대신 바치기로 했다.


그는 곱게 빻은 밀가루를 준비하여 기름을 발라 먹음직한 빵을 구운 뒤 깨끗하게 잘 싸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갔다. 제사장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미 그의 소식을 들었던 제사장은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로 위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해주었다. 제사장은 그를 위한 소제의 제사를 시작했다. 먼저 요아킴이 소제의 떡을 손에 든 채 하나님께 간절하고도 애절한 기도를 마치자, 제사장은 그 떡을 손바닥으로 한 움큼 뜬 다음 제단에 태워 하나님께 바쳤다. 제사장과 요아킴은 연기로 타오르며 올라가는 그 제물을 보면서 함께 시편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제사를 마친 뒤 남은 떡은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를 따라 제사장의 수고비로 주었다. 요아킴은 기쁨과 감격 속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비록 나는 파산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나를 도우신다. 언젠가 다시 양을 바치고 나아가 소를 바칠 수 있는 때가 올 거야.’ 매일 그의 삶은 감사로 넘쳤다.

 

소제의 특징


파산한 요아킴이 바친 밀가루의 제물은 ‘소제물’이었다. ‘소제’의 제사는 히브리어로 ‘민하’(minha)라 칭했다. 이 단어는 원래 ‘선물’ 혹은 ‘공물’을 칭하는 단어였지만(예, 야곱이 형 에서에게 바친 선물이 민하다), 제의 법안에서는 ‘곡식의 제사’를 칭하는 전문 용어로 쓰인다. 최초의 소제의 장면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나타나는데(창 4:3), 이때 가인은 농사꾼이었기 때문에 곡식의 제사를 바쳤고 그것이 바로 소제다.


소제의 기본 재료는 곱게 빻은 밀가루다. 간혹 몇몇 사례에서는 보리 가루가 요구되었으나 밀가루가 기본 재료라 할 수 있다. 이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일부러 곱게 빻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음식 재료로 집에 보관하는 밀가루를 가지고 정성스럽게 소제물을 준비한다. 따라서 소제물을 빻아서 드리듯 우리도 하나님께 가루처럼 연단되어 곱게 빻아져야 한다며 빻은 가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것은 풍유적 해석의 하나일 뿐이다. 단순히 집에서 기르던 가축 중 좋은 것을 골라 짐승의 제사를 바치듯, 집에서 먹던 밀가루에서 좋은 부분을 골라서 곡식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5대 제사 중에 소제는 유일하게 피 없이 드리는 제사, 즉 곡식을 비롯한 농산물로 바치는 제물이었다. 이것은 번제 및 화목제와 더불어 ‘곡식으로 드리는 감사의 제사’라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소제물의 요소를 살피면, 빻은 고운 밀가루를 주재료로 하고 기름과 유향 등을 가미했다(레 2:2). 제사에 쓰인 기름은 아마도 올리브유(감람나무 기름)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것은 제물의 품격을 높일 뿐 아니라 밀가루가 잘 타도록 하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밀가루 위에는 향기로운 냄새를 내기 위해 고가의 유향을 놓았다. 이것은 생밀가루의 소제였는데, 그 외 요아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자는 밀가루로 만든 몇 가지 요리를 소제로 바치기도 했으며(레 2:4~7), 특히 추수기에는 첫 수확한 밀과 보리, 그리고 다른 여러 농산물을 성전에 소제로 바쳤다(레 2:12~16; 레 23장).


소제의 여러 가지 특징을 볼 때 이 제사는 주로 농사꾼과 짐승을 키우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제사였음이 분명하다. 가인의 사례에서 보듯이 농사꾼이 소제를 바칠 때는 가난해서라기보다 그의 소산물을 감사의 제물로 바쳤기에 가난한 자들의 소제물과는 의미가 달랐다 할 수 있다. 기본의 소제물은 앞서 말한 대로 밀가루 1/10에바를 사용하는데(레 5:11 6:13), 약 2.2리터 정도의 양, 다시 말해 콜라 1.5리터짜리 한병 반 정도의 양이다. 거기에 기름을 위에 붓고 하얀 분말로 제조된 유향을 놓았다. 이때 기름과 유향의 양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기름을 밀가루 위에 놓으면 아래로 스며들고 타는 성분의 유향은 밀가루 위에 놓인다. 바로 그 윗부분을 제사장이 손바닥으로 한 움큼 떠서 제단에 올라가 태운다. 이때 기름이 스며있기에 밀가루가 잘 타고 유향이 놓여있기에 하나님께 매우 향긋한 냄새로 올라간다. 그리하여 태워진 소제는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레 2:9). 제단에 태우고 남은 부분은 수고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고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성물’로서 제사장이 성소의 거룩한 뜰에서 그것을 음식으로 먹는다(레 6:14~18).


전통적으로 랍비들은 소제가 극빈자를 위한 번제의 대체물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웬함(Wenham)은 번제는 가죽을 제외하고 제물로 바쳐진 짐승을 전부 태우는 반면, 소제는 고운 가루 한 움큼만 제단에서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근거로 이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위한 속죄제에는 밀가루가 허용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소제는 가난한 자에게 있어 번제 대용이었다는 견해에 더 무게가 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밀가루로 바쳤던 기본의 소제물은 가난한 자들이 바치기에는 버거운 제물이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왜냐하면 감람(올리브) 기름은 당시 대중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유향은 매우 비쌌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유향을 넣지 않는 음식 소제물을 바쳤을 것으로 보인다. 레위기 8장의 제사장 위임식 장면에서 보듯이 요리된 소제물이 반드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쳐진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분명 비둘기를 바칠만한 형편이 되지 못한 사람이 밀가루를 제물로 바쳤다(레 5:11). 그러나 생밀가루의 소제보다 음식 소제물이 더 쌌다고 볼 수 있는데, 유향을 넣을 필요가 없는데다 밀가루를 요리하면 양이 꽤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가난해도 집에 세 가지 주방 기구 중 적어도 하나쯤은 갖추고 있었을 테니 극빈자들도 요리된 소제를 바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치는 때


소제는 다양한 목적과 용도로 바쳤다. 먼저 소제는 다양한 목적을 지닌 독자적인 제사로 드릴 수 있었다(레 2:1; 레 6:14~18; 레 6:19~23레 2:12, 14; 23:10, 16; 민 5:11~31)가 있었다. 그러나 소제는 따로 드려지기보다는 다른 동물 제사에 수반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매일의 번제에 소제를 함께 바쳤고, 안식일에 추가되는 정례적 번제(양 두 마리)도 항상 소제와 함께 드렸다(민 28:3~10). 떡과 고기를 함께 필요로 하는 화목제나(레 7:12, 13) 정결 의식과 같은 특별한 목적의 희생 제사에 부수적 제물로(레 14:20), 또한 여러 동물의 희생 제사 및 전제를 드릴 때 풍성한 축제의 제물로 소제가 함께 드려진다(민 15:2~5; 28:19~20, 27~29).


한편 앞서 말했듯이 추수를 감사하기 위해(레 2:12, 14) 칠칠절(오순절)에는 백성들이 ‘새로운 소제,’ 즉 새로 추수한 첫 수확물을 소제로 바쳤다(레 23:16). 레위기 2장 12절의 ‘처음 익은 것’과 14절의 ‘첫 이삭의 소제’는 구별되어야 한다. ‘처음 익은 것’의 문자적 의미는 ‘첫 번째 것의 예물’(히. 코르반 레쉬트)이다. 즉 그것은 ‘첫 수확물의 예물’로서 처음 추수한 밀을 가리킨다. 반면 레위기 23:10~11에 비추어볼 때 ‘첫 이삭의 소제’(히. 민하트 비쿠림)는 보리의 첫 이삭을 말한다. 제사장은 아직 덜 익은 보리의 첫 이삭을 볶은 뒤 기름과 유향을 첨가하여 제단 위에 올린다. 그러나 처음 거둔 밀은 제단 위에 오르는 대신 성소에 봉헌된 성물이되며 그것은 제사장들의 음식으로 사용된다. 참고로 팔레스타인 지역은 보리를 추수한 지 약 두 달이 지나 밀을 수확한다(참고. 룻 2:23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그 지역의 주식은 밀이므로 밀이 나오기 전까지 임시적으로 보리를 먹는 것이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극빈층을 위한 ‘속죄 제물’로 소제가 허용되었다는 것이다(레 5:11~12). 이때 속죄제에 바치는 밀가루에는 기름과 향을 추가하지 않았다. 그가 비싼 유향을 조달하기에는 턱없이 가난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소제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드리는 제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은 자신의 재량으로 곡식에 피의 효력을 부여하셔서 극빈자들의 속죄를 위한 방편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누구에게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 고대 중동 지역의 화덕의 일종으로 반죽을 안쪽 표면에 붙여 빵을 구웠다.


소제의 종류와 유의사항


소제물은 크게 생밀가루의 소제물과 요리를 한 음식 소제물로 나뉜다. 그 어떤 경우에도 누룩을 써서는 안 됐다. 소제물의 종류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 소제물

고운 밀가루+기름+향

요리한 소제물

화덕에 구운 것

기름을 섞은 것

기름을 바른 것

철판에 부친 것

냄비에 요리한 것


화덕과 냄비와 철판은 모두 고대 이스라엘의 가정에서 사용한 요리 기구들이다. 생밀가루 소제물이든 음식 소제물이든 제사장은 한 움큼을 떠서 제단에 올려 태운다. 나머지 부분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 때 그 태워지는 한 움큼을 ‘기념물’(히. 아즈카라)이라 부른다. 히브리어 ‘아즈카라’는 동사 자카르(zaqar ‘기억하다’)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아마도 그 태워지는 부분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소제에서 가장 중요한 주의할 점이 있다. 제단 위에 바치는 소제물의 경우 어떤 경우라도 누룩과 꿀을 소제물에 첨가해서는 안 된다(레 2:11). 누룩(히. 하메츠)은 재료를 발효시키는 효모를 말한다. 그런데 꿀을 뜻하는 히브리어 데바쉬(debash)는 벌꿀이나 과일 시럽 둘 다를 가리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꿀이 이방 제의에서 사용되어서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방의 제단에 바쳐진 밀가루, 향, 기름과 소금도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채취되는 벌꿀은 농산물이 아니므로 자동적으로 제단에서 배제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과일 꿀의 사용을 금지했다고 보는 편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이런 점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목축(젖)과 과일 농사(꿀)가 매우 잘되는 땅이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누룩이 금지되는 이유는 변질과 부패라는 부정적 변화를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마 16:6; 눅 12:1; 고전 5:6; 갈 5:9). 벌꿀과 달리 과일 꿀도 과일을 갈아서 만든 것이라 쉽게 변질되며 그래서 금지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변질의 상징성은 이어지는 ‘소금을 반드시 넣으라’는 상반된 명령에서 유추할 수 있다. 소금은 누룩과 정반대로 반부패와 불변성을 상징한다. 소금이 지닌 강력한 방부제로서 변질이 안 되는 특징으로 인해 고대 중동에서 소금은 동맹, 친목, 약속, 충성의 맹세에 사용되었다. 바벨론에서는 부족 간 동맹을 맺기 위해 양자가 소금을 먹었으며, 페르시아 왕실에서는 신하들이 왕 앞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며 소금을 먹었다(참조. 스 4:14). 유목민인 베두인 사이에서는 상호 동맹과 보호의 표시로 소금을 먹는 관행이 있었는데, ‘우리 사이에 소금이 있다’는 그들의 격언에 단단히 결속된 그들의 우정이 드러난다. 이것이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배경일 수 있다(막 9:50). 특별히 소금이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으로 묘사된다(레 2:13). ‘언약의 소금’은 분명히 ‘소금 언약’(민 18:19; 대하 13:5)과 관련되어 있는 의미있는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레위기 2장 13절에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라고 명시된 것으로 보아 소제물 뿐 아니라 모든 짐승의 제물에도 소금을 쳤을 것이다(겔 43:24). 그렇다면 제단에 제물을 올릴 때마다 언약의 소금을 치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언약, 곧 그들과 하나님의 변치 않는 결속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변치 않는 ‘소금 언약’이며 제물에 들어가는 소금은 그 언약을 상기시키는 ‘언약의 소금’이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화목제(和睦祭, 제바흐 쉐라임, 셀렘)
fellowship Offering(레 7:13)
peace Offering(레 7:37, KJV)
freewill Offering(레 7:16) 자원제
* 신명기 12:17, 낙헌 예물
- 평화로운 관계를 얻고자 하는 희생 제물

죄로 인하여 단절된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를 화목케 하기 위한 제사로서 예수님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어주시는 제사입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며 콩팥과 기름과 간 꺼풀을 번제 단 위에서 불사르는 제사로서 하나님께 반드시 열납되도록 명령하신 제사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온전한 화목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그림자로, 모형을 보이시는 내용입니다. (레위기 19장 5∼8절에 화목의 제사법 설명이 있음)

화목제로 드린 제물의 나머지는 제사장과 제물을 드린 사람,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라는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나머지 제물을 삼일 만에 먹지 못하고 남을 경우 모두 불사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제사 제물로는 생축의 초태생인 수컷과 암컷을 드립니다.


화목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배려하는 산비둘기, 집비둘기의 새끼는 제물을 받지 않는 평등의무 제사였습니다. 즉 성막을 지을 때에는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에게 똑 같은 속전을 거두시게 하신 것처럼, 평등하게 부담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먼 여행길서 돌아와 사람들과 기쁨을 나눈 수평적 제사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 유지하며 공동체의 친목과 화해 강화했다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요아킴은 먼 여행길을 떠났다. 사해에서 캔 소금 덩어리를 다메섹에 가서 팔면 가족들 일년 생계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영세했던 요아킴 일행의 여행 장비는 빈약했으며 낙타와 노새는 노쇠했다. 300km가 넘는 여행길은 어려웠다. 큰 강을 만나 떠내려갈 뻔 했고, 뜨거운 광야 길을 건널 때는 길을 잘못든 바람에 물이 고갈되어 쓰러질 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를 불과 하룻 길 앞둔 어느 날, 일행은 산적떼를 만났다. 모든 것을 빼앗길 찰나였다. 그 때 어디선가 갑자기 십수명의 군인들이 나타나 극적으로 그들을 물리쳐주었다. 그들은 임무를 마치고 마침 다메섹으로 복귀하고 있던 참이라 했다. 참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하늘의 천군천사들이었다. 힘든 여행길을 마치고 요아킴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소금도 좋은 값으로 팔아 당분간 넉넉히 살 수 있게 되었다.


요아킴은 하나님께 바칠 번제의 양과 화목제 소를 각각 한 마리 씩 고른 후 당장에 성전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여행길에서 함께 해주신 하나님, 여러 차례 위기의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바치고 친족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기쁨의 잔치를 베풀고 싶었기 때문이다. 번제를 감사의 제물로 먼저 바친 후, 요아킴은 화목제를 또한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제사 규례를 따라 번제의 양은 남김없이 모두 태워져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로 올라갔다. 이어서 화목제의 수소는 내장의 기름 덩어리와 두 콩팥, 그리고 간엽을 도려내 바친 후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는 수고하신 제사장님 몫으로 드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몸통을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요아킴은 마을 사람 모두를 불러 그 화목제 짐승으로 불고기 파티를 열었다. 그 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친구 시므온도 초대를 받고선 기꺼이 기쁨으로 달려와 주었다. 즐겁게 고기를 삶고 구워 먹으며 요아킴은 여행길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셨는지 간증을 들려주었다. 감사가 풍성히 넘쳤다. 간증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또한 최근에 있었던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여 나누었다. 잔치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찬양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시편의 찬양을 노래했다. 그 순간 요아킴과 시므온을 비롯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화목하고 하나가 되었다.


화목제의 특징


위험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요아킴이 바친 제사는 번제와 화목제였다. 번제는 여러 목적으로 바쳤지만, 가장 대표적인 자원의 제사로서 감사의 제물로 바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흔하게 화목제가 수반되었다. 번제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제물이었다면, 화목제는 하나님께 일부 바치고 나머지 대부분은 사람이 함께 나누기 위한 제물이었다. 따라서 번제가 수직적인 제사였다면 또 하나의 감사의 제물이었던 화목제는 주로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기 위한 수평적인 제사였다고 볼 수 있다.


레위기 3장에서 규정된 화목제의 히브리어는 쉘라밈(shelamim)이다. 이 단어는 분명 ‘샬롬’에서 기원한 것이다. 샬롬은 평화와 친교, 다시 말해 관계가 좋은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화목제는 영어 성경에서 ‘평화의 제사’(peace offering)나 ‘친교의 제사’(fellowship offering)로 번역한다. 흔히 알고 있는 대로 화목제는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미 ‘화목한 관계’를 감사하며 기뻐하기 위해 바친다. 하나님과 관계가 틀어졌을 경우 관계를 복원하여 ‘화목’하고 화해하기 위한 제사는 속죄제와 속건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죄가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감사의 번제나 화목제는 하나님과 이미 화목한 관계 속에서 교제를 지속하고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바치는 제사다. 화목제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잔치를 베풀어 사람들과 고기를 나누는 것에 목적이 있었기에 소, 양, 염소를 암수 구분 없이 화목제로 바칠 수 있었다. 비둘기는 제외되었는데 고기를 나누기에 너무 빈약했기 때문이다. 양과 염소는 아마 가족과 친족들만 초대해서 나누었던 반면, 소를 잡을 때는 마을 잔치가 벌어졌을 것이다. 어느 것을 바칠 지는 자신의 형편과 감사의 정도에 따라 제사자 본인이 결정할 수 있었다. 화목제의 가장 큰 특징은 짐승의 일부만 하나님께 바치고 나머지는 전부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는 점이다. 이때 하나님께 바치는 부위는 내장 부위의 기름 덩어리(suet), 두 콩팥, 그리고 간엽(liver lobe)이었다. 흔히 히브리어 요테레트 카베드(yoteret kabed)를 간꺼플로 번역하는데 그런 얇은 막이 제물에 적합했을리 없다. 랍비들은 그것을 ‘간의 손가락’, 다시 말해 간의 어느 한 토막으로 번역한다. 그것은 간 중에서 ‘미상엽’이라는 부위로 알려진다. 콩팥과 간엽을 바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그 기관들이 인간의 감정이 집약되는 기관, 즉 감정의 좌소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특히 간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간점술을 금지하기 위해 제단에 바치라고 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콩팥은 단순히 기름 덩어리에 묻혀 있기 때문에 기름과 한 덩어리로 취급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화목제에서 태워지는 이 부위들을 단순히 ‘기름’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레 6:12; 왕상 8:64; 대하 7:7; 사 1:11). 그리고 짙은 빨간 색의 간에 대해서는 고대인들에게는 그 기관이 피를 만드는 기관으로 간주되어 ‘피는 곧 생명’이며 하나님께 돌려야하기 때문에 간이 요구되었다는 설명이 가장 그럴 듯 하다.



▲ 고대 팔레스타인 양의 거대한 꼬리와 꼬리를 위한 수레

양의 경우는 특별히 미골에서 벤 기름진 꼬리를 잘라 바치라는 규정이 더해졌다(레 3:9). 꼬리가 두툼하고 묵직한 것이 팔레스타인 양의 특징이다. 최근에는 그런 양을 보기 힘들지만,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어떤 양은 꼬리가 너무 거대한 나머지 바퀴가 달린 수레를 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기름진 꼬리는 미골을 절단하여 제단에 바쳤다(레 3:9). 그러나 염소 꼬리나 소 꼬리는 기름이 아닌 고기 덩어리이므로 제단에 바치지 않았다(레 3:3-4, 14-15).


이렇게 기름과 일부 내장을 제하고 남은 고기(아마 남은 내장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는 제사장 몫으로 일부를 떼어낸 뒤 제사자가 가져가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제사장의 몫은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 나머지는 모두 제사자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왜 짐승의 기름을 여호와께 바쳤을까? 이에 대해서는 기름이 가장 맛있는 부위였다거나 콜레스테롤 덩어리라 인체에 해로워 제물로 바쳤다는 설이 있다. 기름에 잘 타는 부위인 만큼 제물의 소각을 도왔을 것이라는 실용적 이유를 내세우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밀그롬이 말한 대로 내장에 엉긴 지방 덩어리는 고기 위에 붙은 비계와 달리 먹을 수 없는 부위다. 또한 콜레스테롤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관점은 현대 의학의 발달과 함께 등장했으며, 과하게 섭취하지 않는 이상 콜레스테롤은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다. 또한 해로운 것을 바치라했다는 견해는 ‘기름은 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언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기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신 데는 다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제물이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데 있어서 기름이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기름이 부와 풍요의 상징이자 힘의 근원으로 간주되었기에 풍요와 힘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하나님께 되돌려드리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화목제를 드리는 때


번제와 마찬가지로 화목제 역시 자발적인 제사였기에 개인은 원하면 언제든 화목제 짐승을 바칠 수 있었다. 화목제는 월삭이나(민 10:10) 오순절 같은 일부의 절기에 공적 제의로 바쳐지는 경우를 제외하면(레 23:19) 매우 사적인 성격이 강한 제사였다. 민수기 29장 39절에 따르면 절기마다 바친 화목제는 절기법으로 규정되어 있기보다는 잔치를 위한 자발적 제사였음을 알 수 있다(참조. 대하 7:7). 또한 특별한 행사나 국가적 행사에서도 화목제를 풍성하게 드렸다(민 7장; 삿 20:26; 삼상 11:15; 대하 7:7; 30:22; 31:2). 화목제는 레위기 이전에도 이미 하나님께서 전수해주셔서 바쳐지던 제사였다(예, 출 18:12). <표>



a. 감사제/찬양제: 요아킴의 사례에서 보듯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거나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왔을 때, 질병에서 회복되었을 때처럼 특별한 축복으로 인해 드리는 화목제였다. 감사의 화목제를 드릴 때 당일에 고기를 먹었다는 점으로(레 7:15) 미루어보면 감사의 기쁨이 충만했을 때 모든 고기를 즉시 먹는 것이 바람직했다.


b. 서원제: 하나님께 서원한 내용을 이행할 때 드리는 제사다. 한나가 아들 사무엘이 젖을 뗀 뒤 성전에 데리고 올라가 서원을 실행하며 수소 세 마리(혹은 삼년생 수소 한 마리)를 서원제로 바친 것(삼상 1:24)이 그 예다. 서원의 화목제 때는 이튿날까지 고기를 먹고, 종종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화목제와 더불어 번제를 함께 바쳤던 것으로 보인다(레 22:18).


c. 자원제/낙헌제: 특별한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기쁨으로 자원해서 드리는 화목제였다. 이때도 이튿날까지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이 경우 순전히 자발성에 의해 바치는 제사였던 이유로 짐승의 발이 더하거나 덜한(아마도 짧거나 긴) 약간의 흠이 있는 짐승도 바칠 수 있었다.


화목제의 고기는 지정된 기한 이후로는 거룩성을 상실하여 더러운 고기(히. 피굴)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일정 기간 후에 제의적으로 부패한 고기나 부정한 것과 접촉한 고기를 먹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케 하는 심각한 죄였기에 그런 고기는 진 밖에서 불살라 없애야 마땅했다. 또한 부정한 사람들이 속죄제의 고기를 먹으면 끊어지는(cutting off) 형벌을 받았다(레 7:18~20). 이는 아마 공동체에서 제명된다는 의미일 텐데, 고대 사회에서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는 것은 죽음과도 같았다.


화목제의 의의


화목제는 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가 아니었다. 화목제는 번제와 같이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기뻐하는 감사의 제사라 할 수 있다. 화목제는 기쁨을 이웃과의 교제 속에서 나누는 일종의 잔치의 제사다(레 7:11~21). 요아킴의 사례에서 보듯이 큰 일을 겪은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이때 다른 사람과 반목 관계에 놓인 것이 매우 사소해 보일 수 있다. 이때 화목제를 바치면서 공동체의 친목이 강화되고 불편한 관계에 놓인 사람들도 특별한 축제로 인해 화해의 관계로 복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화목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만드는 부수적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예배에서 번제적 요소, 즉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경배만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수직적 교제(번제) 못지않게 사람 간의 수평적 교제(화목제)도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제사의 정신은 예배를 통해 실현되어야 마땅하다. 예배 시간은 짧지만 최대한 성도 간의 축하, 감사, 위로 및 합심의 기도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예배가 풍성한 교제와 나눔의 자리가 되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다. 부족한 화목제의 요소는 예배 후 식사와 교제, 구역 예배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채울 수 있다. 더불어 신자들은 자신의 물질을 화목제의 정신을 따라 이웃과 넉넉히 나눌 수 있어야할 것이다. 비단 물질만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데 우리의 시간과 힘, 또한 지식을 사용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에 앞서 성도들끼리의 나눔과 화해를 크게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이에 따르면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함과 동시에 성도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현하는 중요한 예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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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라. 속죄제(贖罪罪=사이르)



부지 중에 지은 죄를 사함받기 위해 드려지는 속죄제는 의무제사입니다. 이 제사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시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속죄제의 제물에 대해 차등을 둔 제사입니다. 즉 제물과 예물에 각자의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여 화목제와는 다르게 적용했습니다.

- 제사장 자신과 회중의 죄는 수송아지, 족장은 숫염소, 평민은 암염소나 어린 암양, 가난한 자는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 극빈자는 고운가루 3분의 1을 드리게 하였습니다.

- 방법으로는 제물을 드리는 자가 속죄제의 제물에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그 동물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전가 받은 제물이 처참하게 죽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시는 제사인 것입니다.

- 레위기의 4장과 5장에서는 제사장이신 아론이 속죄제의 제물인 두 염소를 가져다가 제비를 뽑아서 한 마리는 죽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한 염소는 살려서 아사셀위하여 두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 위에 안수하여 유대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에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무인지경인 광야로 보내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아사셀 염소는 속죄의 제물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즉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다시 죽을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14장 1-9절에서는 문둥병자를 위해 두 마리 새 중 한 마리는 제물로 쓰고, 다른 한 마리는 죽은 새의 피를 발라 들에 날려 보내면 문둥병자가 깨끗하다는 선언을 받게 됨)

- 속죄제는 제물의 피를 처리하는 방법도 작은 비둘기라도 반드시 피를 흘리도록 하여 제사장이 이 피를 취해서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에 피를 묻혀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리게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피가 없이는 우리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심코 지은 비고의적 죄 ‘피뿌리기’ 방식으로 속죄하다


죄의 공개적 인정과 자백이 중요 … 최종적 효과는 ‘죄사함’ 이었다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요아킴은 최근 태어나 가장 정신없는 한달을 보냈다. 딸의 결혼식을 성대히 치른 뒤 며칠 못가 지병을 않으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겨우 장례식을 마친 뒤 한숨 쉬려는가 했더니 최근 사업을 함께 시작한 동업자 녀석이 모든 물건을 빼돌려 도망을 가고 말았다. 요아킴은 쉴 겨를이 없었다. 그 녀석이 두로 항으로 도망간 뒤 배에 오르면 끝장이었다. 서둘러 추적을 떠난 요아킴은 이틀을 노숙한 뒤 삼일 째에도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촉했다. 요아킴은 반나절이 지나 어느 마을에 도착한 뒤에 그 날이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련의 큰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 바람에 안식일 날짜를 망각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한 것이다. 가슴이 덜컹거리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요아킴은 그 자리에서 무릎 꾾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의 죄가 해결될 수는 없었고 속죄제를 바쳐야만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아킴은 그 범죄자가 배에 승선하기 직전 체포할 수 있었다. 재산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온 요아킴은 안식일을 무심코 범했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즉시 성전으로 올라가야 했다. 더불어 그에게는 추가로 드려야할 제물이 있었다. 바로 잃었던 재산을 되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번제와 화목제였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제사는 속죄제였다. 죄를 용서받지 않고 드리는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리 없기 때문이다.


무심코 지은 죄를 위해 바친 속죄제


요아킴이 안식일을 무심코 범한 뒤 바친 제사는 ‘속죄제’였다. 속죄제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사였다. 첫째, ‘비고의적인 죄’를 해결하고(레 4~5장) 둘째, ‘부정결’의 문제를 해결했다(레 11~15장). 예컨대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산후 정결례를 거쳐 깨끗케 되는데, 일정 기간 날짜가 지난 뒤 목욕을 해야 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자녀 출산에 대한 감사의 번제와 더불어 ‘속죄제’를 바쳐야만 했다(더 자세한 것은 나중에 레 12장을 다룰 때 설명할 것이다). 덧붙여 유출병 걸린 여자가 피가 멈춘 뒤, 또는 악성 피부병(나병이라는 번역은 잘못이다) 환자가 치료된 뒤 반드시 바쳐야하는 것도 속죄제다. 사람이 부정을 탔을 때 그것은 죄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속죄제가 요구된 이유는 무엇인가? 분명 그것은 그런 다양한 부정결들은 창세기 3장에서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 발생된 죄의 증상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부정결의 문제도 근원을 따지면 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속죄제가 요구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우선 속죄제는 속건제와 더불어 ‘죄’를 해결하는 제사였다. 속건제가 해결하는 죄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 죄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속죄제가 다루는 죄와 차이가 난다. 속건제에서는 상대방의 금전적/물질적 손해를 배상하고 하나님께 속건제 숫양을 바쳐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속죄제는 도덕적 계율을 어긴 죄인데, 다만 그 죄는 ‘비고의적인 죄’ 다시 말해 ‘그릇’ ‘무심코’ 여호와께서 금지하신 계명을 범한 죄다. 한글 성경에서는 단순히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라고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는 정확히 ‘여호와께서 금지하신 계명 중 하나라도’이다. 고의적인 죄의 경우는 일부 고의성이 가벼운 경우를 제외하고(레 5:1~4) 매우 심각하여 속죄제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반역죄로서 하나님께서 직접 징벌하셔서 처단하시거나(예, 레 10장의 잘못된 제사를 드린 나답과 아비후) 하나님의 지시로 백성들이 처형을 했다(예, 레 24장의 하나님을 저주한 이스라엘 평민). 다만 어떤 반역죄의 경우 심판이 유보되어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도 했다.


어쨌든 금지 명령은 매우 중대한 계명이다. 따라서 무심코 위반했다 하더라도 상당히 심각하다. 요아킴의 경우 안식일에 여행이 절대 금지되어 있으나 그는 무심코 이 금지 명령을 위반했다. 속죄제를 바쳐 죄가 속죄되어 하나님께 용서받아야만 했다. 요아킴은 평민이었기 때문에 바쳐야하는 속죄제 짐승은 암염소나 암양이었다.


속죄제는 짐승의 피로 성전과 그 기물들의 오염을 씻어내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의 죄와 부정결이 성전과 그 기물들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속죄제는 죄와 부정결의 문제를 위해 바치는 것이 원칙이나, 그 외에도 제사장 임직이나 레위인의 임직, 또는 나실인의 서원과 같은 몇 가지 특별한 예식에 속죄제를 드렸으며, 국가적 절기마다 다양한 속죄제를 바치곤 했다. 그 기능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의견이 나뉘는데 그중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아마도 절기별로 제단과 성전의 잠재적 부정결을 닦아내는 기능을 했을 것이란 견해다.


속죄제와 속건제, 특히 속죄제는 그 제사의 특징과 의미, 제사의 절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지면을 필요로 하는데, 여기서는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야하는 아쉬움이 있다. 상세한 설명과 목회적 적용과 여러 힌트, 특히 속죄제의 자세한 교회론적 의미에 대해서는 필자의 책 <레위기의 신학과 해석>(새물결 플러스)의 도움을 받기 바란다.

 

신분에 따라 등급화된 속죄제


속죄제는 죄인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달랐다. <표>는 높은 지위로부터 낮은 지위에 이르기까지 제물의 크기와 가치가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4장에서 먼저 (대)제사장의 비고의적인 죄에 대해 수소를 바칠 것을 명령한다. 많은 학자들이 3절의 ‘기름부음받은 제사장’을 대제사장으로 해석하지만, 만일 그렇게 될 경우 제사장이 목록에서 누락되므로 이것은 분명 대제사장을 포함한 제사장들로 보아야 한다. (대)제사장과 회중은 동급이었다. 따라서 둘 다 수소가 요구된다. 이때 회중은 제사장이 포함된 회중을 의미한다. 만일 제사장과 회중이 분리되어 취급되는 경우, 제사장이 제외된 회중의 제물은 흔하게 숫염소였다(레 9장; 16장). 족장은 평민의 지도자로서 숫염소를 속죄제로 바쳤고, 평민은 암염소나 암양을 바쳤다. 여기서 수컷이 암컷보다 제의적 가치 면에서 우위에 놓여 있음이 다시 확인된다(시장 가치로는 암컷이 월등히 비쌌다). 한편, 제사장과 평민 사이에는 레위인이 있어야 하는데 레위기 4~5장의 목록에서 빠져있다. 아마 레위인은 제사장과 평민 사이의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족장과 동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양과 염소를 조달하기 어려운 가난한 계층을 위해서는 비둘기 두 마리가 속죄제로 바쳐졌다. 이때 한 마리는 번제와 같이 모두 제단에 태웠고, 다른 한 마리는 피를 제단에 흘린 뒤 제사장이 섭취하는 방식으로 두 비둘기가 처리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계층 중에는 심지어 비둘기마저 힘에 겨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극빈자들이 무심코 죄를 범했을 경우에도 죄 문제를 그대로 넘길 수는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수단을 그들에게 허락하셨다. 바로 그들이 평소 음식으로 먹는 밀가루 1/10에바(약 2.2리터)를 소제의 속죄 제물로 가져오라 명하신 것이다(레 5:11~13).


경제적 형편과 무관하게 죄의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든 반드시 해결되어야 했다. 비록 밀가루는 피가 없는 속죄 제물이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재량으로 극도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밀가루 제물에 피의 효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주셨다. 마지막 한 사람을 위해서까지 속죄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매우 특이한 속죄제의 피뿌리기


속죄제의 피 의례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대)제사장과 회중을 위한 속죄제 수소는 안수 후 도살을 한 뒤 그 피를 양푼에 받아 내성소로 가지고 들어간다. 거기서 양푼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은 뒤 지성소 휘장 앞의 향단 주변에 ‘뿌리고’ 향단의 네 뿔에 ‘발랐다’(레 4:6~7, 17~18). 그러나 평민을 위한 속죄 제물인 염소와 양의 피는 마당에 놓인 번제단의 네 뿔에 ‘바른다’(레 4:25, 30). 비둘기의 경우에 피를 양푼에 받지 않고 죽인 뒤 몸채 들고 마당의 번제단 벽에 일부를 뿌리고 남은 피는 제단 아래 흘렸다(레 5:9).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제사장과 회중을 위한 속죄제 수소의 피는 내성소에 들어가 향단에 처리한 반면, 평민의 속죄제 짐승(염소와 양, 비둘기)의 피는 마당의 번제단에서 처리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신분에 따른 죄의 오염력과 영향력이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제사장과 회중의 죄의 ‘독기’는 내성소까지 침범해 향단을 더럽힌 반면, 평민의 죄는 마당의 번제단을 더럽히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한 이유로 피를 뿌리는 위치가 달랐다.


<표>에서 확인해 볼 수 있듯이 피를 어디에 뿌렸느냐에 따라 속죄제 고기 처분 방식도 달라졌다. 내성소에서 피를 뿌린 짐승의 경우 결코 그 고기를 제사장이 먹지 못하고 진영 밖의 재를 버리는 ‘정결한 곳’에서 소각을 해서 없앤다. 반면에 마당의 번제단에서 피가 처리된 속죄제 짐승의 고기는 제사장들에게 일종의 수고비로 건네져 그것을 먹어서 없앴다. 이것은 분명히 속죄제 고기의 오염도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 내성소에 피를 뿌린 속죄제 짐승의 경우 피를 통해 흡수된 오염이 강해 먹을 수 없어 밖에 반출해 태웠던 반면, 마당에 피를 뿌린 속죄제 짐승의 경우 그 오염이 경미해 제사장이 먹을만 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집례한 제사장들이 먹도록 조치하시고 밖에 버려 태우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속죄제는 ‘태우는 속죄제’와 ‘먹는 속죄제’로 나뉜다.


속죄제의 피 뿌리는 특유의 동작은 아래의 비교를 통해 분명해진다. 우선 속죄제 외의 다른 모든 제사들, 즉, 번제/속건제/화목제에서는 피를 뿌리는 방식이 공통적으로 ‘끼얹다’(zaraq ‘dash, throw’)이다. 피를 양푼에 받은 뒤 제단 사면 벽에 뿌려서 처리한다. 그러나 속죄제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피를 양푼에 담은 뒤 다음 세 가지 동작을 통해 피를 처리한다.


a. ‘뿌리다’(히자-hizza ‘sprinkle’): 손가락으로 제단 주변에

b. ‘바르다’(나탄-natan ‘daub, put’): 손가락으로 제단의 네 뿔에

c. ‘쏟다’(샤파크/야차크-shapak/yatsak ‘pour’): 제단 밑에


속죄제에서는 피가 든 양푼을 들고 제단 벽에 끼얹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양푼에 담아 피를 찍은 뒤 소량의 피를 제단 주변에 뿌리거나 제단 뿔에 바르는 동작으로 피를 처분한다. 피가 대량으로 남는데, 이 남은 피는 제단 밑에 쏟는다. 여기서 손가락으로 피를 뿌리고 바르는 동작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가져오는 효과는 제단의 정화이기 때문이다(레 8:16; 16:19). 즉, 속죄제의 피를 특이한 동작으로 뿌리고 바를 때 제단과 성전이 청소된다. 이것이 속죄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죄의 자백이 요구됨


레위기 5장 1~6절은 약간의 고의성이 있는 죄들을 위해 바치는 속죄제 규정이다. 네 가지 사례가 주어지는데 이것은 모두 고의성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그 죄의 공개적인 인정과 자백이 요구된다. 이런 죄의 인정과 자백은 속죄제 절차에서 매우 중요했다. 그것 없이는 속죄제는 아무런 효력이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혹자는 이 경우는 고의성이 있기 때문에 더 죄질이 나빠 ‘자백’이 요구되었지만, 4장의 죄들은 ‘비고의적’인 죄들이 때문에 죄질이 가벼워 자백이 요구되진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4장에는 ‘자백’의 요구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4장은 ‘금지명령’이기 때문에 요아킴의 사례에서 보듯이 무심코 그 죄를 지었다하더라도 심각했다. 따라서 자백은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수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4장에서는 자백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속죄제의 최종적 효과는 ‘속죄’와 그로 인한 ‘죄사함’이었다(레 4:20, 26,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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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속건제(=아샴)

성물과 이웃에게 해를 가한 것을 용서받기 위해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흠이 없는 숫양으로 드려 하나님의 성물을 범한 죄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범죄를 저질렀거나 실수를 하여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자는 제물과 함께 그 이웃에게 20%에 준한 배상을 하게 한 제사입니다. 이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담고 있는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힘써야 되지만 동시에 이웃과의 관계에서 항상 화합하는 노력을 요구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사보다는 먼저 형제와의 화목을 이루라고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 23-24절의 의미는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온전한 헌신의 제사를 받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물을 취한 범죄자, 훔친 것 배상하고 숫양을 바치라


재산상 피해를 발생시킨 죄 해결 위한 제사 … 죄인의 자수 유도했다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요아킴은 가족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에 올라갈 일이 있었다. 그는 친구 제이콥에게 중요한 물건들을 몇 가지 맡긴 뒤 집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맡긴 물건은 약 100세겔 정도의 귀중품이었다. 제이콥은 염려하지 말고 다녀오라면서 귀중품들을 자신의 집에 따로 보관했고 요아킴의 집을 자물쇠로 잠군 뒤 다른 사람들이 침입하는지 계속 확인했다. 당시 제이콥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요아킴의 귀중품들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한달 후 요아킴의 가족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요아킴은 제이콥에게 맡겼던 물건을 돌려 달라 부탁했다. 감사의 표시로 사례는 넉넉히 할 참이었다. 그런데 제이콥은 자신은 그런 귀중품들을 맡은 적이 없고 집만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시치미를 뗐다. 평소 절친했던 이웃에게 배신을 당한 요아킴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법정으로 이 문제를 가져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분명한 물증이 없기에 그 사기꾼에게 재산을 찾을 방법이 그리 마땅치는 않았다.


일주일이 지난 뒤 제이콥의 아내는 물건을 되돌려주라고 남편을 설득했다. 제이콥은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요아킴을 찾아가 자신의 파렴치한 범행을 인정하고 죄를 자백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자수와 죄의 자백 후 물건을 돌려주는 것으로 그칠 문제가 아니었다. 남의 재산을 가로챘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의 남용한 잘못된 맹세로 하나님께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제이콥은 속건제 규정을 따라 원금 100세겔 값어치의 물건들에 20%를 더해서 갚아주었다. 다시 말해, 그는 그 귀중품에 덧붙여 20세겔을 물어줘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속건제 규정은 물질의 배상과 더불어 속건제를 위한 숫양을 성전에 바칠 것을 요구한다. 제이콥은 규정을 따라 성전으로 올라가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바쳐야 했다.


물질적 배상에 초점을 두는 속건제


제이콥이 자수한 뒤 바친 그 제사는 속건제다. 히브리어로 아샴(asham)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물질의 배상을 가리키는 단어다. 따라서 구약성경 여기저기에서 물질적 배상을 위해 바쳐지는 다양한 제물들이 속건제로 번역되곤 한다. 그러나 레위기 5장 14절~6장 7절에서 규정되는 속건제는 희생 제사로서 바치는 속건제를 말한다. 영어 성경은 전통적으로 guilt offering으로 명명하지만 최근의 영어 성경들은 히브리어 아샴에 배상의 의미를 지닌 이유로 배상제(reparation offering)로 번역한다. 속건제의 건(愆)은 ‘허물 건’으로서 벗겨내야 할 과실을 의미한다. 앞서 속죄제에서 간단히 설명한대로 속건제가 여호와의 금지 명령을 무심코 어긴 죄를 해결하기 위한 제사라면, 속죄제는 재산상의 피해를 발생시킨 죄를 해결하기 위한 제사다.


속건제가 요구되는 죄로 피해를 입은 재산은 여호와의 재산과 사람의 재산으로 나뉜다. 특별히 이 죄는 히브리어 마알(maal)로 지칭되는데, 이 죄는 여호와에 대한 믿음의 위반을 의미한다. 레위기 6장 2절의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라는 표현은 속건제가 해결하는 죄의 성격을 분명히 말해준다. 이 죄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한 행위들로서 십일조나 첫 새끼와 같이 성전에 바쳐진 성물을 자신이 유용하는 죄를 말한다. 그것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의 위반이다. 그러나 고의성이 없이 무심코 위반한 경우에 속건제를 바친다. 예컨대 레위기 22장 14절은 ‘사람이 부지 중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그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지니라’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 장에서 이어지는 15~16절은 고의로 성물을 먹는다면 중벌에 처할 것이라 경고한다.



한편 이미 성전에 바쳐진 성물(고르반)을 유용하거나 사취하는 경우도 성물 침해죄에 해당되므로 역시 죄를 인정하고 고백한 뒤 같은 방식으로 죄를 씻어야 했다. 남의 재산을 갈취할 때도 궁극적으로 이 죄가 여호와에 대한 믿음의 위반이 되는데, 그 이유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고 서약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 자는 원금에 1/5을 더하여 갚고 숫양 한 마리를 성소에 바쳐야 했다(레 5:15~16; 6:5).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정황들


우선 레위기 5장 15~16절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해 부지 중에 범죄했을 때 속건제를 바치도록 명시한다. 지정된 성소의 세겔로 값을 매겨 숫양을 가져오고 그 성물에 대해 원금의 1/5를 더한 보상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십일조를 실수로 바치지 않았다면 위의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5장 17~19절은 만일 여호와의 계명을 어겼을 때 그에 따른 속건제 규정이다. 이 조건절의 문장은 4장의 속죄제에서 나타나는 금지 명령의 위반에 대한 문장과 동일하다. 거기서도 여호와의 명령을 어겼을 때라는 진술이 나타난다. 앞서 속죄제에서 말한대로 정확히는 여호와께서 금지하신 명령을 어겼을 때로 해석되는 조건문이다. 결국 동일한 조건문에 대해 왜 여기서는 속건제가 요구되는지 혼동을 일으킨다. 학자들이 추론하는 바와 같이 아마도 속건제에서 여호와의 계명을 어긴 범죄는 단순한 도덕적 금지 명령이 아닌 성물의 침해와 관련된 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원금의 20%를 더하여 배상을 하라는 요구가 없다. 이 상황은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어떤 사람이 무의식중에 성소의 어떤 비품을 손상시키거나 오염시켰다. 그러나 의심은 갈지라도 정확히 누가 그 성물을 침해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하면서 속건제를 드린다. 그러나 범인이 불확실하므로 배상금의 요구는 뒤따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속건제의 숫양을 드림으로써 성소를 침해했을지도 모를 자신의 죄로부터 홀가분해진다. 19절은 이러한 배상이 요구되는 잘못들은 명백히 여호와께 대한 범죄라고 분명하게 진술한다.


여호와 앞에서의 서약이나 맹세를 파기하면서 일으킨 타인의 재산 침해도 ‘마알’로 규정된다. 범죄자는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는데(6:2), 이를테면 위의 제이콥처럼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여서 탈취한 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사실을 부인한다. 또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거나(속임수) 자신이 물건을 맡은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도둑질), 나아가 이웃에 모종의 압력을 가하여 강탈한다(착취). 나아가 물건을 주운 뒤 거짓으로 하나님께 맹세하여 시치미를 뗄 수 있다. 이러한 거짓과 사기질, 불의한 분실물 습득은 맹세가 수반되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다. 이것은 칼을 든 강도짓이 아니지만, 교묘한 합법적 수단으로, 이웃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임금 착취나 임금 체불과 같은 범죄라 할 수 있다(예, 레 19:13). 범죄자는 그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되 원금에 20%를 더하여 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 아마 죄가 드러나는 날, 즉 사건의 진상이 파악된 뒤 그런 배상 절차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범죄자는 성소에서 정한 값에 맞는 숫양을 성소에 가져가 속건제로 바쳐야 한다.


속건제 규정에 명시된 죄의 목록들 외에도 속건제의 다양한 사례들이 나타난다. 완치된 나병(정확히는 악성 피부병) 환자가 다시 진영에 입장하기 위해 거쳐야 할 복잡한 정결 과정(레 14장) 중에는 속건제의 어린 숫양을 드리는 절차가 있다. 무의식 중에 신성한 대상을 침해한 죄로 저주를 받아 나병이 옮았을지 모른다는 당대의 인식 때문에 속건제가 요구되었을지 모른다(예, 민 12장의 미리암의 나병과 대하 26장의 웃시야의 나병). 서약 기간 중에 사체와의 접촉으로 더럽혀진 나실인은 재서약을 위해 두 마리의 새로 번제와 속죄제를 바치고 이어서 속건제의 어린 숫양을 바쳐야 했다(민 6:7~21). 이미 약혼한 여자 노예와 결혼함으로써 결혼이라는 신성한 서약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민 19:20~22)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방 여자와 결혼 서약을 했을 때(에 10:29)도 속건제의 숫양이 요구되었다.


한편 앞서 말했듯이 아샴이 레위기의 속건제 규정에서 말하는 숫양의 속건제가 아닌 일반적인 배상(물)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속건제가 아닌 배상(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짐승의 피에 의한 배상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손해 배상을 통틀어 아샴이라 부를 수 있다. 블레셋 족속은 법궤를 빼앗아 다곤 신전에 두는 성물 모독죄를 저질러 재앙을 만난 뒤 법궤를 이스라엘에 돌려줌과 동시에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의 배상 제물(속건제)을 바친다(삼상 6장). 의로운 종의 죽음(사 53:10) 역시 속건제(아샴)로 번역되어 있으나 이는 문자 그대로의 전문적 속건제가 아니라 그 종이 배상물로 바쳐진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넓게 보면 속죄제도 배상(아샴)의 제사다(레 5:6). 예전 한글 개역의 경우 레위기 5장의 속죄제에 대한 설명에서 갑자기 속건제가 나타나 혼동을 일으킨다. 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레 5:6). 여기서 속건제는 ‘배상물을 드리되’로 해석해야 한다. 한글개역개정은 그것을 속죄제로 번역하여 억지로 조화시켰는데 엄밀히 말하면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의로운 종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목숨으로 대신 죄값을 지불한 희생양이다.


물질적 피해를 입힌 구체적 사례들의 해석


앞서 말한대로 여기서 여호와의 재산에 입힌 피해는 무심코 저지른 범죄로 규정된다(레 5:15). 그러나 이웃의 재산을 탐하는 행위(레 6:1~7)는 다분히 고의적이다. ‘속임수’ ‘도둑질’ ‘거짓말’ 등을 통해 남의 재산을 집어 삼키는 악랄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의 사유 재산에 입힌 피해를 원금에 불과 1/5만을 더하여 배상하는 것은 출애굽기의 소나 양의 도둑질의 경우와 상충된다. 출애굽기에서 절도죄의 경우 원금의 4배 혹은 5배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출 22:1). 양이나 염소를 한 마리 훔친 것이 발각되면 네 마리로 갚아주고 소 한 마리의 경우 소 다섯 마리로 갚아줘야 한다. 들통난 출애굽기의 도둑질은 4~5배 물어주고 속죄제나 속건제는 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배상의 책임을 묻고 사건은 종결되는데, 무거운 죄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출애굽기의 배상법과 레위기의 속건제의 벌금은 모순되어 보이나 양자의 죄가 다르다.


앞서 말했다시피 레위기의 속건제 규정은 기본적으로 무심코 여호와의 성물을 침해한 죄를 처리한다(레 5:15). 그러나 고의적으로 성물을 취한 범죄자는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엄중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레 22:14~16). 이때 속건제의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아마 죄인의 자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레위기 6장 1~7절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추정된다. 위의 요아킴의 친구 제이콥의 사례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이웃이 맡긴 물건을 훔치고 유용한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며 자신의 범죄를 부인한다. 하지만 속건제는 ‘참회’와 ‘죄책감’을 동반하는 제사이기 때문에 분명 그 범죄자는 범행이 지목되었을 때 처음에 부인을 하다 나중에 심경에 변화가 생겨 잘못을 인정하거나 자수했을 것이다. 이때 그는 원금의 1/5을 더해 물어주고 여호와의 이름을 맹세에 남용했다는 이유로 속건제를 드리는 것이다. 반면에 출애굽기 22장은 범죄자가 물증과 더불어 체포된 경우이다. 따라서 그 벌은 매우 무거워 자신의 커다란 재산상의 손실을 초래한다. 한편 어떤 학자는 속건제의 벌금 액수에 대해 회개를 권장하고 피해자의 재산을 되찾아주려는 의도가 담긴 법이라 설명한다. 즉 속건제 규정은 자수를 유도하기 위한 징벌 감면책이라는 것이다.


속건제의 숫양과 그 가치


속건제의 제물과 배상은 속죄제와 달리 신분의 따른 차이가 없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두 동일한 원칙을 따랐다. 누구든 원금에 1/5을 더해 배상하는 한편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므로 속건제로 숫양을 바쳐야 했다. 이때 숫양은 반드시 성소의 은화(세겔)로 가치를 매긴 숫양이어야 했다(레 5:15). 레위기에 값이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랍비들은 최소 은화 2세겔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여러 학자들의 추정대로 후대의 관행에 따르면 염소가 없는 사람이 은화로 성전 축사(stockyard)에 있는 염소를 사서 바쳤던 것으로 보인다(왕하 12:5~17). 그러나 피를 반드시 신체의 오른쪽 끝에 발라야하는 나병 환자의 정결 의식이나(레 14:14, 25) 나실인의 재서약처럼(민 6:7~21) 특별히 어린 숫양(male lamb)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은전으로 바꿀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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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속건제(贖愆祭) 레위기 5:14∼6:7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이나 이웃의 물건을 침해하거나 손해를 끼치고 잘못을 깨달았을 때, 허물을 씻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속죄제가 실수로 죄 지은 사람이 제물을 드리는데 반해, 속건제는 손해를 끼친 원금에 20%를 덧붙여 배상한다. 그래서 배상제나 보상제로도 부를 수 있다. 공동번역 성경은 '면죄제'로, 가톨릭 성경은 '보상제'로 번역한다.


먼저 하나님의 성물에 대한 죄는 부정한 상태에서 제물을 먹는 일(레 22:2~16)과 하나님께 속한 헌물이나 십일조(레 27장)를 가로채는 일이고, 그것은 야웨의 이름을 모독하는 죄로 여겨졌다. 사도행전 4~5장의 아니니아와 삽비라의 죄와 말라기 1장 7~8절의 제사장의 죄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속건제는 이웃의 물건을 침해한 때에도 드려야 하는데, 위탁물이나 전당물에 대한 부정, 도둑질, 임금 착취, 분실물 취득(6:1~3) 등의 경우이다. 속건제 규례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야웨의 성물을 함부로 다루는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확대해서 생각하면, 사람에게 잘못하는 행위를 하나님께 잘못하는 행위로 여기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전의 다른 면으로 여기는 것처럼, 사람에 대한 범죄가 하나님에 대한 죄와 같다고 여긴다. 성경은 종교적 죄와 사회적 범죄를 구별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죄 짓는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원만할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데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이것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피해 숨은 아담에게 "어디 있느냐?"(창 3:9)는 물음을,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아우가) 어디 있느냐?"(창 4:9)고 하나님이 똑같이 질문하신 데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과 가인에게 행하신 같은 질문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죄는 사람에 대한 죄임을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의 물건을 침해하여 행하는 죄에 대하여 속건제를 드림으로써 해결하게 하는 은총을 보여주신다.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죄는 하나님께 대한 죄이고,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보상하는 원리가 중요하다고 속건제 규정은 가르친다.


속건제 규례를 통해 사람의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데, 사람이 물질에 대해 가지는 욕망을 폭로한다. 물질에 대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하나님의 성물을 가로채기도 하고, 사람의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돈에 눈이 멀어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기도 한다. 십계명의 열째 가르침은 이웃이 가진 것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출 20:17). 물건을 실제로 훔치기 이전에 남의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하는 탐심 자체를 죄로 규정한다. 신앙이 참인가 거짓인가를 여러 가지로 판별할 수 있지만, 재물에 대한 태도, 돈에서 자유로운가, 돈의 노예인가 혹은 하나님의 종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돈의 철학(1900년)'에서 돈이 자기 확장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사람도 일정한 돈에 만족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밝힌다. 돈이 마치 신의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욕망을 절제하고 포기하는 것이 참된 신앙의 모습이라고 가르친다. 돈과 권력을 포기하고 절제할 능력이 있을 때,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특별히 속건제물이 제사장에게 소득으로 돌아가는 것(레 7:6~10)은 제사장은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서 땅에서 나는 소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성별된 신앙인은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


속건제를 드리는 다른 경우가 레위기 5장과 6장 밖에도 나온다. 악성 피부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는 정결예식과(레 14:10~20) 나실 사람의 헌신예식에도 속건제를 드린다(민 6:12). 이것은 사람의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중요한 재산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피부병에 걸린 것은 자기 몸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이해한다. 나실 사람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시체에 손을 대서 자기의 몸을 더럽히면 속건제를 드려야 했다. 자기 몸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니, 자신의 몸이기 이전에 하나님에게 받은 거룩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몸을 정결하게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 성경은 영과 육의 이원론을 말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구현하는 일에 우리의 삶을 바쳐야 한다.


속건제 규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정의와 공의의 삶을 사는 것이 삶의 제사라는 신앙의 가르침을 준다. 또한 사회·경제적인 범죄를 신앙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통찰력이 들어 있다.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원금만 갚는 것이 아니라 피해 보상을 하는 점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자세를 알려준다. 특별히 교회 재정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성물에 대해 목회자와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거룩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준엄하게 말씀하신다. 예배는 하나님과 백성이 나누는 사귐이다. 문제는 백성의 삶이 죄와 부정에 오염되도록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데 있다. 속건제는 이런 상황을 바로 잡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죄와 부정함에 빠져 신음하는 백성이 속건제를 통해 거룩함을 다시 회복하기를 바라신다. 


 

3. 결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정해진 예배를 드리면 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나 주일에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은 예배의 작은 부분이고 사실은 세상에서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화목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임을 다음과 같은 성경말씀으로 마칠까 합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5장 16절) 이 말씀이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이웃(세상사람들)에게 행한 바른 행실 때문에 그것을 본 이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영적 예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모형이고, 그림자이며, 예언이신 구약성경상의 5대 제사에 대해 공부하여 잘 알게 하여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이 제사를 통하여 한 몸으로 모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구약제사를 완성하셨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은혜 감사드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5대 제사와 3대 절기(2)

 

1. 4대 제사 방법

 

하나님께 드리는 3대 절기와 더불어 행하는 4대 제사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배우 볼 까 합니다.

 

가. 화제

제물을 불로 태워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입니다. 번제와 소제의 제사에서 쓰이는 방법입니다.

 

나. 거제

이 방법은 제물을 높이 쳐들어서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방법입니다.

 

다. 요제

제물을 위 아래로 흔들거나 앞뒤로 흔들어 하나님께 구분하여 드린다는 뜻을 가진 제사 방법입니다.

 

라. 전제

포도주를 제물에 쏟아 온전히 헌신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나타내는 제사방법입니다.

 

2. 제사 방법의 특징

 

율법에 의해 드리는 제사(예배)는 사람의 임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정해주신 것은 절기나 제사법이나 제물과 예물(헌금)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세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희생제사는 그 죄를 온전하게 담당해 주실 예수님께서 오셔야만 멈출 수가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희생제사가 사라지기 전까지 유대백성들은 무수히 많은 동물들을 희생시켜 제물로 바쳤습니다.

- 유월절에서는 상번제, 번제, 전제를 통하여 총 51마리의 짐승이 희생제물로 드려졌습니다.

- 칠칠절에는 번제와 속죄제로 소제, 전제로 13마리의 짐승이 희생되었습니다.

- 초막절에는 번제의 화제, 속죄제, 상번제, 소제, 전제를 통하여 215마리를 짐승이 희생되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초막절에서는 희생제물인 수송아지 열세마리를 준비하여 7일동안 1-2마리 씩 차례대로 죽여 나가다가 마직막 날 8일에는 수송아지 1마리와 흠 없는 어린양 7마리를 드리도록 하신 것은 마침내 구원을 성취시킨 예수님의 희생을 7일간의 사역을 보여주는 모형을 보여 주셨습니다.

 

3. 결론

 

태초에 정하신 구약, 신약의 복음이 마지막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성경을 통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케 하는 날에는 서원제나 낙헌제 외에 번제, 소제, 전제, 화목제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 서원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함

    낙헌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뜻을 가지고 있음

 

하나님 아버지! 무한하신 당신의 구속사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성경말씀에 무지함을 용서하옵소서. 앞으로 성경말씀에 대해 더 알게하여 마귀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전신갑주를 입게 하여 주십시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3대 절기

 

오늘은 구약의 출애굽기23장 14-17절 말씀에서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무교병의 절기(유월절).....맥추절(칠칠절).....수장절(초막절)을 지키라. ...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라며 애굽을 탈출한 유대백성에게 주신 율법을 통해서 무교병의 절기인 유월절, 맥추절인 칠칠절, 수장절인 초막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신 말씀 때문에 동물의 피를 뿌리는 희생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1. 유월절(레위기23장 5-8절)

 

구약성경의 절기는 모두 음력을 사용한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 (창1장 5절) 유대민족의 가장 큰 절기는 유월절로 무교절의 시작이 되는 날이었으며, 이방문화와 풍속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기 위해 유월절이 시작되는 그 달로 신년을 삼으라고 명령했습니다.

- 유월절은 유대백성을 노예생활에서 자유인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셨습니다. 레위기 23장5-8절에서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며, 화제를 드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 유대백성이 애굽을 탈출할 때 장자들의 목숨을 살려주신 사건을 기념하는 유대인들의 큰 명절로 음력 1월 10일에 제물인 흠없는 1년된 어린양 숫컷을 준비하여 유월절이 되는 1월 14일 저녁 황혼 때에 그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서 행사가 시작됩니다. 이 날을 “여호와의 밤”으로 규정하였으며,(출12장 42절)

- 이 어린 양 숫컷을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유월절에 연이어서 1월 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무교병을 먹으며 무교절 행사를 하였습니다.

- 무교절에도 유대백성 누구나 누룩이 없는 무교병(=맛차)과 쓴 나물을 먹습니다.

- 누룩은 죄를 상징하며, 쓴 나물은 유대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의 고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 고난의 떡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라고 명령하신 유월절과 무교절 절기는 유대백성을 통해 죄를 뜻하는 노예생활에서 죄가 없는 자유인으로 해방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보여주시기 위해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게 하셨던 것입니다.

- 특이한 것은 정기 1월 유월절에 참석못한 경우가 있으면 한 달 뒤인 2월 14일 해질 때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에는 긴박하게 애굽을 탈출하던 모습대로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긴박한 상황임을 보여주였습니다. 출애굽12장 11절 말씀.

- 신약성경에서는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칠칠절(맥추절, 오순절, 성령강림절)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을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23장16절)

신명기 16장 9-12절에서는 칠칠절을 지키라,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 노비, 레위인, 객과 고아, 과부와 함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할지라......설명하고 있습니다.

보리가 익어서 수확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맥추절(초실절)은 유대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곡물을 수확 할 때에 제사법에 따라 첫 이삭 한단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면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 제사법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제사법을 따라야 하는데 농사를 짓고, 수확한 첫 이삭 한단을 먼저 제사장에 가져가서 그 단을 흔들어(요제) 하나님께 열납되도록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 이 절기는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님을 통해 택함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제사이기도 합니다. 모든 제사법과 단 위에 바쳐지는 제물과 예물은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 절기에 드리는 제사로서는 ,

•요제: 오실 예수님의 그림자로 세우심을 의미하고,

•소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 위해 예수님이 생명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제는 번제와 화목제와 함께 드리는 제사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자원제입니다.

•전제: 포도주 힌 사분의 일을 제물에 쏟아서 드리는 제사로 이는 온전히 헌신하는 예수님을 피 흘리심을 나타내는 의미입니다.

- 칠칠절인 3대 절기 중 유일하게 지정된 날짜가 없으며, 단지 ‘곡물이 익어 거둘 때’와 ‘안식인 이튿날’로 기준만 세워 놓은 것이 특이한 사항입니다. 즉 맥추절로부터 오십일 째 되는 날이 오순절인 것입니다.

- 칠칠절은 거룩하신 신약시대인 성령님이 오신 날이기도 합니다.

- 예수님과 구원받은 백성이 함께 결합하여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사임을 의미합니다.

- 맥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칠칠절이라고 부르는 오순절이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 날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는 절기입니다.

- 기타 참고 절기

•7월 1일: 대 안식일, 나팔절, 7월 10일: 속죄일, 7월 15일: 초막절,

 

3. 초막절(=슈꼬트, 장막절, 수장절)

 

유대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초막절은 음력 7월 15일로 성경에서는 장막절이나 수장절 이라고도 부릅니다. 예레미야 23장 33-43절에서 “첫날에 안식하고, 제8일에도 안식하고,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 거두어 저장하며....토지의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여호와 전에 드릴찌니라.”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가족과 함께 초막에 거하면서 옛날 조상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전에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막을 치고 살았던 나그네 생활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이며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레위기 23장 33-43절에서 유대에서 난자는 7일 동안 다 초막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으며, 초막절 규례를 지키라 하였습니다.

- 첫 열매의 종류로는 무화과, 포도, 올리브가 있습니다.

- 초막절 행사 중 저녁이 되면 일곱가지로 뻗쳐 있는 촛불을 성전에 켜놓고 햇불 춤을 추며, 여인들이 달빛 아래서 시편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합니다.

- 7일동안 ‘수카’라는 초막에 거하며 풍성한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 초막절 절기에 참여하는 것은 히브리서 13장 8절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라며 거짓 복음에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세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고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초막절은 마지막 때에 심판하시러 오시는 재림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즉 초막절 절기 제사 규례에는 초림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와 재림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 초막절이 증거되어야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서 태초에 계획하신 모든 일들이 초막절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통해 보여주시는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 절기를 통해 모든 예언을 완성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은 곧 오시는 재림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은 끝이 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다시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초막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천국에서 거룩한 대회(大會)로 모임을 가짐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이 완전하게 마치게 됨을 보여주는 아직 다 이뤄지지 않는 절기입니다.

 

4. 결론

 

초림을 통해서 복음을 성취하신 예수님과 만나게 되는 유월절을 시작으로 열방의 나라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얻기까지 깨닫도록 도우시는 성령님께서 오신 칠칠절(성령강림절)과 함께 초막절은 ‘이미’와 ‘아직’이라는 복음의 완성을 기다리는 심판과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 살아온 행위대로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4장 23-31절과, 에스겔 36장 8-15절, 이사야 33장 20-21절에서 특히 에스겔 34장 2-4절은 말세에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의 특성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 찐저 목자들이 양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찐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떼는 먹이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 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1. 속건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갈때는 어떻게 하는가. 속건제 부터 시작한다. 속건제는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을때 범죄했을때 반드시 배상해야 한다. 5배, 4배, 2배 배상이 있다. 죄질이 큰 소도둑은 5배를 갚아야 한다. 양도둑은 4배로 갚는다. 일반적인 손해는 2배를 갚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제사를 통해 회개하고 빨리 돌이키면 5분의 1만 더하면 된다. 만약 내가 1천불의 손해를 끼쳤거나, 하나님께 드려야 할 헌물 1천불을 못드렸다면 1,200불을 드리면 된다. 제사를 통해서 할때면 5분의 1만 더하면 된다. 그러나 현대식으로 말하면 도둑질을 하다 들켜 형사처리가 되면 출애굽기 22장에 보면 법적으로 문제를 삼았을때 5배까지 배상한다.


속건제 정신은 죄를 안짓게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 회개의 문제는 회개는 잘못했다고 고백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고백하는 것은 돈이 안든다. 만약 한 개를 가지고 가면 두 개를 갚아야 한다면 다시는 안할것이다. 삭개오가 예수님에게 회개를 할대 내가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를 갚겠다고 했다. 삭개오는 큰도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사기를 쳤어도 조금 쳤으니 5배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회개를 그런식으로 전혀 물질적인 것과 관계없이 마음으로 표현하니 죄짓는 것에 담대해진다. 왜냐하면 단지 고백하면 되기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빚잔치'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기재산은 뒤로 빼돌리고 파산하여 탕감받고 자기는 잘산다. 이렇게 해도 예수믿는 사람이 전혀 양심에 가책이 없다. 자기는 할 것을 다했다는 것이다. 성경의 원리는 그런것이 아니다. 사람마음속에 죄를 짓지 말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회개인데 우리는 잘못가르친 것이다. 배상을 시키는 것이다. 배로 갚으라고 하면 안한다.


2. 속죄제


내가 몇배씩 갚아도 근본적으로 내 안에 해결이 안되는 문제가 있다. 생각의 범죄라든가, 해결할수 없는 마음의 큰죄를 짓는 것이라던지, 내가 배상을 아무리 해도 내가 가진 죄성은 해결이 안된다. 손해를 몇배로 갚아도 그런 죄성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물질로 해결안되는 문제를 하나님앞에 나가 도움을 청하는 것을 속죄제라고 한다.


"하나님 보세요. 저는 죄를 이길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고 감동을 안주시면, 내 마음을 바꾸어주지 않으시면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라는 자세로 제사하는 것이 속죄제이다. 그러나 보상할수 있고 배상할수 있는 것은 다 속건제이다. 소위 하나님이 오셔서 나를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 속죄제이다. 여기까지가 의무제이다. 이것을 안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화목제, 소제, 번제는 자원제이다.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흠양하시는 제사로 받는 것은 이것들이다. 속죄제와 속건제는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고, 다음에 성도들이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뜻대로 살려고 하면 위의 3가지 제사를 더 드려야 한다.


3. 화목제


하나님이 우리를 이땅에 제사장으로 보내셨다. 사람이 못된 짓을 했어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용서하셔서 구원받고 죄사함을 받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사장이다. 그런데 제사장이 사람과 관계가 멀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자기 역할을 감당을 못한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면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다. 다른 제사는 다 이웃과 나눌것이 없는데 화목제만큼은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를 드린 사람이 먹고, 가족이 먹고, 심지어 같이 간 사람까지 먹을수 있다. 몫을 나누라는 것이다.


화목제는 감사제, 자원제, 서원제가 있다. 감사제는 보통 감사하여 감사헌금을 내는 개념이다. 은혜를 주셔서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합니다 라는 것이다. 자원제는 감사해도 특별히 너무 감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특별히 더 하겠다는 것이다. 서원제는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3가지 화목제중 어떤 제사를 가장 좋아하시겠는가.


교인 가운데 평생 새벽기도 하기로 작정했다면 목사님이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것이 서원제이다. 특별한 관계를 맺으려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감사할줄을 모르면 안된다. 특히 목사중에 그런 분들이 많다. 교인들이 목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면 고맙다고 피드백을 안한다. 목사들이 고맙다고 안하니 교인들이 시험이 든다. 고맙다는 말을 안하니 관계가 멀어진다.


하나님과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가 감사의 마음이 없으면 화목이 안된다. 이런 철학을 가지고 교회 감사헌금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런 합리적인 이유없이 무조건 내라고 하면 안낸다. 이민와서 뼈빠지게 번돈인데 어떻게 내겠는가. 여러분 교회 교인들은 감사헌금을 잘내는가?


4. 소제


화목제는 관계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소제는 언제드리는가. 위로 올라갈수록 더 좋은 제사이다. 소제는 피가 아닌 기름이 있는 유일한 제사이다. 소제는 반드시 두가지 있어야 한다. 고운 가루가 있어야 하며, 기름이 있어야 한다. 가을철 수확을 할때 첫 소산을 가지고 소제를 드린다. 문제는 결실을 얻고 바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곡식을 충분히 말려서 갈아야 고운 가루가 되는데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갈아야 하니 고운 가루를 만들수 없다. 그래서 급조해서 하는 것이 볶는 것이다. 볶으면 급조는 되지만, 햇빛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말리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다보니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소제로 드릴수 있지만 향기로운 제물로 드릴수 없다는 말은 정상적인 제사는 아니기에 받기는 하지만 아주 기분좋게 받는 제사는 아니라는 개념이다.


하나님께 제대로 된 소제를 드릴려면 충분히 말려서 여러번 갈아서 만든 고운 가루로 드려야 한다. 고운 가루의 개념은 바로 우리의 인격이다. 성품이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광고가 있다. 고운 가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도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가루로 만드시는데, 고운 가루의 특성은 어디에 가도 소리가 안난다. 시끄럽고 싸우는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광야는 안끝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갈아 붙이기 위해서 맷돌을 여러번 돌리신다. 목사인데도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여러가지 어려운 경우가 있다. 가루를 좀 세밀하게 갈라는 뜻이다. 목사가 예배드리다가 성질내고, 교인이 힘들게 한다고 나가라 하면 되겠는가. 끝까지 목회자가 참아야 한다. 빨리 광야를 극복하는 비결은 빨리 갈아지는 것이다. 갈아지면 소리나지 않고 조용하게 성품의 변화를 일으킨다.


고운 가루를 갈았을때 기름을 섞는다. 안에다 기름을 반죽하고 바깥에도 기름을 섞는다. 내 안의 저 깊은 곳 까지 기름이 들어간다. 또 바깥에도 기름을 붓는다. 기름을 이중으로 친다. 안밖 이중으로 기름을 친다. 그런데 소위 성령운동이나 은사운동 하는 분들의 특징은 밖에는 기름부음이 있는데 안에는 기름부음이 부족하다. 속에 기름이 없다. 대학다니면서 호떡 장사를 했는데 반죽이 가장 힘들다. 반죽이 제대로 안되면 안익는다.


왜 우리 인생에 고난이 많은가. 반죽이 되어야 우리가 쓸모가 있는데 설교는 기가막히게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면 성질이 나쁘다. 그 쪽 반죽이 안된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이 다 떨어진다. 앞에서는 잘하는데 뒤쪽에서는 이상한 짓을 한다. 그 부분은 반죽이 안된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가운데 혹은 목회자가운데 성령님이 들어가 완전히 적셔야 하는데 반죽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왜 반죽이 잘안되는가. 그 이유는 가루가 곱게 갈아지지 않아 기름과 섞이지가 않는 것이다.


성령운동과 은사주의로 접근하는 분들은 내면에 기름부음이 없다. 반대로 말씀중심과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안에는 기름부음이 있지만 밖에서 기름부음이 없다. 사회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드라이하다. 자기의 힘으로 하려고 하고, 이성의 힘으로 하려고 하고, 설득해서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그것이 되겠는가. 본인은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없다.


기름부음이 밖에도 있어야 하고 안에도 있어야 한다. 양쪽으로 있어야 한다. 한국교계의 어느 유명한 목사님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분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는 이야기를 못보았다. 그 이유는 기름부음이 안에는 있는데 겉에는 없기 때문이다. 교회사를 보니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분이 참 드물다. 아프리카에서 사역했던 앤드류 머리라는 분은 두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 그분 책은 다 읽어 보았을 것이다. 그분은 은혜로운 말씀만 아니라 삶을 통해 파워풀하게 그것들이 드러난다. 그리고는 좋은 모델을 찾기가 참 힘들다.


성경적인 모델은 소제는 두가지가 다 있다. 기름부음은 안밖에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성품의 부서짐이 있어야 한다. 광야의 영성이라고 한다. 가루가 되고 그 가루 안밖으로 기름을 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제의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 깊은 프로세스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평생을 소재를 드리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5. 번제


번제는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 내장도 씻어서 드리고, 지저분 한 것을 다 버리고 각 부위를 각을 뜨서 드리고, 최상품의 일등급의 번제는 가죽까지 드린다. 수치 모멸 명예까지 다 내어 드리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사건이후에 노아는 무슨 제사를 드렸는가. 번제를 드렸다. 그때 하나님이 무지개 언약을 주신다. 모세와 아론이 성막 건축을 완성하고 하나님에게 나아갔을때 번제를 드렸다. 저주의 에발산에 제단을 쌓은 이유는 저주가 임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코앞에 왔을때라도 포기하지 않고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다. 번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제사이다.


교인들에게 예배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무엇부터 시켜야 하는가. 속건제이다. 그런데 회개기도를 성경적으로 본문에 따라 가르치지 않고 우리의 상식에 근거해 가르쳤기에 회개기도를 많이하고 그렇게 많이 예배를 드려도 사람들이 안변한다. 목사가 자기식으로 가르쳤고 성경대로 안가르쳤기에 변화가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부흥도 있고 많은 사람이 왔다갔지만 근본적인 인격변화가 없다.


하나님은 "나는 이런 제사를 원한다, 이렇게 너희가 제사를 드리면 죄를 용서하고 심판을 면해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이 이런 제사라고 하는 기준이 없어지고 우리가 원하는 제사로 바꾸어 버렸다. 나는 열심으로 드렸는데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신다.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가 어디에 있는가.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데 자기 식이다. 평생을 헌신했다고 하는데 보니 자기식으로 헌신한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헌신이 얼마나 많은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오늘 이 시대에 성경을 보기는 한다. 그런데 성경대로 안하고 배워했던 대로 그리고 해왔던 방식대로 한다. 그러니 뭔가 일어나고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 5-10년 지나고 보니 변화가 없다. 당시에는 눈물 흘리고 너무 은혜롭고 좋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안변한다. 그 이유는 말씀이 들어가야 사람이 변화되는데 말씀이 안들어가고 목사의 생각과 철학이 들어가니 내 사람은 만들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못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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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엄숙히 진행되었지만 침묵이 흐르지는 않았다


흠 없는 수컷 짐승을 선호 … 신분의 차이는 물론 남녀의 차별도 없어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제사를 공부할 차례다. 앞서 말한 대로 제사의 종류는 다섯 가지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중 소제는 곡식의 제사이고 나머지는 짐승의 제사다. 우리는 각 제사들을 공부하기 전에 성경의 제사의 몇 가지 특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짐승을 바치는 제사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 특징을 갖는다. 당장 레위기 1:2~5의 번제 규정에 몇 가지 특징들이 확인된다.


1) 가축이어야 한다.

레위기 1장 2절는 모든 희생 제사의 서론적 진술이다. 여기서 명시되는 희생 제물의 첫 번째 원칙은 그것이 ‘가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개역의 ‘소나 양’으로에서 ‘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쫀(tson)은 작은 가축인 양과 염소를 의미하므로 가축은 소, 양, 그리고 염소를 가리킨다. 가축의 요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요행이나 불로소득으로 얻은 것보다는 제사자 본인의 땀과 정성이 깃든 소득과 생산물을 제물로 바칠 때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물론 산양을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의 사례처럼 예외는 있지만, 원칙은 자신의 노력의 산물인 가축이었다. 소제물의 경우도 자신이 직접 재배하고 기른 농산물이 제단에 오를 자격이 있었으며 자연에서 채취한 것은 배제되었다. 가난한 사람의 경우에는 기르던 비둘기를 바쳤는데, 다만 그마저 여의치 않은 형편이라면 야생 비둘기를 잡아 드릴 수 있었다.


2) 흠 없는 짐승이어야 한다.

레위기 1장 3절은 그 가축이 ‘흠 없는’ 가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가축 중에서 가져오되 대충 골라오지 말고 흠이 없는 상품의 가축을 선별해서 가져오라는 명령이다. 짐승의 흠들의 목록은 레위기 22:19~25에 제시되는데, 몸에 문제가 있거나 병이 있는 가축은 배제되었다. 아마도 겉으론 흠이 없다 해도 너무 마른 짐승은 속병이 의심되어 제외되었을 것이다. 애써 키운 가축이라는 조건과 그것이 흠이 없어야 한다는 요구는 모두 정성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짐승을 키우는 사람들은 평소에 이미 어떤 녀석이 최상품의 물건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바로 그것을 아깝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 갖다 바치는 것이 최고의 제사일 것이다. 흠 없는 짐승이 요구된 이유는 거룩하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께 걸맞은 짐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3) 수컷이 선호된다.

레위기 1장 3절은 번제물에만 해당되는데 ‘흠 없는 수컷’이라고 명시한다. 다시 말해 번제물은 모두 수컷이 요구된다. 다만 비둘기의 경우 암수 구분이 불필요했다. 아마 너무 작은 짐승이라 암수 판별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번제 외 다른 제사들에서도 수컷 우월성은 확인된다. 속죄제의 경우 제사장과 회중을 위한 속죄제는 ‘수소,’ 족장은 ‘숫염소’를 바치고, 평민은 족장보다 낮은 등급인 ‘암명소나 암양’을 드린다. 속건제에서는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죄인이 ‘숫양’을 바친다. 수컷 우월성은 특히 속죄제에서 평민은 암염소, 족장은 숫염소를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다만 대부분의 고기를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던 잔치의 제사인 화목제의 경우 암수의 구별 없이 원하는 대로 바칠 수 있었다(레 3:1). 그렇다면 수컷을 선호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당시 수컷이 더 비쌌다거나(Wenham), 수컷이 종자 가축으로서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근거가 빈약하다. 종자 가축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예나 지금이나 가축의 시장 가격은 수컷보다 암컷이 훨씬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물로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우위에 있는 이유는 제사에서는 시장 가치가 아닌 제의적 가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수컷 선호는 수컷의 존재론적 가치와 대표성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스라엘은 가부장적 중동 문화의 영향권에 속했다. 하나님께서는 문화적·역사적·지리적 한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약의 율법을 부여하셨다. 따라서 제의 체계에서는 시장 가치가 아닌 율법에서 정한 제의적 가치에 따라 수컷이 우월하게 여겨졌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의 본질과 정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컷은 본질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틀에 불과하다. 본질은 더 나은 것, 최고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대적 관점에서 수컷이 제물로서 우월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하여 구약의 성차별적 경향을 따지고 들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흠 없는 짐승을 선택해야 했다. 자신이 기른 짐승 중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일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4) 짐승의 등급이 나뉘었다.

짐승은 크기에 따라 소, 염소/양, 그리고 비둘기의 세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제사 드리는 사람의 신분과 조건에 따라 짐승의 등급과 서열이 결정되었다. 번제나 화목제의 경우 경제적 능력에 따라 짐승의 크기가 달라졌을 것이며, 속죄제의 경우에는 사회적 지위가 기준이 되었다.


5) 짐승의 머리에 안수한다.

레위기 1장 4절은 ‘그는 번제물에 안수할지니’라고 명령한다. 이후 모든 희생 짐승들에 이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기서 ‘그’는 제물을 바치는 제사자를 의미한다. 제사자는 짐승의 머리에 안수를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레위기 1~5장의 제사 규정에 ‘손’(히. yad)이 단수로 쓰였다는 점을 들어 이를 한 손으로 간주하면서 아사셀 염소 위에 시행된 두 손(레 16:21)과 구별 짓는다. 그들에 의하면 한 손으로 안수하느냐 두 손으로 안수하느냐에 따라 안수의 내재적 기능은 물론 그 효과도 달라진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한 손이든 두 손이든 안수의 목적에 따라 안수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우리는 나중에 안수 문제를 다시 살펴볼 것이다. 특히 속죄제/속건제에서는 안수의 기능이 중요한 쟁점이다.


6) 피는 제단에 처리한다.

레위기 1장 5절은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그’는 안수와 마찬가지로 제사를 바치는 사람, 즉 제사자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이 도살을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제사장은 자신의 제사와 더불어 공적 제사에서 안수와 도살을 직접 집행할 뿐이다. 제사장은 양푼에 받은 짐승의 피를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안수와 도살 모두 제사자가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만일 제사자가 심약하거나 신체적 문제로 도살이 여의치 않을 때는 제 삼자가 대신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제단에서 피를 처리하는 방식은 네 가지가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속죄제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다.


7) 제물에서 나온 모든 기름은 하나님께 바쳤다.

피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속하고 ‘모든 기름은 야웨의 것’(레 3:16)이기에 인간은 피와 기름 중 어느 것 하나 먹을 수 없었다(레 3:16~17). 따라서 희생 짐승의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살라 하나님께 드렸다. 번제에서는 모든 것을 태워 하나님께 바쳤지만, 속죄제/속건제와 화목제에서는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모든 제사에서 동물의 내장의 기름 부위는 반드시 제단에 바쳐야 했다. 내장의 기름 부위란 내장을 덮고 있거나 내장에 붙어 있는 기름 덩어리, 간엽 및 콩팥을 말하며(레 3:9~10; 4:8~9), 양의 경우 기름진 꼬리를 포함했다(레 3:9). 제의 법안에서는 종종 이것들이 통틀어 ‘기름’이라 표현된다(레 4:19, 26, 31, 35). 기름은 왜 항상 하나님께 바쳐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화목제를 다룰 때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8) 고기의 처리방식은 매우 다양했다.

번제의 경우 모든 고기를 제단에 태웠다. 그러나 속죄제/속건제, 그리고 화목제에서는 기름과 일부 내장만을 제단에 바치고 살코기는 인간이 먹었다. 속죄제의 경우 중대한 제사에서는 기름을 제외한 부위를 진 밖에서 태웠으나(태우는 속죄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제사에서는 제사장이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먹는 속죄제). 속건제를 드릴 때는 숫양을 바쳤는데 이때도 기름을 제외한 고기는 언제나 제사장에게 돌아갔다. 반면 화목제의 짐승은 제사장에게 일부를 할당하고 거의 대부분은 제사자가 가져가 가족과 친족,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9) 제사 중에는 침묵하지 않았다.

제사는 엄숙히 진행되었지만 그러나 침묵이 흐르지는 않았다. 아마도 출산과 병으로부터 회복되었을 때는 감사의 고백과 찬양이, 죄나 부정결의 문제로 제사를 드릴 때는 죄의 고백과 자신의 부정함에 대한 설명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제사를 다 마친 뒤에는 제사장의 축복의 선언과 죄사함이나 정결함의 선언이 뒤따랐을 것이다.


10) 제사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었다.

모든 제사는 신분과 빈부의 차이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남녀의 차별도 없었다. 남녀평등의 원칙을 따라 여성도 언제든 제사를 바칠 수 있었다. 다만 가정에서 바치는 번제나 화목제, 또한 절기에 의무적으로 성전에 올라와 바쳐야 하는 제사들은 가장인 남자가 주도했을 것이다. 한나의 사례에서 보듯이 여자라 해도 개인적인 감사와 헌신을 위해 번제나 화목제를 바칠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속죄제와 속건제의 경우 죄인의 여성이라면 당연히 그녀가 제물을 들고 올라와야 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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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7대 절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이끌어 내시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위한 방법으로서 제사법과 절기를 가르쳐 주셨다.
절기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정함을 받은 뒤 체험한 각종 구원사건을 정기적으로 기억하도록 하여 영적각성을 주기 위한 제도였다.

레위기 23장은 구약의 어떤 장보다도 훨씬 더 이스라엘을 향한 많은 예언과 하나님의 계획들을 잘 보여 준다.
이 절기들이 질서있게 그리고 완전하게 잘 배열 되어져 있다.
각 절기들은 그 절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 7대 절기를 연대적으로 나열해 보면 이 절기들이 앞날의 사건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 아래 제정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유대인들의 명절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넓게 성취되어진 하나님의 예언의 달력 임을 보여준다.
그 달력 안에 있는 이 거룩한 날들은 장차 올 일의 그림자이며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다(골로새서 2:17).

유월절 :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마지막 재앙으로 인하여 애굽인들의 장자가 죽임을 당한데 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바른 피에 의해서 구원함을 받음으로 재앙이 지난 것을 기념하는 축제이다(레23:5)(민28:16)(신16:1).

절기의 시작은 1월 14일 저녁부터 시작되었다(레23:5). 이 때 준비한 흠없고 1년된 어린 숫양을 14일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었다(출12:8).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말하며 이와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인들의 연합을 의미한다.

유월절 희생양은 흠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시하고 갈보리 십자가의 사건을 상징한다.

무교절 : 애굽으로부터 급히 빠져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이 누룩없는 무교병을 먹으며 고생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이다(출23:15)(레23:6).

무교병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희생과 봉사를 의미한다(출12:16-20).

절기의 시작은 1월 15 - 21일까지 7일간 번제와 속죄제를 드린다(민28:19-24). 7일간 무교병을 먹고 2일간은 곡식단을 흔들고 매일 번제를 드렸다. 그리고 첫날 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금했다(출12:15-20).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도들을 위해 찢기심과 그의 부활에 대한 상징이며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생명과 부활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주는 것으로 나타낸다(엡1:21-22).

초실절 : 첫 곡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첫 곡식단을 봉헌하는 축제이다(레23:10)(출23:16).

이 절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에야 지켜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았으므로 수확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식일 다음 날에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로서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 되심을 나타낸다(롬8:23). 하나님께 바쳐진 첫 이삭단은 성도와 교회를 암시한다.

절기의 시작은 무교절 후에 곡식의 단을 거두어 흔들고 번제와 소제를 드리며 예물을 드리기 전에는 먹지 말아야 한다(레23:13-14). 이는 신약교회의 이방인의 추수를 상징한다.

오순절 : 초실절을 드린 후 7주(50일째) 되는 날의 절기이다. 구약의 맥추절 또는 칠칠절인 절기가 신약적 의미로 변화되어 완성된 것이 오순절이다. 곡물 수확의 마지막 날로 지정하였고 곡식의 첫 열매를 바치는 축제이다(출34:22)(레23:15)(신16:8).

절기의 시작은 안식일 다음날 초실절 후에 50일 째에 소제로서 떡을 흔들고 번제, 속죄제, 화목제와 요제를 드렸다. 이 날은 성회로 공포되고 노동을 못하게 하고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은총만을 사모할 수 있도록 하였다(레23:21).

신약에서는 성령강림절이라고 불리운다. 예루살렘 회심의 유형이며 갈보리 십자가의 첫 열매를 의미하며 마지막 때의 대추수를 상징한다.

나팔절 : 역사적으로 이 축제는 시나이 반도를 기념하며 나팔을 불어 성회에 모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제이다(레23:24)(민29:1).

절기의 시작은 유대교 일력으로 7월 1일 시행되었는데 이 날은 안식일이었고 그들은 성회로 모여 여호와께 화제를 드렸다. 이스라엘의 재결합에 의미를 두고 있다. 7 이라는 숫자의 신성에 의한 인간력 새해 시작을 기념하는 날이다.

절차는 일반 월삭보다 더 큰 규모의 희생제사를 거행했다(민29:6). 나팔을 불어 알리고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를 드렸다. 이 절기의 나팔소리는 마지막 날에 공중강림과 휴거를 상징한다.

속죄일 : 이스라엘의 죄들이 사함받은 날로 그날은 금식하며 일년 중 가장 기쁜 날의 축제이다(레16:3)(레23:27)(민29:7).

절기의 시작은 유대인 일력의 7월 10일 안식일날로 성회에 모이고 노동을 금했다. 이 속죄일의 집행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레16:34). 이스라엘의 현재의 비애와 미래의 기쁨을 말하며 온 백성의 죄를 속죄하며 성소를 정결하게 하였다(히9:12-14).

절차는 모든 백성은 금식하고 쉬며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속죄를 위한 염소를 잡아 피를 뿌리고 아사셀 염소는 광야로 보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예표하며 마지막 때 남은 자들의 대속죄와 지상재림을 상징한다.

초막절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인도하고 보호하신 은혜를 기념하는 축제이다(출23:16)(레23:34)(민29:12)(신16:13).

절기의 시작은 7월 15 - 21까지 칠 일간 계속되었고 그 다음날은 안식일이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려나무나 감람나무 가지를 취하여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했다(레23:40). 토지 소산의 추수를 마칠 때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새벽에는 해맞이와 관련된 의식과 아침에는 현수의식 그리고 밤에는 축제의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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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대속일, 초막절
유무초칠나대초

절기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하그’와 ‘모에드’다.

하그는 ‘춤춘다’ ‘순환한다’는 의미다. 매년 그맘때가 되면 예외 없이 절기가 돌아오며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속성을 두고 불리는 명칭이다. 축제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축제의 기본 요소인 춤춘다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모에드는 ‘특별하게 정해진 시간’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하신 ‘모에드’에 따라 공생애 사역을 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


성경은 이 절기를 ‘여호와의 절기’라고 밝힌다(레 23:2). 이스라엘 민족의 절기가 각 민족의 절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 그럴까.

첫째, 이스라엘의 절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셨다. 따라서 과장이나 꾸밈, 조작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둘째, 사건과 절기의 순서가 다르다. 즉, 다른 민족의 절기는 사건이 발생한 뒤 그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기념해 생겨났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 먼저 절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에 맞춰 사건이 발생했다. 이스라엘 최대 절기인 유월절을 예를 들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애굽에 대한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죽임’이 임할 날짜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미리 알려주셨다. 그리고 재앙을 피할 수 있도록 집집마다 양을 잡아 그 피를 인방과 설주에 바르도록 하셨다. 죽음의 신이 이스라엘의 집에 넘어가도록 정하셨고 이를 유월절로 제정하신 것이다.


레위기 23장엔 이스라엘의 7개 절기가 언급돼 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대속일, 초막절 등. 이는 하나님이 진행하실 인류 구속사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절기에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과 프로그램이 암호화돼 있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교절은 그리스도의 친교를,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칠칠절(오순절)은 그리스도와 성령의 임무 교대를, 나팔절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대속죄일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나팔절(신년절, 민수기 29:1-6)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7월은 이스라엘의 민간력으로는 1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에 는 나팔절(1일), 속죄일(10일), 초막절(15일) 등의 중요한 절기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 기간과 관련되어 있는 ‘7’이라는 숫자가 갖는 독특한 성경적 의미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는데, 여하튼 종교력으로 7월은 이스라엘에게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달임에 틀림없습니다.

종교력으로 7월을 히브리식으로는 ‘에다님 월’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바벨론 포로 이후로부터는 바벨론식 명칭인 ‘다스리 월’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히브리식 명칭인 ‘에다님’이란 말은 ‘물이 계속 흐른다, 시냇물이 흐른다’는 뜻인데, 이 때가 되면 건기가 끝나고 ‘이른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시냇물이 흘러내리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종교력으로 6월에는 포도 수확을 끝내고, 7월에 파종을 위해 밭갈이를 하였다가 8월부터 밭에 파종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7월은 추수와 파종의 중간기에 위치하는 시기로 어느 정도 한가한 시기로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일과 농사일이 겹치지 않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7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시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달에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절기들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7월 1일은 우리의 정월 초하루에 해당되는 날로서 이스라엘의 민간력으로는 신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은 ‘나팔절’ 혹은 ‘신년절’이라고 부르는데, ‘나팔절’이라는 명칭은 이 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나팔을 불어 신년이 시작됨을 알리며 이 날을 기념하였기 때문에 붙여졌으며, ‘신년절’이라는 명칭은 이 날부터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매월 초하루에 지키는 월삭과도 겹치는 날인데, 다른 월삭 때보다 더 풍성하고 성대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종교력으로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내며, 3월 6일에는 칠칠절을 지냅니다. 그리고 칠칠절로부터 나팔절까지는 약 4개월 정도의 공백 기간이 있는데, 이 기간 동안은 이스라엘에서는 본격적인 농사철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종교력으로 1월에 보리 추수를 시작하여 2월에는 일반 추수를 합니다. 그리고 3월부터 6월까지는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데, 3월에는 밀 추수와 포도나무를 돌보며, 4월에는 첫 포도를 추수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5월에는 포도, 무화과, 감람나무 열매가 본격적으로 익기 시작하며, 6월에는 마지막 포도를 추수하는 것으로 농사가 끝나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에는 매월 초하루에 지키는 월삭 외에는 특별한 성회가 없으며, 오직 경작하는 일과 열매를 추수하는 일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풍성한 열매와 알곡을 수확하기 위해 땀흘리며 농사하는 기간으로 6월까지 모든 수확을 끝내고, 나팔절을 예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팔절이 되면, 제사장이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어 신년이 시작됨을 알렸으며, 백성들은 추수한 곡식을 들고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7월 15일부터 21일까지는 장막절을 지키는데,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한다고 하여 ‘초막절’이라고도 하였으며, 수확한 모든 알곡들을 창고에 보관한 후 지키는 절기라고 하여 ‘수장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런 점에서 7월은 그 동안 수고하여 지은 농사의 결실들을 창고에 모아들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들을 지키는 달이기도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절기 때보다도 풍성하고 성대한 제사를 나팔절과 장막절에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월절에서 칠칠절까지의 절기들이 이스라엘의 전반기(前半期) 절기에 속한다면, 나팔절과 장막절 등은 후반기(後半期) 절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칠칠절’은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성령 강림을 의미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나팔절은 뒤에 다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칠칠절로부터 나팔절까지의 4개월은 오순절 성령강림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 재림 때까지의 ‘성령 시대’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시대를 ‘교회 시대’ 혹은 ‘은혜 시대’라고도 합니다.

교회 시대

초림에서 성령강림까지 (은혜시대) 재림 이후 시대


(봄 절기) 이방인 구원 (가을 절기)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나팔절은 예수님의 재림과 깊은 관계가 있는 절기인데, 이런 나팔절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어의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용한 나팔은 만든 재료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은으로 만든 ‘은 나팔’(민10:2)과 양의 뿔로 만든 ‘양각 나팔’(출19:13, 25:3)입니다. ‘은 나팔’은 주로 국가의 행사, 즉 일반 회중의 회집과 중대한 국가적 사건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양각 나팔’은 종교적 행사와 하나님께서 명한 절기, 즉 성회 때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레23:24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고 하였으며, 민29:1에서는 “칠월에 이르러는 그 달 초일일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팔절이 되면 나팔을 불어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23:24과 민29:1에 사용된 ‘나팔을 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테루아’(&amp;#1492;&amp;#42525;&amp;#64309;&amp;#1512;&amp;#42658;)인데, ‘나팔’을 뜻하는 단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원문에서 ‘나팔을 불다’는 뜻으로 사용된 ‘테루아’는 기쁨의 ‘환호, 함성’을 뜻하는 말로서 기쁘게 소리지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놀라서 외치는 소리나 경보로 내는 소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나팔’을 뜻하는 ‘쇼파르’(&amp;#1512;&amp;#42537;&amp;#64331;&amp;#64298;)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면, ‘나팔들을 부는 소리’를 의미하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레25:9의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라는 말에서 ‘나팔 소리’라는 말이 ‘쇼파르 테루아’(&amp;#1492;&amp;#42525;&amp;#64309;&amp;#1512;&amp;#42658; &amp;#1512;&amp;#42537;&amp;#64331;&amp;#64298;)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레23:24과 민29:1에 ‘나팔’을 뜻하는 ‘쇼파르’라는 말이 없이 ‘테루아’라는 말만 있는데, ‘나팔을 불다’라고 번역한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테루아’(&amp;#1492;&amp;#42525;&amp;#64309;&amp;#1512;&amp;#42658;)라는 말은 ‘루아’(&amp;#64302;&amp;#64309;&amp;#1512;)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루아’라는 말은 ‘소리치다, 외치다’는 뜻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루아’라는 말은 놀라거나 기뻐서 외치는 소리를 의미하기도 하고, 비상 경보시에나 전쟁시에 외치는 소리도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질이 되어 ‘테루아’라는 말이 즐거울 때나 전쟁시에 외치는 외침을 뜻하는 말 외에도 ‘나팔 소리’를 뜻하는 말로도 사용된 것으로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레23:24과 민29:1에 ‘테루아’라는 말밖에 없지만, ‘나팔을 불다’는 뜻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팔절’을 히브리어로 ‘욤 테루아’(&amp;#1492;&amp;#42525;&amp;#64309;&amp;#1512;&amp;#42658; &amp;#1501;&amp;#64331;&amp;#1497;)라고 하는데, 이 말은 ‘기쁘게 소리 지르는 날’ 혹은 ‘나팔들을 부는 날’을 뜻합니다. ‘나팔절’이라는 명칭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기뻐 소리지르는 절기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며, 제사장들이 기쁨의 나팔 소리를 이스라엘 전국에서 크게 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날 부는 나팔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루 종일 반복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날이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고, 또한 기쁨으로 새 해를 맞을 것을 선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어개혁표준판 성경(RSV)에서는 이 말을 ‘a day of solemn rest’(엄숙히 쉬는 날)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날 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내고, 거룩하게 안식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한 것으로 보아집니다.

또 ‘나팔절’을 ‘신년절’이라고 하는데, 히브리어로 ‘로쉬 하사나’(&amp;#1492;&amp;#42490;&amp;#42635;&amp;#42328; &amp;#64298;&amp;#1488;&amp;#42593;)라고 합니다. ‘로쉬 하사나’라는 말은 ‘해의 시작’이란 뜻인데,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나팔절은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7월 1일에 지키는데, 이 날은 이스라엘의 민간력으로는 1월 1일에 해당되는 날로 우리의 신년인 정월 초하루를 의미합니다. ‘로쉬 하사나’라는 명칭은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2.나팔절의 유래

나팔절에 대해서는 레23:24에서 최초로 언급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절을 지키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때부터 나팔절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절기를 왕들이 주관했으며, 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이 절기도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 절기가 왕에 의해 주관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기록이 없으며, 오히려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주관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느8:1-3의 내용을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도 이 절기는 지켜진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벨론에서 70년 동안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과 예루살렘 성 건축을 마치고 나서, 제사장 에스라와 정치적인 지도자인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서 이 절기를 지킨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나팔절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집회와 축제에 대한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일시 중지되었지만, 포로생활 이후에는 다시 지켜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3.나팔절의 의미

유월절에서 칠칠절까지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나팔절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견해를 달리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족장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생일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예수님이 주전 3년 나팔절(당시 달력으로는 9월 11일) 때 베들레헴 외양간에서 출생하였다고 주장하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 랍비들은 이 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첫째는 아담을 창조한 날이라고 하였으며, 둘째는 장래의 심판의 날이라고 하였고, 셋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속을 새롭게 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팔절에서 예언적 의미를 찾으려고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팔절이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나팔절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측정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팔절이 재림의 상징은 될지언정 나팔절을 통하여 재림의 날짜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위험한 시도일 뿐 아니라 비성경적인 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날을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날을 거룩한 안식일로 삼아 일체의 노동을 금지했으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제사를 드리며, 온 백성이 한 곳에 모여 성회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이 날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나팔절을 뜻하는 ‘로쉬 하사나’(&amp;#1492;&amp;#42490;&amp;#42635;&amp;#42328; &amp;#64298;&amp;#1488;&amp;#42593;)라는 말은 ‘새롭게 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제사장들은 언덕에 올라가 새로운 한 해가 다시 시작됨을 알리는 의미에서 하루 종일 나팔을 불었습니다.(민29:1)

앞에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나팔절은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7월 1일에 지키게 되는데, 이 날은 이스라엘의 민간력으로는 1월 1일로 우리의 정월 초하루와 같이 이스라엘의 정월 초하루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7월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으로는 9-10월에 속하는데, 우리처럼 이스라엘에서도 이 때는 가을 추수 절기에 속합니다.

어떤 점에서 이스라엘의 나팔절은 우리의 추석과도 유사한 점들이 많은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을 추수와 관련된 절기라는 점, 추수한 첫 곡식들 드린다는 점, 풍성한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는 점 등에서 서로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곳에 모여 성회로 이 절기를 지켰다는 점과 객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추석에 고향에 모여 추석을 지킨다는 점에서도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팔절이 끝나고 나면, 곧 이어서 장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장막절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장막 생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7일간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면서 지키는 절기인데, 일 년 동안 수고한 모든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보관한 후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에 수장절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나팔절은 일 년 동안 수고하여 지은 농사의 결실을 거두게 하시고, 또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날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의미로 지키는 절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 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4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6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 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7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8 너희는 칠 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레위기 23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의 문화 명령을 하셨다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절기를 지키라는 말로 되어 있지만은 그 안에는 사람이 살아갈 때 어떠한 문화에 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대체로 어느 민족 없이 종교가 그 나라의 문화의 틀을 만들게 됩니다.


문화의 틀 안에서 그 문화에 젖어서 하나님을 배우면서 또 감사하면서 살게 하셨는데 23장에는 여러 가지 절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맨 첫 번째 언급하신 절기를 엿새를 일하고 제 칠일에는 안식한다. 안식의 명령을 말씀하셨는데 제가 세상 모든 종교를 비교하거나 연구하기 어렵습니다만 어느 종교에서 쉬는 것을 계명으로 정한 그런 종교가 없어요.


아시는 데로 불교나 유교나 이런 것은 사실 철학이나 윤리라 할 수 있는데 쉬는 게 명령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만이 사람에게 휴식이 필요하다 안식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놀라운 일이죠. 엿새도 일하고 이레도 일하고 여드레도 일하고 계속 일하게 되면 잘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온 세계를 돌아볼 때 엿새일하고 하루 쉬는 그런 국민들이 대체로 선진국이고 또 잘 살고 있어요. 또 건강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안식할 것이라.”


그런데 우리사회는 어떻게 된 게 일거리나 일자리가 모자라서 엿새 일할게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주5일째가 그의 상식화 돼가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불행해요. 지금 프랑스 같은 곳은 주4일 근무를 해서라도 일을 나누자. 아시는 데로 지금 우리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가지고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나 일거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므로 소득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프랑스는 가장 일찍이 주5일 근무하다가 주4일 근무로 프랑스가 빨리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일을 할 때 일을 너무 가리지 않으면 일이 있을 텐데 우리나라 청년들이 너무 일을 편안일, 쉬운 일 너무 가려서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사실 일손이 모자라서 외국에서 일손을 데려오고 하잖습니까.


가까운 일본만 가도 청년들이 딱 알아서 깨끗하고 쉬운 일자리라는 게 제한된다 해서 이것저것 안 가리고 일이 있으면 일을 하는 입장인데 한국 젊은이들은 좀 안 그런 것 같아요. 전부 거의 대학을 다 나왔고, 그런 입장에서 네가 그런 일을 하겠나? 부모도 그런 일을 안 시키려고 하고 본인도 안하려고 하고 그리고 아주 쉬운 일, 편안한 일, 깨끗한 일만 찾다 보니까 일자리가 모자라는 것 같아요.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안식도 안식이지만 안식보다 더 중요한 게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일 한 사람에게만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 일도 안하고 빈둥빈둥 논 사람은 안식을 누릴 권한도 없는 거죠. 그래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제7일은 쉬어라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절기가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명령인데 4절 이하입니다.


4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그날 정월 14일 저녁에 애굽에 있을 때 죽음에 사자가 애굽에 집들을 쭉 지나가다가 그 문 인방과 설주에 유월절 양에 피가 있는 곳은 넘어갔다. 죽음에 사자가 그 집에 장자를 건드리지 않고 넘어갔다는 걸 기념하는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달력으로 1월 14일 이죠.


그리고 그 이튿날 14일에 이튿날 먹을 빵을 반죽을 했는데 새벽같이 나오다 보니까 발효가 안 된 빵을 먹었다 해가지고 무교병을 먹는 절기가 15부터 한 주간 동안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도록 그렇게 규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은 사실은 14일 하루고, 그 이튿날이 바로 무교절로 접어들어서 일주일간 이어집니다. 6절


6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 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7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8 너희는 칠 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화제는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운 빵 굽는 냄새가 올라가는 그런 제사를 화제라고 합니다.


드릴 것이요 제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그래서 유월절 쉬고 또 그 이튿날 무교절 쉬고 그 다음에 주중에 일하고 또 제7일에도 쉬게 하는데 단, 그 기간에는 일은 하되 빵을 무교병을 먹도록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런데 명절하면 우리는 맛있는 것 해먹어야 되는데 그 맛없는 빵을 먹어라 하니까 일주일 동안. 제가 93년도 처음 시내산 밑에 가서 호텔에서 나오는 빵이 나오는데 내 평생에 그렇게 맛없는 빵을 안 먹어 본 것 같아요.


나중에 알았는데 무교병이라는 겁니다. 제가 어릴 때 못살고 가난해가지고 개떡이라는 걸 해 먹었어요. 개떡이 뭐냐 하면 정미소에서 보리를 정미하는데 겉껍데기를 도정해 내고 그 조금 안쪽에 맨 겉껍데기 안에 있는 그래도 꺼걸하고 맛이 없습니다.


보리쌀 속을 가지고 빵을 해도 별로 맛이 없는데 곁 껍데기 비슷한 것을 갈아서 하니까 보리등겨 같은 게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걸 소다를 넣어 가지고 소다를 얼마나 많이 넣는지 갈색이 될 때까지 소다를 넣어요. 거기다가 사카린을 넣어서 쪄서 먹는데 안 먹을 수도 없고 먹자니 맛도 없고 그래서 깨작깨작 먹다가 다 못 먹고 남은 수가 있어요. 뭐든지 조금 남으면 먹기 싫은 개떡만큼 남았다고 그래요.


얼마나 맛이 없는지, 그것을 또 개떡을 납작하게 해서 숭숭 썰어 가지고 손가락만큼 해서 그걸 개떡제비라는 것을 합니다. 수제비는 굉장히 고급에 속하고 개떡제비하고 호박잎을 비벼 넣어가지고 개떡 제비를 여름 내도록 먹는데 어른들은 호박잎하고 넣어가지고 “어~ 시원하다.”하는데 나는 시원하지도 않고 뜨겁기만 하고 어떻게 그렇게 맛이 없는지 목에서 꺼걸꺼걸한 게 안 넘어가려고 해요.


그런데 개떡만큼이나 맛이 없더라고요 시내산 밑에서 먹었던 무교병이란 게 그렇게 맛이 없어요.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 먹는 게 아니고 일주일씩 먹으려면 힘들어서 그렇게 하면서 애들이 분명히 물을 거든요. “왜 이렇게 맛없는 것을 주는데?” 하고 물으면 이제 역사교육을 하는 겁니다.


역사교육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는 거예요. 절기라는 게 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또 감사하며 살게 하는 거죠. 안식일은 뭘 기념하는 거예요? 뭘 감사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기념하는 날이 엿새 동안에 창조하시고 제 이레 때에 쉬었다 하시면서 하나님의 창조가 다 되었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시고 안식을 허락하신 건데 안식일에 쉼을 주시는 하나님을 감사할 뿐 아니라 천지 우주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은혜를 감사하는 그런 점이죠.


우리가 안식일만 감사합니까, 매일 감사한 게 아닌가? 매일, 여러분 아침에 뭘 감사해요? 잠 잘 잔거 감사한 거죠. 여러분, 불면증 걸려봐, 저에게 지금 가끔 질문하는 분들 중에 아무리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성경을 보시오”그렇게 해놓고 미안 하더라고요 성경이 무슨 수면제도 아니고, 어려운 책을 보면 잠이 와요.


헤겔의 법철학이나 역사 철학 같은 것을 보면 금방 잠이 올 겁니다. 가까운 분들 중에 잠이 안와서 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런 분들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여러분 잠 잘 자는 것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저도 전에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잠이 안 들고 밤이 깊어서 잠을 자려고 애쓰면 더 잠이 안 오고 이런 고통을 겪어 봤는데 잠 잘 자는 거 너무 감사한 거예요.


저녁에는 뭘 감사하는 거예요? 하루 동안에 우리가 사고 나지 않고 하루 잘 지낸 것, 일 잘하는 것 감사한 거죠. 그러니까 매일 감사하고 안식일은 또 감사하고 또 이스라엘 사람들은 월삭도 감사해요. 매월 초하루도 모여서 감사하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 9절에 보면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13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초실절이라고 하는 절긴데 초실절은 교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절기인데 교회에서는 유월절, 우리 같으면 부활절을 지키고 그 다음에 맥추절 지키고 그리고 가을에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에 이렇게 넘어가는데 초실절이 도대체 뭐냐? 초실절이 애매하게 되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마치 오순절, 칠칠절을 초실절 처럼 기록한 것도 있고 다르게 보면 그게 아닙니다.


유월절 시작할 쯤에 초실절 처럼 기록된 것도 있어요. 날짜가 어느 날이 초실절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러 자료와 성경구절 다 뽑아 봐도 쾌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떻든 곡식을 심어서 이것이 첫 열매를 거두는데 첫 열매가 우리처럼 벼농사가 아니고 밀농사, 보리농사입니다.


그래서 밀, 보리를 거두는 시기가 우리나라하고 조금 달라요. 우리는 지금 이제 보리 겨두고 모내기 했죠. 그렇게 보면 모내기가 열흘 전부터 시작되었다 하면 보통 망종, 6월 5일경 되어서 보리 겨두기가 끝나지 않 겠나 그래서 6월 25일 정도 안에 모내기가 다 끝나면 좋고 6월 25일 넘으면 모내기가 늦어져 간다 이렇게 보통 생각해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이스라엘 땅에 가서 보리가 익어 밀이 익어서 거둘 때 보면 3월입니다. 3월말에 갔을 때 이미 어떤 밭은 밀, 보리를 거둔 곳도 있고 밀이 보리보다 조금 늦게 익습니다. 보리하고 밀이 익는 시기가 최소 닷새 내지 열흘 정도 차이가 나요.


그 만큼 차이도 농가 월력에는 너무 손해를 많이 본다. 밀을 심었다가는 밀을 거두려면 보리보다 열흘식이나 있다가 거두기 때문에 모내기를 만약에 보리 거두면 열흘 빨리 할 수 있고 밀을 심었다가는 열흘 모내기에 늦어지면 벼농사에 지장이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옛날부터 밀이 소출이 조금 덜 나기도 하고 거두는 기간이 보리보다 열흘 늦은 것 때문에 벼농사에 지장이 있다 이걸 계산을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리를 많이 심고 보리를 적게 심었어요. 아마 연세가 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한지 이해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에 가보니까 우리가 3월 10일경 되었는데 우리 달력으로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은 유월절 절기에 가깝거든요. 유월절 절기가 3중순에서 4월 중순 그 사이에 유월절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때 이미 보리, 밀 거두고 빈 밭이 많아요 가보니까. 아직 거두지 않은 밭도 있으나 일찍 된 것은 이미 거두었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본다면 그 뒤에 15절을 보시면


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요제가 뭐냐 하면 첫 이삭 한단을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를 요제라고 그래요.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 제칠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이게 오순절이거든요. 맞죠. 오순절보다도 약 50일 앞서서 첫 열매를 드린 게 아니겠어요. 그런데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것도 먹지 못하게 하셨어요. 하나님께 먼저 첫 열매 한단을 드리기 전에는 생밀 이삭 비벼 먹는 것도 못하게 한다고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14절에 봐요.


(레위기 23: 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우리에게 옛날에 보릿고개가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도 첫 열매 고개가 있는 거예요. 첫 열매 드리기 전에는 못 먹으니까 하나님께 먼저 첫 열매 한단을 흔들어서 요제를 드리기 전에는 먹지 못하게 하니까 그날이 빨리 와야 먹을 텐데 그래서 그것이 오순절이 아니고 오순절보다 50일 앞서 유월절 안식일 그때가 첫 열매 거예요.


여러분 아시는 데로 예수님이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안식일 날 무덤 속에 있다가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부활의 첫 열매로 부활하신 거죠. 맞아요? 그러니까 첫 열매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인 것처럼 첫 열매도 유월절, 무교절 그 다음날이 첫 열매 드리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 맞아요.


그런데 출애굽기 34장 22절에 보면 맥추에 초실절이라 말을 하면서 맥추절에 마치 초실절인 것처럼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다고요. 그래서 성도들이나 목회자나 성경학자들이 다소 혼란이 있지 않나 싶은데 여기 자세히 계산해보면 첫 열매 드린 날부터 7주를 계속 계산해가지고 50일 된 날이 오순절이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 보면 첫 열매 가져온 달이 예수님께서 부활한 그날 인 거예요. 집에 가서 여러분이 연구를 해보세요. 저도 연구 해볼 테니까 16절


16 제칠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17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에바라는 게 어느 정도 크냐하면 한 에바가 23리터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한말, 우리말로 할 때 한말 보다 좀 더 커요. 조금 더 많은 정도 23리터 정도가 에바입니다. 그리고 힌이라는 단위가 나오는데 힌은 3.7리터 그러니까 4리터가 체 안 되는 거예요. 1한 갈론 보다 조금 더 작은 그런 정도입니다. 17절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18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19 또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수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20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지금은 사회 구조가 달라지면서 머슴 하는 게 거의 다 사라졌죠.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동네 이른바 양반이다 하고 에헴~하는 사람들은 일을 안 해요. 일은 머슴이 하는 것이지 주인은 일 안했습니다. 그리고 머슴들은 엿새일하고 하루 쉬는 게 아니고 한 달에 하루 정도 쉬는 절기가 있어요.


하루나 이틀 이렇게 정월에는 설은 다 쉬죠. 설 때는 머슴들도 주인이 명절 지킬 수 있도록 다 준비해 놓고 머슴도 자기 집으로 갔다 옵니다. 한 이틀, 사흘 쉬어가지고 오고 그 다음에 1월 달에 정월 대보름 하루 쉬어요. 대보름 보다 하루 더 쉬고 이틀 더 쉬고 합니다.


2월에 연등제라고 불교 명절인데 또 하루 쉽니다. 삼월 삼짇날도 산에 취사도구를 챙겨서 밥해먹으려 가요. 삼월 삼짇날 우리도 머슴 아니라도 우리는 어릴 때 다 갔어요. 삼월 삼짇날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면서 그때 산골짝에 가서 처녀 총각들이 모여가지고 밥해먹고 놀고 합니다.


굉장히 즐겁고 했어요. 밥 해먹는 게 집에서 해 먹는 것 보다 산에 가서 밥을 해먹으면 반찬 별로 없어도 맛이 있어요. 4월에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칠석, 8월 추석, 9월 달에는 못 놀아요. 9월 달에는 노는 날이 없고 10월도 바빠서 놀지 못하고 동짓달에는 팥죽 끊여먹는 정도 그의 그래도 머슴들이 한 달에 하루 정도는 놀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석 때는 사실 머슴들이 놀기는 노는데 추석에 며칠 놀기 위해서 미리 가축들이 먹을 소꼴하고 무진장 베 놓고 가야 돼요. 사실 머슴들이 쉰다 해도 쉬는 게 아니죠. 어떻든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거저 머슴들하고 노동자들이 한 달에 하루 정도 노는 정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최소한도 60일 정도를 쉬었다고 안식일 쉬죠. 그 다음에 몇 며칠 식 누이는 명절이 있어요. 그래서 365일 정도 중에 대체로 300일 정도 일하고 65일 정도는 쉰다. 이렇게 봐요. 이스라엘 달력이 365일 아니고 360일이기 때문에 한 60일 쉬는 걸로 보면 그의 틀림없을 겁니다. 그 다음에 22절 보면


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참 이것도 특별한 문화죠. 우리나라에는 감을 따다가 맨 꼭대기에 까치밥 몇 개 남겨두는 그런 문화는 있어도 곡식을 베다가 밭모퉁이에 귀퉁이에 얼마 남겨 놓는 그런 것 없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다 베지 말고 조금씩 남겨두라. 객이나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를 위해서 남겨두라 또 이삭을 주인이 다 줍지 말고 베다가 떨어지거든 두라는 겁니다.


그리고 곡식 짐을 한 짐 짊어지고 가는데 한단이 출렁하고 흘렀다 그러면 지게 세워놓고 그걸 줍지 말고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위해서 떼어 주시는 거 보다 하고 놔두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삭을 줍다가 세상에 이삭 하나 줍는 것도 큰 이삭을 보면 반가운데 한 단이 흘려있으니까 얼마나 놀라겠어요.


사람이 살다가 그런 즐거움이 있어야지 하면서 줍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제나 이런 마음이 하나님 마음에서 약한 자,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베려하는 그런 법이 있었다는 거예요.


아시는 데로 여러분 보아스라는 사람이 룻기에 있잖아요. 보아스는 흘린 것을 줍지 말라든지 귀퉁이에 좀 남겨두라는 이런 게 아니고 일꾼들 보고 일부러 주우면서 뽑아서 흘려 놓아라. 줍는 사람을 위해서 더러 흘려주어라 하는 이런 장면이 나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아스 집에 복을 주신 거죠. 23절


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나팔절이라고 하는 절기입니다. 7월 1일 이스라엘 달력으로 일곱 번째 달인데 그것이 우리는 1월 달이 새해라고 우리는 보통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7월 1일 나팔을 불면서 이게 새해가 돼요. 그리고 7월 1일이 나팔절이고 7월 10일 대속죄일이고 7월 15일이 초막절이예요.


7월 달이라고 하는 달은 우리나라 달력으로 하면 10월정도 됩니다. 우리 보다 3개월 늦어요. 달력이 늦게 가요. 우리가 3월에서 4월 될 그때가 이스라엘 겨우 1월입니다. 그러니까 7월하면 우리달력으로 10월 되는데 그때는 포도를 따서 다 포도즙을 짜서 포도주를 담그고 나면 1년 농사가 마무리 되는 땐데 그때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초막절 이런 절기가 몰아 있어서 7월은 그의 쉬는 날이 많은 거죠. 25절


25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7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28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29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날은 즐거운 행사를 하면 안 되고 마음속으로 1년 동안 지은 죄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괴롭게 하고 금식을 하던지 이렇게 스스로 괴롭게 하는 그런 날입니다. 30절


30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31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32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35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36 칠 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초막절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금 지키지 않지마는 우리로 하면 추수감사절과 같습니다. 초막절을 다른 이름으로는 장막절, 혹은 다른 이름으로 수장절, 수장절이라는 말은 거두어 저장했다. 1년 추수가 다 끝났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 정신을 기려서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는 겁니다.


초막절 규례 중에 나중에 신명기에 다소 나오기는 합니다마는 안식년 초막절 다는 말로 면제년 초막절 7년마다 도래하는 면제년 초막절에는 그냥 절기를 지키는 게 아니고 온 백성을 남자, 여자, 유치원생, 외국인 까지 다 불러 모우고 성경을 온 국민에게 읽어주고 다 설명해 주고 다 깨닫게 해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해라. 이렇게 명령한 게 신명기 31장 9절 13절에 또 기록되어 있습니다. 37절


37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번제와 소제와 희생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지니


전제라는 것은 술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제사에 가끔 술을 드리고 하는데 하나님의 제사에도 술이 있었어요. 그걸 전제 혹은 관제 이렇게 하는데 전제는 포도주를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38절


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 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그 사이는 일을 합니다.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에 칠 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유대인은 지금도 초막절을 지키는데 초막절에는 방에서 자지 않습니다. 반드시 초막을 짓는데 초막이 뭐냐 하면 막대기를 이렇게 세우고 그리고 또 그걸 세워서 이렇게 상낭처럼 걸쳐서 거기다 풀을 덮어 가지고 초막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소 먹이러 가서 초막을 많이 세웠어요. 나무 막대기를 이렇게 걸쳐서 움막 비슷하기도 한데 움막은 움막인데 풀을 덮었기 때문에 그걸 초막이라고 합니다. 거기 옹기종기 들어가서 소나기가 오면 피하기도 하고 그런 초막을 지어봤어요.


유대인들은 초막을 옥상에 짓거나 아니면 베란다나 발코니에 지어가지고 누워 천장을 보면 초막을 엉성하게 지어가지고 반드시 별이 보여야 돼.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방에서 자다가 갑자기 옥상에 올라가 자거나 초막을 짓고 자면 즐거워 한다는 겁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은 우리는 1년에 한번 이렇게 하지만 우리조상들은 광야에서 40년간 이렇게 하였단다 하고 역사교육은 하는 겁니다. 40절


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에 칠 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


칠월이 아까 말씀하신 데로 우리나라 같으면 10월경 되는데 그때 되면 춥지도 덥지도 않고 참 좋은 기후입니다. 그리고 온갖 과일이 풍성한 때죠. 42절


42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44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이것은 아주 원시절기 원래 초창기 이스라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시 말하면 40년 밖에 안됐잖아요. 애굽에서 나와서 역사를 시작하니까 그 짧은 기간에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절기를 지켜라 한 것이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아시는 데로 유대인 절기가 자꾸 늘어납니다.


12월 25일쯤 되면 수전절이라는 게 나와요. 그 다음에 푸림, 부림절이라는 게 또 나옵니다. 역사가 진행되다 보니까 기념하고 감사할 일이 많아지니까요. 우리 역사는 더 오래되었죠. 유대인들이 없는 성탄절도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절기를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과거에 은혜 베푸신 큰 은혜와 또 거기 담겨있는 진리를 백성들을 잊지 않게 교육하는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념하고 기억하고 기록해서 잊지 않게 항상 하나님께서 베푼 은혜를 대대로 자자손손 잊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 명령이고 그 문화 속에서 자라가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성탄절 12월 25일이 예수님 태어난 날이 아니다. 그래서 그걸 지키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태양의 신을 섬기는 로마의 절기를 본 따서 것이다 하면서 아주 길길이 뛰면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요.


대게 침례교 쪽이거나 안식교 같은 데에서는 성탄절을 대게 싫어합니다. 그런데 여기 여러분 중에 잘 모르겠는데 제가 볼 때 예수님이 12월 25일 탄생한 게 아니라는 것을 다 압니다. 아는데 그 태양신 섬기던 날을 하나의 문화를 바꾸어서 우리가 예수님 탄생한 날을 사실 잘 몰라요. 모른다고 우리는 모른다 이렇게 넘어가지 않고 로마사람들이 태양신을 섬기는 그날을 태양신 섬기는 것을 그만 두어 버리고 예수님 오는 날로 기념하면서 성탄절 문화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나온 지 몰라요.


성탄절에 교회 재미있단다 해서 왔다가 그것이 교회 첫발이 되어 신앙생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좋은 문화를 만들면 그 문화로 말미암아서 하나의 문화 선교가 이루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도 절기 때 마다 지역주민들이나 일가나 친척 이런 분들을 교회 모셔 와서 전도가 되는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 할 때부터 있었던 은혜의 역사를 백성들이 자자손손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념하며 감사하게 하는 문화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큰 은혜의 절기들이 많이 있어서 그 절기 때마다 감사하며 매일도 감사하며 안식일 마다 주일마다 주님의 부활과 하나님의 창조를 또 감사하며 자고 깰 때 단잠주신 것과 건강 주셔서 일하게 하신 것 늘 감사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며 항상 선을 쫒는 거룩한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 유앙겔리온(http://www.korba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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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3장을 기준으로 만든 성경의 주요절기들

전광훈 목사 성경속 7대 명절의 축복(예수)을 받아라

하나님이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과 신약시대 주님이 구원해 주신 성도들 심령 가슴속에 이루어질 축복.
성경속 7대 명절 속에 숨 어있는 계시의 복(예수)을 받아라.
현재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나는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 에 없기에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찾아 오시 어 십자가위에서 희생당하여 거룩한 피를 흘려 자기 백성들의 죄를 깨끗이 씻어 용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 이스라엘 민족은 7대 명절을 지키며 세계제1의 복을 받음
-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구원해 주시는 큰 7가지 사건
-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시간표
- 절기란 지명된 장소, 지명된 시간에 하나님과 만나 데이트 하자는 것
- 죄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이해X, 깨닫지X,

1. 유월절 ㅡ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 어린양으로 오 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 해 속죄양, 희생양으로 오심을 기념하라.
예수가 유월절 희생양으로 오셔서 이렇게 죽으리라.
-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오시면 우리의 죄를 위해 이렇게 죽으리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설 명하기 위해 생겨난 명절(복음의 첫단추)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 그리 스도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심

-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고 마귀의 참소를 이기고 내 양심을 이긴다

- 예수의 피는 완전한 구원, 영원한 속죄

- 예수의 피가 날마다 우리에게 뿌려지는 의식을 행하 는 분이 성령이고 예수의 피가 날마다 우리의 마음속 에 뿌려지는 의식을 행하여 날마다 유월절이 내게 임 하는 것이다

➡️죄가 내 안에 남아있지 않고 나를 깨끗하게 해주는 의식을 성령이 행하는 것

오늘(2023. 4. 7.)은 유대 절기로는 유월절 : 예수님 이 고난 받으시다가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친히 대속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살이 찟기 시고 피흘려 돌아가신 날인 성(금요일)입니다.

성도인 나의 구원 구속 천국가는 것

2. 무교절 ㅡ 내일(토요일)은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는 무교절입니다. 누룩, 발효가 없는 무교병, 밀가루떡

성경의 예언되어 있는 그대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땅, 무덤 속에서 시체로 3일간 있었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 속에 그림자로서 요나가 밤낮 3일간 물고기 배속 에서 있었습니다. ​

-누룩이 없는 무교병이라는 떡을 만들어 보자기에 싸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3일이 지나면 그 날이 무교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뒤에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 속에서 3일 있을 것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체험을 시켜주는 명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밤낮 3일동안 들어간 것같이 예수가 3일동안 무덤 속에 들어갈 것에 대한 예표 (마12:38~40)

구약시대 바벨론에 끌려가 70년동안 종살이 무덤 속 에 집어넣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무덤속에서 있었습 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모리아 산 제단위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신약시대 우리 성도들을 물질, 자녀, 사업부도, 환경 의 무덤 속에 집어 넣었다가 각종 물질 돈 ㅡ> 초실절, 영, 사업 자녀, 사역 최후 재림의 부활, 구원해 주셨습 니다 ​

성도들의 성화 - 자아파쇄

3. 초실절 ㅡ 안식 후 첫날(일요일)인 부활절은 유대절기로 초실절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단 첫 곡식을 제사장에게

먼저 가져다 드렸습니다.

이는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셔서 죽은자 가운 데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실절이 되면 첫곡신단을 잘라서 제사장에 갖다바침

-예수는 부활의 첫열매(고전15:20~23)

-예수님께서 초실절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부활하심

-예수님이 부활한 그 부활의 첫곡신단은 아버지께 보이기 전에 사람이 손댈수가 없다(요20:17)

돌 무덤 앞에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가 부활하였다 그러나 나를 만지지 말라. 부활한 첫 곡 식단인 내가 아버지께 먼저 보여야 하니라.

유대교도들의 유대력과 좀 차이는 있지만 우리 성도들은 사망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 양하고 또한 그 부활신앙을 추구하며, 또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마라나타(주여 오시옵소서).

4. 오순절(성령세례, 또 다른 이름 칠칠절) : 성령세례 는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을 가리키기 위해 주신 오순절 절기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서 너희에게 보내주리라. 오순절날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주리라.

오순절(=칠칠절)

칠칠절은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7주가 지난 날입니다. 첫 열매를 거두고 50일 째, 수확한 밀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칠칠절을 ‘맺추절’또는 ‘초실절’,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복을 따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칠칠절을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주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 곳에서, 이스라엘과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성령강림(행2:1~4)

-성령을 오시게 하는 분은 예수, 성령세례는 주님이 베푸시는 것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이후 무덤에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성도들에게 자기의 또 다른 이름인 성령(지혜와 계시의영)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 셨습니다.

그 약속의 성취로 오순절날 성령강림하신 영적 인격체이신 성령님이 성도의 지, 정, 의에 변화를 깨닫게해 주십니다. 죄 가운데 있는 영적인 어두운데서 감추어진 것을 밝히 드러내주시는 성령은 영적인 힘은 믿고 알고 깨닫는데서 나옵니다. 이전에 깨닫지 못하던 것을 성령님이 찾아오시어 영적으로 깨닫게 해주십니다. 육적인 너희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하여도 알지 못한다는 말씀에서 주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지각의 눈으로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십니다.

5. 나팔절 ㅡ 미래의 사건, 재림성도 ㅡ 주님의 오심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천사장과 하나님의 나 팔소리 천지진동하실 때 예수 가 구름타시고 함께 오 실 것을 계시.

-구약시대에 나팔절이 되어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불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모으신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주님이 혼자 오지 않고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오신다( 마24:29~31; 살전4:13~16)

-우리는 주님이 내일 오신다 생각하고 늘 깨어있어야 한다

6. 속죄절 ㅡ 주님의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
ㅡ 우리 예수를 믿었을 때, 이미 죄 용서를 받았 지만 천성문 앞에서 또 한번 죄 회개를 하는 기회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축복,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축복.

-성결케하시리라(성결식, 세마포)

속죄절이 온 사람들은 곧바로 회개

-주님이 재림하신 뒤에 구원받은 성도들을 모아 하나님께 열매로 올려드림(계5:9~11)

-예수 믿는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7. 장막절 ㅡ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이루리라.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이 땅에서 천년왕국을 이루 신다 (요한계시록 21장 1~3절)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성이 내려와 이 땅에 천년 왕국 을 이루신다

-한국교회의 목사가 천년왕국을 설교를 하지않아 자 체적으로 부패함.

요셉 - 천년왕국 시범.

다윗 - 예루살렘왕으로 입주하면서 예수그리스도 호산나.

광화문 성도들에게 시온의 대륙간 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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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명절의 축복을 받으라!

하나님이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과 신약시대 주님이 구원해 주신 성도들 심령 가슴속에 이루어질 축복 성경속 7대 명절 속에 숨어있는 계시의 복(예수)을 받아라.
현재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나는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 에 없기에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찾아 오시 어 십자가위에서 희생당하여 거룩한 피를 흘려 자기 백성들의 죄를 깨끗이 씻어 용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1. 유월절 :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 어린양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 해 속죄양, 희생양으로 오심을 기념하라.
예수가 유월절 희생양으로 오셔서 이렇게 죽으리라.
-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오시면 우리의 죄를 위해 이렇게 죽으리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설 명하기 위해 생겨난 명절(복음의 첫단추)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 그리 스도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심
-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고 마귀의 참소를 이기고 내 양심을 이긴다
- 예수의 피는 완전한 구원, 영원한 속죄
- 예수의 피가 날마다 우리에게 뿌려지는 의식을 행하 는 분이 성령이고 예수의 피가 날마다 우리의 마음속 에 뿌려지는 의식을 행하여 날마다 유월절이 내게 임 하는 것이다

➡️죄가 내 안에 남아있지 않고 나를 깨끗하게 해주는 의식을 성령이 행하는 것

오늘(2023. 4. 7.)은 유대 절기로는 유월절 : 예수님 이 고난 받으시다가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친히 대속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살이 찟기 시고 피흘려 돌아가신 날인 성(금요일)입니다.

성도인 나의 구원 구속 천국가는 것

​2. 무교절 : 내일(토요일)은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는 무교절입니다. 누룩, 발효가 없는 무교병, 밀가루떡

성경의 예언되어 있는 그대로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땅, 무덤 속에서 시체로 3일간 있었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 속에 그림자로서 요나가 밤낮 3일간 물고기 배속 에서 있었습니다. ​
-누룩이 없는 무교병이라는 떡을 만들어 보자기에 싸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3일이 지나면 그 날이 무교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뒤에 예수님의 시체가 무덤 속에서 3일 있을 것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체험을 시켜주는 명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밤낮 3일동안 들어간 것같이 예수가 3일동안 무덤 속에 들어갈 것에 대한 예표 (마12:38~40)
구약시대 바벨론에 끌려가 70년동안 종살이 무덤 속 에 집어넣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무덤속에서 있었습 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모리아 산 제단위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신약시대 우리 성도들을 물질, 자녀, 사업부도, 환경 의 무덤 속에 집어 넣었다가 각종 물질 돈 ㅡ> 초실절, 영, 사업 자녀, 사역 최후 재림의 부활, 구원해 주셨습 니다 ​

성도들의 성화 - 자아파쇄

​3. 초실절 : 안식 후 첫날(일요일)인 부활절은 유대절기로 초실절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단 첫 곡식을 제사장에게  먼저 가져다 드렸습니다.
이는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셔서 죽은자 가운 데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실절이 되면 첫곡신단을 잘라서 제사장에 갖다바침
-예수는 부활의 첫열매(고전15:20~23)
-예수님께서 초실절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부활하심
-예수님이 부활한 그 부활의 첫곡신단은 아버지께 보이기 전에 사람이 손댈수가 없다(요20:17)
돌 무덤 앞에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가 부활하였다 그러나 나를 만지지 말라. 부활한 첫 곡 식단인 내가 아버지께 먼저 보여야 하니라.

유대교도들의 유대력과 좀 차이는 있지만 우리 성도들은 사망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 양하고 또한 그 부활신앙을 추구하며, 또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마라나타(주여 오시옵소서).

​4. 오순절(성령세례, 칠칠절) : 성령세례 는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을 가리키기 위해 주신 오순절 절기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서 너희에게 보내주리라. 오순절날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주리라.

오순절(=칠칠절)

칠칠절은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7주가 지난 날입니다. 첫 열매를 거두고 50일 째, 수확한 밀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칠칠절을 ‘맺추절’또는 ‘초실절’,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복을 따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칠칠절을 지켜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주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 곳에서, 이스라엘과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성령강림(행2:1~4)

-성령을 오시게 하는 분은 예수, 성령세례는 주님이 베푸시는 것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이후 무덤에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성도들에게 자기의 또 다른 이름인 성령(지혜와 계시의영)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 셨습니다.

그 약속의 성취로 오순절날 성령강림하신 영적 인격체이신 성령님이 성도의 지, 정, 의에 변화를 깨닫게해 주십니다. 죄 가운데 있는 영적인 어두운데서 감추어진 것을 밝히 드러내주시는 성령은 영적인 힘은 믿고 알고 깨닫는데서 나옵니다. 이전에 깨닫지 못하던 것을 성령님이 찾아오시어 영적으로 깨닫게 해주십니다. 육적인 너희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하여도 알지 못한다는 말씀에서 주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지각의 눈으로 영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십니다.

5. 나팔절 : 미래의 사건, 재림성도 ㅡ 주님의 오심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천사장과 하나님의 나 팔소리 천지진동하실 때 예수 가 구름타시고 함께 오 실 것을 계시.

-구약시대에 나팔절이 되어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불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모으신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주님이 혼자 오지 않고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오신다( 마24:29~31; 살전4:13~16)

-우리는 주님이 내일 오신다 생각하고 늘 깨어있어야 한다

​6. 속죄절 : 주님의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 ㅡ 우리 예수를 믿었을 때, 이미 죄 용서를 받았 지만 천성문 앞에서 또 한번 죄 회개를 하는 기회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축복,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축복.

-성결케하시리라(성결식, 세마포)

속죄절이 온 사람들은 곧바로 회개

-주님이 재림하신 뒤에 구원받은 성도들을 모아 하나님께 열매로 올려드림(계5:9~11)

-예수 믿는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7. 장막절 :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을  이루리라.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이 땅에서 천년왕국을 이루 신다 (요한계시록 21장 1~3절)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성이 내려와 이 땅에 천년 왕국 을 이루신다

-한국교회의 목사가 천년왕국을 설교를 하지않아 자 체적으로 부패함.

요셉 - 천년왕국 시범.

다윗 - 예루살렘왕으로 입주하면서 예수그리스도 호산나.

광화문 성도들에게 시온의 대륙간 열리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 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 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 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형제들아 우리가 너 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 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 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 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 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 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 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 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 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 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 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 하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 희에게 있을지어다.

성령하나님의 도움없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는 것 은 사장의 생각과 의도를 모르고 충성하면 할수록 회 사를 망치는 것과 같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내가 복 음식으로 믿고 충성을 다하면 그대로 대한민국과 교회 를 망칩니다. 이런 사람을 썩을 놈이라 욕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과 사람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과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 를 익었다고 말합니다.

인생에 있어 자기 자신을 썩게 만드는 일과 자기를 익게 만드는 일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옳고 좋은 선택으로 행복한 인생을 걸 어 갔으면 합니다.

시편 33: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 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동성애를 옹호하며 주사파에 빠진 좌빨 목사들은 광 명한 천사로 변장한 사탄의 종이다. 자유 대한민국을 부인하고 북한을 찬양했던 신영복을 존경하며 좋아하 는 목사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 다. 소ㅇㅇ목사를 비롯한 몇 명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청와대 문재인의 초청에 따라 들어가서 문통과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나와서 하는 말이 대통령이 나 끗하게 말하는게 상당히 온순해 보이더라고 주변에 말했던 목사 넘들아. 그 넘은 주님의 교회를 무너뜨리 고 있는 양의 탈을 쓴 사탄이야 그를 보고 좋다고 야이 개새끼들아. 과거 일제 시대 때 신사 참배했던 잘못을 또 저지르느냐? 일제시대 때 신사 참배를 찬성했던 목사들은 그 당시 목사들의 95%였습니다. 그 결과 일본의 교회 말살과 6.25전쟁이라는 참혹한 심판을 하나님께 받았습니 다. 따라서 나치를 비롯한 군주전 제주의나 공산주체 사상과 기독교는 이 땅에서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대한민국을 불법장악하고 있는 문통 주사 파정권에게 접붙이고 있는 목사들은 제2의 신사참배 를 하는 것과 같은 영적싸움에서 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라서 주사파의 신분으로 국회의 원 후보에 나오는 것을 중앙선거위원회는 허가를 해주 면 안됩니다.

창세이전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으로 계셨던 예수님

천지 창조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예수님이 직접 말씀 하시기로 나는 태초에 상고니라. 즉, 예수님은 이 세상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계셨던 창조주이시다. 자신이 직접 말씀하시기로 내가 사람도 만들었다고 말 씀하셨습니다.

ㅡ신약성경 골로새서 1장 15~17절 : 피조물보다 먼 저 나신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 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 이나 주권자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서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예수님)안에 함께 섰 느니라.

ㅡ신약성경 요한복음 1장 1절 : 태초에 말씀(영)이 계 시니라. 이 말씀(로고스)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 내신 빛으로 세상을 어둠의 삶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하기위해 오셨다고 외쳐 선포하시며 하나님의 말 씀을 순종하여 증언한다.

ㅡ요한복음 17장 :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 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 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 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 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 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 옵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 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 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 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 들을 보전 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 가 되게 하옵 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 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ㅡ신약성경 고린도후서 4장 4절 : 그 중에 이 세상의 신(혼돈은 사탄이 만든 것)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 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 상이니라.

ㅡ신약성경 고린도후서 4장 6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말씀과 빛이 곧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의 말씀(예수님)으로 온 우주가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예수)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 수님을 모신 성도는 생명과 빛을 은혜로 받은 자입니 다. 우리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늘 지혜의 말씀(영, 로고스, 생명의 빛)이자 생명(예수, 영생)나무라 천지창조 전에 하나님 나라의 식양(설 계도)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복음(예수님)을 알아가는 칠단계는 그리스도를 위하 여, 그리스도의 의하여, 그리스도의 것으로 만드셨습 니다.

첫째날 ㅡ 사탄이 가지고 있는(흑암, 공허) 어두운데서 사탄이 만든 혼돈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심.

창세기 1장 : 빛이 있으라 하신 그 분이 예수님이시다. 본래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시다.

요한복음 1:1~18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 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 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 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 기로 말미암아 믿게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 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 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 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 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 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 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 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ㅡ구약성경 창세기 1장1~31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 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 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 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 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 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 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 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 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 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 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 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 기에 좋았더라.

저녁 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 에 광명체 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 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 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 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 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 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 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 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니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 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 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 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 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 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 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 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 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 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 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 대로 사람을 창조하시 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 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 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 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 노 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 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 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 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ㅡ구약성경 시편 33장 6절 : “여호와의 말씀(로고스) 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 로 이루었도다.”

ㅡ신약성경 베드로전서 1장 20~21절 : 그는 창세 전 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 니라

ㅡ신약성경 고린도전서 8장 6절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 아 있느니라.

ㅡ신약성경 에베소서 1장 4절 : 곧 창세 전에 그리스 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ㅡ신약성경 골로새서 1장 16절 : 만물이 그에게서 창 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 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자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 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해서 창조 되었고,

하나님의 설계도(식양)에 따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 심이라.

ㅡ신약성경 골로새서 1장 15~20절 : 그는 보이지 아 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 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 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 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 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 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 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ㅡ신약성경 베드로전서 1장 18~21절 : 너희가 알거 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 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 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 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 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 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 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 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참 이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 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 보 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 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러 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 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 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사도바울은 구약성경 창세기 1장 1절을 영적으로 보 고는 이 땅에 찾아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을 하셨 습니다.

ㅡ신약성경 요한복음 1장 : (예수)빛이 있으라.

ㅡ구약성경 창세기 1장 1~31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 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 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 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1. 첫째날이니라. 빛(예수)이 있으라. 빛되신 예수님 의 광체가 나옴. 이 때까지는 사탄이 가지고 있는 (어 두운 흑암, 공허, 근심,걱정, 스트레스, 두려움)것들이 충만했습니다.

독생자의 영광스런 빛으로 물리치시고 창조 질서를 회복하셨습니다. 광명한 빛이 찾아오니 어두움이 순 식간에 물러가니라. 그는 본래 창조주 이십니다.

사탄은 악하고, 마귀의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 이니라. 땅에서 나오는 자기자랑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는 첫째로 순수하십니다.

복음(예수)을 알아가는 칠단계 중 1단계와

7대(예수) 명절을 주신 이유는 신약시대 유대인들에 게 주신 명절이 축복이며, 오늘날 우리 영적 유태인인 성도들의 심령 속에 찾아 오는 축복입니다.

ㅡ첫번째 절기인 유월절은 그림자로서의 절기이다.

가. 유월절 : 이렇게 죽으리라. 양의 죽음 ㅡ 구원

이제 실체이신 예수님의 구원(최고의 축복)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이렇게 죽 으리라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ㅡ구약성경 출애굽기 12장 1절 : 유월절이 영적 삶의 출발점이다.

양을 잡는

ㅡ신약성경 요한복음 1장 21절 :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부르십시오. 왜냐하면 바로 그분께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 입니다.

ㅡ신약성경 요한복음 1장 29절 : 이튿날 요한이 예수 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 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 속에 찾아오신 삼위일체 하나님이 죄성을 가진 우 리 성도들을(자녀, 질병, 환경, 고난)의 무덤(시련) 가 운데 넣어 훈련시키신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려고 우 리 성도들을 변화, 성화시켜 주셨습니다.

ㅡ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책들(생명책, 행위책)이 펼 쳐진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 름이 기록된 생명록과 행위록은 예수를 믿지 아니한 사람들의 행위가 일일이 적혀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으로 살아계신 주님께서 입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찾아오셔서 나의 죄를 위 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었습

니다.

이 것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을 성도라고 합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애굽에서 탈출할 때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 그러면 죽음의 천사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가리라. 그림자요 희생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단번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성도들 (선악과 먹음- 하나님의 판단 결재권을 사람이 가진다 는 의미)을 죽음에서 살리시는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 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 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 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나뉜다는 것의 그림자는 성전안에서 지성소로 들어 갈 때 칸막이로 있던 두꺼운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진 다는 의미이며, 실체이신 주님의 몸이 찢기는 것을 표 현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자아가 하나님과 세상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을 의미)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2. 둘째 날이니라 ㅡ 복음(예수)을 알아가는 칠단계 중 두번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사람들 가까이에 직접 찾아오심을 뜻한다.

​나. 무교절 : 3일동안 무덤에 있으리라.

ㅡ7대 절기 중 두번 째 무교절이라ㅡ 오늘날 성도들 을 위하여 7가지 구원의 역사요 뜻은 무덤에 있으리 라. 누룩을 넣지 않은 밀가루 떡을 구워 보자기에 쌓서

3일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꺼내어 가족이 함께 먹었 더라

예수님이 죽으셔서 땅속에 3일간 있으리라 ​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간 무덤 속에 있었던 것 처럼 예수님(인자)도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아리 마데 요셉이 준비한 무덤 속에서 3일간 갇혀 계셨습 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의 생활을 함.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 종 살이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 부터 요단강물에서 침례의식 을 받으시고 뭍으로 나오실 때, 하늘로 부터 들리는 하 나님의 음성과 시내산 구름 위에서 모세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 그리고 변화산 구름 속에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 및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 아버지 하 나님께 간구하실 때, 예수님께서도 “내 뜻대로 마옵시 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에도 동일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신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하신 이후 40일 만에 마가의 다락방 에서120명의 제자들이 머리 위에 임하신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2020년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영적 죽음인 무덤 속에 있던 옛 사람(선악과를 토해내는 의미, 자아, 뜻, 의지

견해) 판단의 삶을 초월한 성도의 영적 성화를 의미 합니다.

마귀는 관능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미혹, 유혹한다.

그러나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은 화평하고 평 안한 사람들로 언제나 평화롭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악을 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있는 자 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 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 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 이 되니 이는

3. 셋째 날이니라 ㅡ 복음(예수)을 알아가는 칠단계중

세번째로 죄없으신 어린양 예수님이 나와 우리 성도들 의 죄값을 대속하시고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다. 초실절 부활 ㅡ 날에 3일만에 부활했습니다.

ㅡ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5장 : 20절 잠자는 자들의

부활의 첫열매 첫 곡식단은 제사장에게 드려야한다.

7대 명절 중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부활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초실절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밤,낮 3일을 있은 것처럼 인자도 3일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우리 주님과 장차 성도들의 부활(삼일 후 물 고기가 뱃 속에 있던 요나를 토하여 살려내니라)을 의 미하는 절기입니다.

마귀의 사람들은 교만하여 사람 들에게 강압적으로 난 폭하게 하면서 가정을 파괴 한 다. 그러나 하늘의 지혜 를 알도록 도와주시는 성령님 은 성도들을 강압적으로 몰아붙치지 않으시고 부드 럽게 설득하여 알아 듣도록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 아 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또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여 귀한 믿음의 가정을 이룹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 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 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 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 것 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낮과 밤 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 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4. 넷째 날이니라 ㅡ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셨습니다.

복음(예수)을 알아가는 칠단계중 네번째 명절로 십자 가 위에서 자신을 제물로 내어놓고 죽으셨습니다.

라. 오순절 : 성령세례를 부어주리니 너희 성도는 오 순절의 성도가 되자

7대 명절중 오순절 성령충만을 받은 제자처럼 순복음 교회에서 주장하는 오순절 교인이 아닌 오순절의 성도 가 됩시다.

ㅡ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 2절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이 강림하신 후 베드로는 그 사건을 해석하면서 요엘 서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께서 말세에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무엇입니 까?

“ 내 영을 부어주리니” 여기서 ‘내 영’은 성령을 가리키 고, “부어준다”는 말은 물을 부어주듯이 성령을 충만 하게 부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성령 의 역사가 있었으나 물을 한 방울 씩 떨어 뜨리듯이 특정한 사건에, 특별한 사람에게, 일 시적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성령을 소낙비처럼 부어주시겠 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요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오순절 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누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까? “만민에게” 부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만민”은 예수 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어떤 특정한 직분 자나 특별계층의 사람에게만 부어주는 것이 아니고 모든 믿는 자에게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28절에 ‘자녀들, 늙은이, 젊은이’,

29절에는 ‘남종, 여종’에게 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어린아이나, 남 종이나, 여종이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이방인이나 차 별이 없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그 말세에 살고 있습니 다.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 신다는 말씀대로 오순절에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셨고, 우리들에게도 성 령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역 사하셔서 예수 믿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은혜받 게 하셨습니다.

ㅡ신약성경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 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ㅡ신약성경 로마서 8장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 구절의 뜻 은 누구든지 그 사람 안에 성령이 없으면 그 사람은 예 수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 안에는 성령이 계신다 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요엘서에 예언한 대로 우리가 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으면 일어날 것이라고 한 일들이 우 리에게 일어나고 있는지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1. 성령을 받으면 꿈이 생깁니다. 28절에 “너희 자녀 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성령이 임하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꿈을 꾸며, 이상을 볼 것이라고 말 했습니다. 

1)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성령을 받으면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입니다. 장래 일은 예언한 다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이 예언했습 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요엘같은 선지자들 이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자녀들이 예 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언은 미래의 막연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 입니다. 개인의 운세를 점치는 미신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압니다. 이 세상은 끝이 가까웠고 예 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 믿으 면 구원 받고 믿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 고 전합니다.

2). “노인들이 꿈을 꾸며” 여기에 말하는 꿈은 밤에 자 면서 꾸는 꿈이 아니라, 마음속에 큰 비전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는 큰 이상, 목표, 비전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노인들도 꿈을 꿉니 다. 노인들이 ‘나는 이제 나이가 많다. 나는 이제 늙었 다. 나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꾸며, 영혼 구원을 갈 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은퇴 후에 외국으로 선교하 러 가고, 어른들이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3).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이상 은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꿈속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말하고, 비몽사몽간에 환 상을 보았다는 말을 잘합니다. 또 천국에 갔다 왔다. 지옥에 갔다 왔다 하면서 이상한 주장을 하면서 사람 들을 미혹시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영적인 이상을 볼 것이라는 것 입니다. 복음에 대한 꿈을 꿀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술이나 마시고 방탕하면서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꿀 것입니다. 여기에 말한 3가지 ‘장래 일, 꿈, 이상’ 등은 다 같은 것입니다. 성령으로 작은 자로 부터 큰 자까지 영적인 눈을 뜨고 마음에 변화를 받아 하나님을 알게 되고 복음전파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갈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팔절 ㅡ 휴거

속죄절 ㅡ

장막절 ㅡ 새 예루살렘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 지를 분명히 알고 영혼 구원의 사명에 붙들려서 살아 갈 것입니다.

성령받은 사람에게는 동일한 특징이 한 가지 나타나 는데 그 것은 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런 꿈을 꾸기를 바랍니다. 장래 일을 말하며, 환상을 보고, 비전을 가지고,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70세 80세 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꿈을 갖게 되 길 기원합니다. 믿음으로 말하며 성령으로 생각하며 죄악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갈 것 입 니다. 이 요엘서의 예언이 2천 년전 실제로 초대교회 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성령이 임한 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가졌습니 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에게 사명이 생겼습니 다. 성령의 사람은 아무 목적 없이 세상을 살지 않습 니다. 성령의 사람은 세상을 따라가며 방황하지 않습 니다. 성령의 사람은 무엇보다 삶의 목표가 분명합니 다. 이기주의로 살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람들 은 세상의 출세나 성공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린이든 지 젊은이든지 노인이든지 누구를 막론하고 성령 충만 을 받으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과 소망과 비전을 가 집니다. 

  이 세상 나라에 대한 꿈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ㅡ신약성경 사도행전 1장 3절에 보면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ㅡ신약성경 사도행전 1장 4절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모여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강림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 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모든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에 게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세상에 대한 쓰관심과 세상 적인 욕망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꿈이 생 겼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상과 꿈을 가집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성령받기 이전하고 성령받은 이후하고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삶의 목표가 달라졌 습니다.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에게 새로 운 꿈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생겼 습니다. 그리고 예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래 일을 말 하고, 천국에 대한 일을 말하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분명히 성령을 받았습니 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도 오순절 성령을 받았습니 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꿈이 생겨야 하는 것 아닙니 까? 세속적인 것 말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 말입니 다. 예수 믿는다고 말하고,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면 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어 떻게 된 것입니까?

2. 성령을 받으면 예언합니다.

성령받은 사람들에게는 나타나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예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 니다. 28절에 ‘장래 일을 말한다.’는 것은 예언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ㅡ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 4절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 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 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자기들이 배우지도 않고, 알 지도 못하는, 다른 나라 말로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 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 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지 않고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말합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들이 사라지고 내 안에 있는 모든 이성이나 내 안에 있는 모 든 심리적인 현상들이 전부 성령으로 가득차기 때문에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을 합니다.

술 취한 사람들은 술기운에 말하고 술기운에 이상스런 행동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이 시키는 대로 말 하고 귀신이 역사하는 대로 행동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도 성령의 역사를 따라 말하고 행동해 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령받은 사람들의 삶의 특 징이 한결같이 열심히 있었고, 그 열심은 복음을 전하 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과 핍박을 받아도 그것을 특권처럼 여기며 즐거워했 습니다. 이것이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며, 초대교 회에 실현되었던 성령운동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ㅡ신약성경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 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 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으로 이런 일을 합니다.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31~ 32절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어떤 날입 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 날은 구원과 심 판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믿는 자들은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하실 것입 니다. 그날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믿고 구원받을 사람과 믿지 않고 멸망 할 사람이 드러납니다.

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 믿으면 구원을 받고, 복음을 거 절하고 예수님 믿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이 믿는 성도들에게는 은혜이며 복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 될 것입니 다. 예수님의 재림이 믿는 성도들에게는 기쁨과 승리 의 날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됩니 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 날에는 하늘과 땅에 이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자연 의 질서가 파괴되고 해와 달이 기능을 잃어버릴 것이 며 온 세상에 재난이 있을 것입니다. 또 전쟁으로 인해 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고 죽음을 당하게 되고 불 과 연기가 세상을 뒤 덮을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해와 같이 빛을 발해야 하는 진리가 빛을 잃어버리고 그 빛 을 받아서 반사하는 교회도 기능을 상실할 것입니다. 말세에는 자연계에나 영계나 다 타락하여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망시 키지 않고 악인을 의인과 함께 구원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사람들이고 믿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 입니까? 날마다 무슨 꿈을 꾸면서 살아가고 있습니 까? 여러분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꾸시기 바랍 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사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엘서의 말씀을 들여다보면 현 시국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현 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우한 코비드-19 바이러스 로 시작된 세계 펜데믹 현상과 경제적 재앙과 그로 인 해 주일예배가 끊어지는 영적인 재앙. 모든 사건 앞에 믿는 자들을 향해 외치는 말씀은 회개의 촉구와 함께 하나님 편에서는 강력한 결단일 것이다.

요엘서 후반부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 대한민국에도 마찬가지로 예비해두신 영적인 축복을 물 붓듯이 부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아멘.

우리 노인들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 이세상 꿈이 아닌 새로운 꿈을. 우리들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젊어 지기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들은 꺼꾸로 생각합 니다. 생각해 보세요, 가을에 초목이 시들어야 봄에 새싻이 나지요. 마귀는 시기 질투를 잘하기에 사람간 에 다툼이 생기도록 분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들의 특성은 상대방의 간청을 잘 들어 사람 사이에 화평을 준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생명수)들은 생물 을 번성하게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니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있는 모든 새 를 그 종류대 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 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 하고 번 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5. 다섯째 날이니라 ㅡ 복음(예수)을 알아가는 칠단계 중 다섯번째 예수님이 무덤 속에서 삼일만에 부활체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마. 나팔절 : 양의 뿔로 만든 양각나팔

ㅡ신약성경 마태복음 24장 29~31절 : 그 날 환난 후 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 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 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 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7대절기 중 나팔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의 재림과 함 께 성도들은 휴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남을 헤치는 혼란과 악행을 일으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평화롭고 선하게 생활을 합 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 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하시 니 그대로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 대 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삼위일체)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 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 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 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 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 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 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 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 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 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 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6. 여섯째 날이니라 ㅡ 복음(예수)을 알아가는 칠단계 중 여섯번째요.

사. 속죄절 : 예수님의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함이라.아. 장막절 :

ㅡ신약성경 요한계시록 21장 1~2절 : 또 내가 새 하

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 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예 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 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7. 일곱째날 ㅡ 복음(예수)을 알아가는 칠단계 중 일 곱번째로 장막 명절 - 새여루살렘을 의미ㅡ 하나님이 안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 아 계십니다.

마귀는 모든 일을 악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님은 선하게 하신다.

이 땅에서 천년왕국을 이루신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 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 모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 하나님께서 보좌에서 시내산으로 내려 오셔서 모세를 불렀습니다. 이 때 시 내산 구름속으로 올라간 인간 모세는 하나님을 바로 바라 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인 사람들이 하 나님을 바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 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이 친히 이천년 전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던 마리아의 배를 빌려 이 지구별에 사 람의 몸으로 직접 찾아왔어요. 하나님은 사랑으로 예 루살렘에 직접 인간의 육체를 입고 태어나서 말구유안 에서 자면서 자기 백성들 옆으로 가까이 찾아 오셨습 니다. 그는 30년을 부모와 함께 지내다 공생애 삼년 반 동안 우리 성도들에게 천국을 직접 가르치시고, 우 리 성도들의 죄를 대속해 주셨는데, 이는 자기 백성들 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피흘 리며 고난을 받으사 육신은 죽으시고 돌무덤 속에 묻 히셨습니다.

그러나 계시하신 말씀대로 삼 일만에 부활하시어 부활 체로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사십일 만에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올라가시기 전에 자 기 대신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님을 사십일 후 에 우리 성도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회개시키고 성도들을 구원해주시기 위해 꼭 보내주시 기로 약속하신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인 성령하나님을 우리 성도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성도 들에게 직접 찾아오신 성령 하나님은 하늘의 지혜로 영적으로 이해할 수있게 모든 것을 가르켜 주십니다.

ㅡ신약성경 요한복음 14장 26절 : 보혜사 곧 아버지 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 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ㅡ 신약성경 마태복음 19장 23~26절 : 예수께서 제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 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 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 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 실 수 있느니라.

ㅡ신약성경 요한계시록 5장 9절 : 주님은 죽음을 당하 셨고, 자신의 피로 각 지파와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 데에서 사람들을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7대 명절 중 속죄절은 신부와 신랑되신 예수님이 부활 하신 이후 사십일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하늘나 라로 승천하셨습니다.

마귀는 혼란을 만들어 사람 사이에 차별을 하게 합니 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혼란이 사라지게 만듭 니다.

그 이후 모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내려오셔서 모세를 불렀다. 인간 모세는 하나님 을 바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인 사람 들이 하나님을 바로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이 친히 이천년 전 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마리아의 배를 빌려 이 땅의 사람의 몸으로 직접 찾아왔어요. 하나님은 사랑으로 예루살렘에 직접 인간의 육체를 입고 태어나자 말구유 에서 자면서 자기 백성들 옆으로 가까이 찾아오셨습니 다. 그 후 30년을 부모와 함께 지내다 공생애 삼년 반 동안 나와 우리 성도들의 죄를 대속해 주셨는데 이는 자기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 도해주시기 위해 십자가 에서 피흘리며 고난을 받으사 죽으시고 무덤 속에 묻 히셨습니다. 그러나 삼일만에 부활하시어 부활체로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사십일 만에 하늘나라로 올 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올라가시기전에 자기대신 보내 주시기 로 약속하신 성령님을 사십일 후 오순절날에 우리 성 도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회개시키 고 성도들을 구원해주시기 위해 꼭 보내주시기로 약 속하신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인 성령 하나님을 우리 성도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하늘의 지혜로 영적 으로 이해할 수있게 모든 것을 가르켜 주십니다.

ㅡ신약성경 요한복음 14장 26절 : 보혜사 곧 아버지 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 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ㅡ신약성경 요한일서 2장 27절 :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 르칠 필요 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ㅡ신약성경 고린도전서 2장 13절 : 우리가 이것을 말 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 인 것으로 분별 하느니라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지, 정, 의 앞에서 육이 가지 고 있는 지, 정, 의 를 반드시 쪼개져 박살이 나야합니 다.

ㅡ 신약성경 마가복음 1장 14~15 :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여기시는 기쁜소식입 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음으로 자유 하게 되는 소식이 복음임)을 믿으라 하시더라.

ㅡ신약성경 누가복음 5장 31~32절 : 예수께서 대답 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 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 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ㅡ신약성경 고린도전서 6장 9~11절 : 불의한 자가 하 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 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 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 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 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 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해주신 분이시 다.

ㅡ신약성경 전도서 12장 14절 : 하나님은 모든 행위 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대에서 지옥 = 영벌, 던져지는 곳, 천국 낙원 = 영생, 들어가는 곳으로 구분하신다.

ㅡ신약성경 요한복음 5장 21~ 30절 :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 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 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 든 사람으로 아버지 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 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 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 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 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 우니라

ㅡ신약성경 베드로전서 4장 17~18절 : 하나님의 집 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 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성경은 예수가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이것이 복음이 다.

골로새서

1. 본래 창조주이시다.
2. 사람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사람들 가까이에 찾아 오심
3. 고난을 당하셨고 나와 우리 성도들의 죄를 대속 하심
4.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내어놓고 죽으셨습니 다.
5. 무덤 속에서 삼일만에 부활체로 다시 부활하셨습 니다.
6. 그리고 사십일동안 제자들과 함께있다가 승천하 셨습니다.
7.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성 령을 부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 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믿음을 더하려는 생각은 성령 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육체에 의 지하지 않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육체의 행위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고 성령 충 만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ㅡ신약성경 요한계시록 20장 7~15절 :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의 모래같으리라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서 있는데 책들이 펴있 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 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다시 이 땅에 찾아오실 재림 예수님은 장차 사탄이 주 관하는 이 땅에 죄를 총정리하시기 위해 이 세상을 심 판하러 오십니다.

그 후에 이 땅에 천년왕국 하나님나라를 이루십니다. 주님이 우리 성도들을 도와주시기 위해 이 세상을 이 기고 살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유다서에 교회는 성령이 없는 자인 가짜 기독교인들과 이스마엘과 에서를 내어 쫓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처녀중 다섯처녀는 등은 가졌으나 기름이 없는 다섯 처녀를 어둠 속에 내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1:23 ~27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요한계시록 22:12~1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아멘




성경 이스라엘 유대인의 월력명칭 및 달 이름과 절기,성경구절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월력 이름과, 관련 성경 구절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해당 월(月)에 무슨 절기, 어떤 명절이 있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대 월별 명칭은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 사용하던 '가나안 식' 명칭과 포로기 이후에 사용하게 된 '바벨론 식' 명칭이 있습니다. 바벨론 식 명칭이 사용되고부터는 가나안 식 명칭은 거의 사라지고 네 개만 남게 됩니다.

참고로 유대인들은 월력 두 가지를 병용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절기'를 지키기 위한 '종교력'이 있고, 이외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민간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월력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대 월력, 즉 종교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성경의 유대 월력

성경에 그 명칭이 나오는 '월(month/月)'과 그 달에 해당하는 절기는 이러합니다.

1. 아빕 월(Aviv)=니산 월(Nisan)

첫째 달이며, 지금의 3월~4월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달인데, 하나님께서 이 달을 첫 달로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인 무교절 즉 유월절이 있고, 초실절도 아빕월에 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출애굽을 기념해서 생긴 절기이고, 초실절은 첫 곡식(보리)을 거두어서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입니다.

초실절은 유월절이 있는 주간의 안식일 뒷날인데,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아빕 월'이라는 말은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나오고, '니산 월'이라는 말은 느헤미야서와 에스더서에 나옵니다.

느 2:1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 년 니산 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에 3: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 년 첫째 달 곧 니산 월에 '

출 13:4

'아빕 월 이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출 12:2

'이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달이 되게하고'

신 16:1

'아빕 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 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레 23:5-6

'첫째 달 열 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달 열 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레 23:10-11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 시브 월(Ziv)

둘째 달이며, 지금의 4월~5월에 해당합니다. 첫째 달인 '아빕 월'에 특수한 사정으로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둘째 달인 '시브 월'에 유월절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배려이십니다. 히스기야 왕의 종교개혁 때 유다 백성들 전체가 둘째 달에 유월절을 성대하게 지킵니다. '시브 월'이라는 말은 열왕기상에 나옵니다.

왕상 6: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 년 시브 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왕상 6:37

'넷째 해 시브 월에 여호와의 성전 기초를 쌓았고'

민 9:6-11

'그때에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날에 모세와 아론 앞에 이르러 … 이르되 … 우리를 금지하여 …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못하게 하심은 어찌함이니이까 모세가 … 이르되 기다리라 여호와께서 … 어떻게 명령하시는지 내가 들으리라 … 여호와께서 … 이르시되 …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둘째 달 열넷째 날 해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대하 30:2-3

'왕이 방백들과 예루살렘 온 회중과 더불어 의논하고 둘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려 하였으니 이는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하였으므로'

대하 30:13

'둘째 달에 백성이 무교절을 지키려 하여 예루살렘에 많아 모이니 매우 큰 무리라'

대하 30:15

'둘째 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 양을 잡으니'

3. 시완 월(Sivan)

셋째 달이며, 지금의 5월~6월에 해당합니다. 3대 절기 중 하나인 맥추절이 있는 달입니다. 우리말에는 보리 '맥(麥)' 글자를 사용했으나 실제로는 '밀' 수확을 기념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첫째 달인 아빕 월의 유월절 무렵에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을 지키고, 그 후 '7주간'이 지난 뒤의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그래서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신약에서는 '오순절'이라고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무렵에 십자가에서 희생되셨고, 그 후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십니다(!). '시완 월'이라는 말은 에스더서에 나옵니다.

에 8:9

'그때 시완 월 곧 삼월 이십삼 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레 23:15-16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민 28:2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신 16:9-10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고전 5: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오순절

4. 담무스 월(Tammuz)

'담무스 월'은 넷째 달입니다. 지금의 6월~7월에 해당합니다. 성경에 '담무스 월'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넷째 달'이라는 말은 에스겔서에 나옵니다.

겔 1:1-2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달 초닷새라'

5. 압 월(Av)

'압 월'은 다섯째 달이며, 지금의 7월~8월에 해당합니다. 성경에 '압 월'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으나, '오월'이라는 말로는 나옵니다.

민 33:3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6. 엘룰 월(Elul)

'엘룰 월'은 여섯째 달이며, 지금의 8월~9월에 해당합니다. '엘룰 월'이라는 말은 느헤미야서에 나옵니다.

느 6: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 월 이십오 일에 끝나매'

7. 에다님 월(Ethanim)

'에다님 월'은 일곱째 달이며, 지금의 9월~10월에 해당합니다. 수장절과 나팔절이 있는 달입니다. 수장절은 3대 절기 중 하나인데, '곡식을 추수해서 저장한다'라는 의미이며,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는, 이 기간에 초막(장막)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생활하면서, 광야 생활 40년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보호하심을 기념하기 때문입니다.

나팔절은 에다님 월의 첫날에 해당하는데, 안식월인 일곱째 달을 성별하기 위해서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희락의 날입니다. 한편, 일곱째 달인 이 '에다님 월' 10일은 '대속죄일'입니다. 온 백성들은 죄를 속하기 위해서 금식했으며, 대제사장은 일 년 중 딱 한차례 바로 이날에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속하러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에다님 월'이라는 말은 열왕기상에 나옵니다.

성소와 지성소

왕상 8: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 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레 23:34

'일곱째 달 열 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니라'

레 23: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신 16:13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레 23:16(하)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레 23:24

'일곱째 달 곧 그달 첫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민 10:10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

레 23:27

'일곱째 달 열흘 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8. 불 월(Bul)

'불 월'은 여덟째 달이며, 지금의 10월~11월에 해당합니다. '불 월'이라는 말은 열왕기상에 나옵니다.

왕상 6:38

'열한째 해 불 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9. 기슬르 월(Kislev)

'기슬르 월'은 아홉째 달이며, 지금의 11월~12월에 해당합니다. 이 달에는 '수전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BC 167년 무렵에 유대인들의 '마카비 혁명(Maccabean Revolt, BC 167-160)'이 일어나는데, 이 혁명은 유대 종교를 탄압하는 시리아의 셀류키드 왕조에 대항한 혁명이었습니다. BC 164년에 성전을 되찾고 이날을 기념해서 해마다 절기를 지키게 됩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정화했다는 의미로 '닦을 수修, 큰집 전殿, 명절 절節', '수전절'이라 합니다. '기슬르 월'이라는 말은 느헤미야서에 나옵니다.

느 1: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 년 기슬르 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요 10: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10. 데벳 월(Tebeth)

'데벳 월'은 열째 달이며, 지금의 12월~1월에 해당합니다. '데벳 월'이라는 말은 에스더서에 나옵니다.

2:16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 년 시월 곧 데벳 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

11. 스밧 월(Shebat)

'스밧 월'은 열한째 달이며, 지금의 1월~2월에 해당합니다. '스밧 월'이라는 말은 스가랴서에 나옵니다.

슥 1:7

'다리오 왕 제이 년 열한째 달 곧 스밧 월 이십사 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

12. 아달 월(Adar)

'아달 월'은 열두째 달이며, 현재의 2월~3월에 해당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활약으로 생겨난 절기인 '부림절(Purim)'이 있는 달입니다. '아달 월'이라는 말은 에스더서에 나옵니다.

에 3:7

'아하수에로 왕 제이십 년 첫째 달 곧 니산 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 월을 얻은지라'

너희는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 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23:22